"내 집에서 나가!" 엄마한테 쫓겨날 것 같아요

[이별, 그 '반가움'에 대하여③] 독립 못한 청춘, 이젠 '부모님'과 이별하고 싶다

등록 2011.12.18 10:26수정 2011.12.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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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대학 신입생 시절, 한창 선배들과 부어라 마셔라 하며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삐삑 삐삑' 소리가 났습니다. 그것도 일관된 시간,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무렵에 말입니다.


삐삐에 찍힌 숫자는 '8282119'. 이건 다름 아닌 어머니의 짜릿한(?) 경고 메시지입니다. 저 숫자를 해석하자면, "9시가 넘었다, 좋은 말 할 때 당장 들어온나" 이 정도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서 '졸업만 해봐라, 내가 이 감옥에서 벗어나고 말 테니까' 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습니다. 한 번은 어머님께 항의도 했습니다.

"엄마, 사실 내가 어디 납치당할 관상은 아니잖아? 대충 봐도 건장한 총각 같은 게 사실인데 그렇게까지 귀가시간을 쫑가야겠나(엄격히 적용해야겠어)?"
"야! 말 잘했다, 니 말처럼 니 같은 경우는 일 잘하게 생겼다고 새우잡이 배로 보내거나 창고에 가다 놓고(가둬 놓고) 맨날천날(매일매일) 마늘 까는 거 시킬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란다 아이가! 내 말이 틀맀나?"

어라, 듣고 보니 굉장히 설득력 있는, 그리고 어머니의 진심 어린 염려가 담긴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나를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부모님의 울타리가 갑갑하게만 느껴졌고 하루빨리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9시 되면 울리는 삐삐, "당장 들어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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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애자>의 한 장면 ⓒ 시리우스픽쳐스


2006년, 그렇게 원하던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택한 일이 시민단체 영역이다 보니, 밤늦게까지 일할 때가 잦았습니다. 처음 접하는 일이라 여간 재밌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귀가시간이 오후 10시, 12시, 때론 1~2시도 되었죠.


학습된 본능인지 몰라도 아무리 웃고 떠들다가도 오후 9시가 넘기 시작하면 괜히 불안해졌습니다. 늦어지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 불안감을 잊어갔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부모님과 이별할 수 있는 거였구나' 하면서 말이죠.

그날도 동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느라 자정 무렵 대문을 빼꼼히 열었습니다. 벌써 주무시는지 집 안이 캄캄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대문 안으로 머리부터 들이밀고 한쪽 발을 넣으려는 순간, "나가라!" 칼날 같은 엄마의 음성이 제 왼쪽 발등 위로 날아와 꽂히고 말았습니다.

'아, 이거 어쩌지... 들어가? 그냥 나와? 날도 추운데 어쩌지?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나가면…?'

1분이 십 년 같았습니다.

"그렇게 니 쪼대로(마음대로) 할 거면 집구석에는 와 들어오노? 나가라, 나가서 그렇게 좋아하는 니 동료들하고 천년만년 살아라, 내 집에서 나가라!"

아, 집 없는 설움이란…. '얼른 돈 모아서 방 얻어 나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과 귀가시간으로 다퉈야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신뢰를 주지 못한 걸까, 아니면 부모님이 내게 집착하는 걸까,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습니다.

서른 넘도록 전혀 독립하지 못했구나...

가만 보면, 제게 있어 엄마는 슈퍼맨 같은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직장인이 된 이날까지, 내 앞에 어렵고 불편한 일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슈퍼맨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면 그 슈퍼맨은 내 눈빛만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 점심밥을 해먹던 때가 있었는데, 요리라고는 못하는 제가 뭐라도 해볼 요량으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엄마, 김치찌개는 어떻게 해요?"

간단한 질문에도 10분이 넘게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을 설명해주시는 엄마입니다. 그렇게 출근하고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느그 사무실 앞이다. 아침에 네가 한 말이 영 맘에 걸려서 김치찌개 끓여왔거든. 내려와서 가꼬 가라."

어쩌면 아침에 엄마에게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물어볼 때, 전 이미 엄마가 맛있게 끓여진 찌개를 가지고 올 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난 언제든 어려움이 닥치면 굽어진 부모님 등 뒤로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못난 청춘이구나', '서른이 넘도록 정신적으로 전혀 독립하지 못했구나' 하고 말이죠.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어려움은 부딪히면서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고 빠른 시일 내에 단칸방이라도 얻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보증금이라는 문제보다 더 크고 우스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 독립할게요"라는 말을 차마 부모님께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엄마는 '독립'을 "나 이제 이 집이 싫어졌어, 내 맘대로 살고 싶어, 안녕!"쯤으로 여기시지 않을까 하고 덜컥 겁이 났던 겁니다.

일단 이번 겨울만... 부모님 '등골' 공유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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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2009년 송년회 모습. ⓒ 최문정


그렇게 독립을 고민하던 올해 9월, 멀리 서울로 3개월간의 장기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던 거지요. 부모님 마음 다치지 않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단계적으로 독립하기에 참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밥도 요리책 보면서 매일 맛있게 해먹어야지. 차도 한잔하고 빨래 널면서 볕도 쐬고 휴일이면 책도 읽어야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이별, 그 첫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시작한 독립이었는데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요리책? 차 한 잔? 볕? '아나, 곶감아' 같은 소리(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기 바빴고, 아침은 햄버거 가게에서 대충 때우고, 퇴근이 일정치 않으니 빨래는 쌓여가고, 급기야 똑같은 옷을 사나흘씩 입게 되고, 신발도 한번 빨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서 쉰내가 나는 생활이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먹는 거며 입는 것, 죄다 돈으로 해결하다 보니 통장잔고는 없어지고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전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제 생활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세탁기에 빨래를 던져놓으면 다음 날 말끔히 다려져 있고 잠에 취해 거실로 나오면 아침상도 차려져 있는 이 생활 말입니다.

그렇게 편하게 하루 이틀 있다 보니 '이런 생활을 내가 굳이 놔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시 편한 거 앞에는 장사가 없나 봅니다. 그런 제 맘을 아셨는지 엄마가 그러십니다.

"밥 차려줘, 빨래해줘, 필요한 거 있음 딱 대령해줘, 집이 젤 좋재? 나가보니 고생이재?"
"어…. 내쫓아지만 마라, 잘 할게."

정작 제가 이별하고 싶은 대상은 부모님이 아니라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는 저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에라이, 청춘아….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건데?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니 혼자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꼬? 으이구, 인간아.'

일단 이번 겨울은 부모님 등골 공유하면서 살다가 찬찬히 독립을 계획해 봐야겠습니다. 엄마 아빠, 내 맘 알지?
#독립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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