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통화기금(IMF)은 자신들이 세계화의 전도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사진은 웹사이트 첫 페이지. 세계화에 대한 여러 글들이 올라와 있다.
IMF
미국 사회의 명암나는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두 번 졸업식에 갔다. 졸업생들은 환하게 웃었지만, 바라보는 교수들의 마음은 그 웃음만큼 밝지 못했다. 그들이 변변한 직장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살아야 하고, 막대한 학자금 빚도 갚아야 한다. 물론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한 일부 학생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이것은 한국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학교신문 편집장을 뽑았다. 이사회에서 네 명의 후보학생을 면접한 후 회의를 거쳐 한 명을 선발했다. 나도 면접과 이사회에 참여했으나, 신문사 주간교수인 내게는 투표권이 없다. 지도교수가 투표권을 가질 경우, 편집장이 신문 발행 과정에서 교수 눈치를 보게 되어 독립성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다.
더 인상적인 것은 면접과 이사회였다. '신문의 인지도와 부수를 늘려 광고수익을 높이겠다'는 사업적 측면을 강조한 후보가 떨어지고, '학교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늘리겠지만 정확성을 기하겠다'는 후보가 뽑혔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사업성'을 강조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심각한 자질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신문 주간교수에게는 기사 내용을 결정하거나 삭제할 권리가 없다. 신문이 나온 후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일개 대학신문이 한국 최고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보다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점, 이게 내가 미국 사회에서 희망을 보는 까닭이다. 불행히도 이것은 한국의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모습과 겹치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의 나쁜 점만 모은 체제미국은 공공부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돈 없는 서민은 병원에 발도 들여놓기 어렵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화당과 의사협회는 전국민의료보험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국민 상당수가 이 주장을 믿는다. 장기치료를 받는 환자가 싼 약을 찾아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헤매야 하는 나라에서 말이다.
뉴욕과 시카고의 지하철을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에서 분뇨 냄새를 맡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차체가 기우는 방향대로 줄을 그으며 사방으로 퍼져가는 노란 액체를 보기도 했다. 미국인들이 특별히 분뇨 욕구가 강하거나 절제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대중교통만 빈약한 게 아니라, 공중화장실 같은 공공서비스마저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사회 전체에 민주적 절차와 (민간 부문에서나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재산 절반을 사회로 돌리자'고 제안하고, 워렌 버핏이 '내 세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걸 보라. 공화당 같은 보수정당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장애인보호법(ADA)을 마련한 것도 이런 환경 때문이었다.
한국은 어떤가. 정치권은 안철수의 기부에 '정치적'이라는 냉소를 보냈고, 대기업은 '이익공유제'를 논하는 동반성장위 본회의에 대표 9명을 모두 불참시켰다. 이 기업인들의 모임 전경련은 현 정부 초기에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 반대'와 '직장 내 성희롱 처벌 완화'를 건의한 바 있다. '잘들 논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 미국의 공공서비스는 대단히 취약하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사진은 뉴욕시 지하철의 노숙인 후원 캠페인 포스터. 한미FTA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에 미국식의 빈곤한 공공서비스가 결합하는 비극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강인규
관세가 문제가 아니다이런 나라가 유지되어 온 것은 비교적 잘 조직화된 공공서비스 때문이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체신부, 한전, 철도공사 등 공기업은 국민들의 삶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주었다. 공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국민들의 삶에 핵심적인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사는 집에 편지를 배달하고, 한 가족이 사는 마을에 전기를 놓아주는 일은 이익 극대화가 존재목적인 사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공기업의 흑자폭이 '성공적 경영'의 잣대가 되고, 민영화가 '선진화'로 포장되면서 서민들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공공서비스는 사기업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부분이다. 휴대폰 값이 비싸면 안 사도 되지만, 수도와 전기는 아무리 값이 올라도 안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삶과 직결된 만큼, 기초 서비스는 막대한 수익이 보장된 영역이다. 물론 이 이윤은 서민들의 땀과 눈물 밴 돈을 털어서 나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서비스는 오직 공공영역에서만 가능하다.
정부는 한미FTA가 발효되면 관세 폐지로 수출이 증가한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주장이다. 앞서 설명했듯, FTA의 유일한 수혜자가 될 국내 제조업은 현지생산체제로 바뀌고 있다. 오히려 관세 철폐로 인해 수입이 늘고, 관세 수입은 줄어 복지재원 마련이 어려워지며, 국민들의 세부담률만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공공서비스의 황폐화다. 한국 기업이 FTA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관세 철폐가 아니라 의료와 보험 등의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다. 삼성과 현대 모두 병원과 보험사를 소유하고 있다.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료민영화보고서를 의뢰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LG경제연구소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의료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한미FTA 발효 후 한국은 미국과 한국의 나쁜 점만을 모아놓은 사회가 될 것이다. 공공부문 빠진 한국, 또는 약자 배려가 생략된 미국을 상상하면 된다. 이미 한국은 약육강식의 정글사회로 부족함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 '퍼블릭시티즌' 보고서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공공정책과 복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왔다고 분석한다. 이 제도는 급조된 기업들에게도 정부와 동일한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천연자원, 환경보호, 국민보건 등의 공공정책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공익을 위해 기업을 규제하려는 정부능력이 심각히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Public Citizen
투자자-국가소송제, 왜 위험한가 세계화의 부작용은 한미FTA 이전부터 우리를 괴롭혀 왔다. 하지만 FTA가 심각한 이유는 이 과정을 가속화하고 영속화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들의 탐욕에서 국민을 지킬 수 있는 건 정부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FTA를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이 역할을 포기했다. 물론 이 역할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판사들이 한미FTA 발효 이후 한국의 사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자, 정부는 '협상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오해'라고 항변했다. 법전문가들보다 법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주장인데, 정작 협상당국은 자신들이 무슨 협상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시민검증단이 FTA 원문과 번역본을 대조한 결과 2500개 이상의 오류를 찾아냈으니 말이다.
통상부의 무지와 무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한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기에 폐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협상본부장이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한 기초적 이해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김종훈 말대로, 이 제도는 한국 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국내 기업이 해외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럼 왜 반대하느냐고? 이 제도가 위협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아니라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정부의 개입, 즉 국가의 시장조절 기능과 공공서비스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 제도 하에서는 하루 아침에 급조된 해외기업도 한국 정부와 동일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만일 정부가 서민이나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처를 취했을 때, 이것이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것도 실제 발생한 손실만이 아니라 '기대 이익에 손실'에 대한 배상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자유무역(NAFTA) 발효 이후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미대륙에서만 88건 이상으로, 배상액은 총 3억 2700만 달러에 달한다. 한국 정부는 ISD가 공공정책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 소송제도가 정부의 천연자원, 환경보호, 국민보건과 의료 등의 공공정책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밝힌다. 그 결과 기업의 탐욕으로부터 공익을 지키기 위한 정부 기능 자체가 심각하게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

▲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날치기 무효 야4당 및 범국본 촛불문화제·합동연설회'에 참가한 시민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한반도 지도로 장식한 'FTA','ISD' 와인잔을 들고 축배를 즐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유성호
한국 협상당국은 '정부 조치가 투명하고 정당하며 비차별적인 경우에는 정부의 피소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게 문제다. 피소가 두려워 공공정책 자체를 기피하게 만드는 '겁주기 효과'가 북미자유무역 협상 이후 드러난 ISD의 심각한 폐해이기 때문이다.
외국기업이 한국의 공공서비스를 파괴하면서 수익을 올릴 때, 한국 기업의 상대국의 공공서비스를 황폐화 시킬 것이다. 이 제도하에서 한국기업과 외국기업은 공모관계가 된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희생시켜 부자와 대기업을 살찌우는 제도인 것이다. FTA가 '국익'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예가 투자자-국가소송제다.
정부가 국민을 지킬 능력도, 의사도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하나뿐이다. 우리 스스로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현정부 못지않은 독재권력과 맞서 싸운 역사를 갖고 있다. 게다가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던가. '프리온', 크로이트펠츠야콥', '버블제트', '역행침식', '디도스', 그리고 이제 투자자-국가제소제(ISD)까지. 다른 어느 나라 국민들이 이런 용어를 다 이해하겠는가.
우리의 비극은 국민들이 아는 문제를 정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정부를 두고 국민들이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안 그래도 세계최장 노동에 시달리는 국민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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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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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역서 분뇨 냄새 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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