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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삶이 나아진다는, 위안

[리뷰] 영화 <래빗홀>

11.12.22 10:18최종업데이트11.12.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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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8달 전에 아들을 잃었다. 바로 그들의 집 앞에서, 어린 학생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의 일상은 반대방향으로 어긋나가고 있다. 남편 호위(아론 에크하트 분)는 아들의 추억이 담긴 것들을 끌어안고 있으려 하고, 아내 베카(니콜 키드먼 분)는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고통을 잊으려고 한다. 둘의 대화는 등을 돌린 채 끝난다.

니콜 키드먼이 제작에도 참여하고 <헤드윅>과 <숏버스>의 존 카메론 밋첼이 연출한 <래빗홀>은 200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것이다. 종종 하지 못한 말들이 갇혀있다는 인상을 주는 니콜 키드먼의 얼굴은 <래빗홀> 속 베카 역에서도 두드러진다. 상실감이 지배하는 영화 전반부 내내 베카의 창백한 낯빛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흘러넘친다.

영화가 천천히 베카와 호위의 황폐한 일상을 훑어갈수록 두 사람 주위의 관계들이 이야기에 섞여든다. 좋은 사람이지만 어울리기엔 불편한 이웃,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경험을 빗대 어떻게든 위로를 건네려 하는 불편한 엄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치유 모임의 불편한 종교적 분위기까지.

여기서 베카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래빗홀'이다. 래빗홀은 똑같은 세계가 여러 차원에 존재한다는 평행우주들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다. 상상의 세계가 주는 마음의 평화. 래빗홀 너머 다른 우주의 다른 삶에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위안은 지금 여기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의 다른 절반은 희망과 위안을 다루고 있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지만, 그런 중에도 상실감은 쉽게 공감되고 전달되는 감정이다. <래빗홀>이 관객에게 쌓는 감정의 층도 거기에 있다. 아픈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위로를 건네고 싶어지는 경험. 서로 어루만져주려는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날이 섰다가도 금세 뭉그러지는 것처럼, 영화는 상실의 고통을 차분하게 끌어안는다.

삶이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을까. 살면서 몇 번은 마주칠 이 물음들에 대해 <래빗홀>이 되돌려주는 답은 분명하진 않아도 힘이 되는, 위로다.

덧붙이는 글 12월 22일 개봉
RABBIT HALL 래빗홀 존 카메론 미첼 니콜 키드먼 아론 에크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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