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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풍산개> '제작비12배 수익'

[영화를 빛내는 피디②]전윤찬 피디 "윤계상 몸에 진흙 바르는 장면 감독이랑 싸웠다"

11.12.26 12:17최종업데이트11.12.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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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풍산개의 제작진인 전윤찬 프로듀서가 3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이정민


"독립영화라는 말이 웃긴 게 자본이든 대중의 생각이든 그런 간섭을 받지 않고 감독과 스태프의 자기 만족이 이뤄지는 작품이어야 진정한 독립영화죠. 우리나라 독립영화는 대부분 외부의 투자를 받잖아요? 엄밀히 말하면 그건 독립영화라고 볼 수 없죠. 어차피 돈을 갚아야 할 작품이잖아요."

'독립영화론'을 풀어놓았던 전윤찬 피디. 저예산 영화 <풍산개> 흥행 몰이의 일등 공신이었던 그는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철저히 감독 이하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우선시 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 피디는 이른바 영화해서 손해 보면 생활이 위태해지는 현재의 작업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결 방안 중 하나는 바로 사전 기획을 철저히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영화 <풍산개>를 예로 들며 영화 제작 전에 있어서 해당 영화가 상업 영화인지 혹은 예술 영화인지 그 구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영화계에서 한국 감독님들은 딱 두 분류로 구분이 되죠. 흥행 감독인지 아닌지로요. 이게 다 낙인이에요. 상업적으로 주목 받지 않는다면 작품에 내실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겠어요? 영화제 중심으로 갈 작품인지 철저히 대중과 소통해야할 작품인지 정해야 한다는 말이죠.

<풍산개>를 할 때 영화제는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 시점에서 예술영화로 가면 쫄딱 망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린 흥행해야 해, 300개 상영관은 얻어야 해' 이런 생각이었어요. 베를린 영화제에서 <풍산개>를 출품하라면서 많이 기다려줬어요. 편집 작업이 끝날 때까지 말이죠. 하지만 전 출품을 반대했습니다. 국내가 먼저라면서요. 그렇게 해서 국내 개봉이 된 겁니다."

영화 풍산개의 제작진인 전윤찬 프로듀서가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윤찬 프로듀서는 올해 열린 제48회 대종상영화상 시상식에서 기획상 후보에 올랐다. ⓒ 이정민


국내 개봉 후 해외 영화제 러브콜 "규리가 할리우드 스타인 줄 알았다"

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풍산개>는 개봉 이후 총 71만 4781명의 관객 수(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를 기록했다. "제작대비 열 두 배의 수익,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서·너배의 수익을 올렸다"던 전윤찬 피디는 "개봉 첫 주가 지나니 다 '퐁당퐁당'(교차상영을 뜻하는 영화계 은어)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평일에도 2만 명씩 관객이 찾곤 했는데 상영관이 온전히 다 살아있었다면 두 배 이상은 더 왔을 것"이라면서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그는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공개하기도 했다.

"처음엔 50만 관객을 예상했어요. 많게는 100만까지 잡았습니다. 그런데 135개 상영관으로 시작해서 다소 기대치가 줄었죠. 주연배우들(윤계상·김규리)과 내기를 했어요. 그네들이 3만 명, 5만 명을 얘기했는데 전 22만을 얘기했죠. 그때 한창 <트랜스포머>가 한국영화를 다 정리하고 있던 상황이라 잘하면 우리가 100만도 갈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트랜스포머2>가 2년 전 개봉했을 때 1200개관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1600백 개까지 가져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영화 <써니>의 여파도 있었고요. 처음에 배급사에서도 (흥행에) 회의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죠. 편집할 때마다 배급사 쪽에서 '대체 영화에 무슨 짓을 한 거냐'는 말도 나왔어요."

<풍산개> 작업을 하면서 흥행 확신에 차있던 전윤찬 피디가 생각했던 회심의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많은 여성 관객의 환호를 받았던 윤계상이 온 몸에 진흙을 바르는 신이었다. "감독과 싸우면서 결국 집어넣은 장면이에요"라던 전 피디가 삭제될 뻔했던 이 장면을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블라인드 시사회(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진행하는 시사회)에서 영화에 대해 여성관객들의 호응도가 높았다는 점에서 든 확신이었다고.

ⓒ 이정민


ⓒ 이정민


손해 보지 않는 저예산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서른 살 무렵에 시작했던 피디 일이었다. 여느 동료들보다도 느린 시작이었다.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은 제작 부장 등 하나씩 자리를 맡을 법한 나이에 시작한 셈이었다. 느린 시작이었던 만큼 영화에 대한 주관이 분명했다. 철저히 리스크가 큰 영화가 아닌 흥행 가능성이 있는 저예산 영화를 중심으로 하겠다는 게 그것이었다.

"100명이 경쟁하는 곳과 서너 명이 경쟁하는 곳 중 어디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겠어요? 전 적게 경쟁하는 데서 뚫겠다고 생각한 거죠. 한국영화판에선 리스크가 큰 영화를 하면 그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어요. 영화가 하나 망하면 해당 감독과 피디는 다시 영화를 시작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생기거든요. 낙인이 찍히는 겁니다. 하지만 저예산은 달라요. 작품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건 저예산 영화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손해 보지 않는 영화 나와야 한다는 거죠. 중소기업의 영화들 그리고 30만, 50만 관객들이 찾는 영화들이 많이 살아야 해요. 영화의 나라라고 하는 이탈리아가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데 100만 관객을 넘는 작품이 거의 없어요. <풍산개>를 가지고 10월에 로마 영화제를 갔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레드 카펫을 밟은 규리가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걸 보고 전 규리가 할리우드 스탄 줄 알았다니까요. 그만큼 다양한 취향의 영화들이 인정받는 곳입니다."

전윤찬 피디는 "일 년의 기간 동안 쏟아지는 한국 영화 중 BP(손익분기점)를 넘는 작품이 10% 미만이다"라면서 작금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수 십 편에서 많게는 백 편 넘게 쏟아지는 작품들의 대부분이 망하는 셈이다. 이럴수록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이른바 대작 영화는 더욱 그 비용이 커지는 추세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전 피디는 "함께 모여서 힘을 합쳐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래서부터 한국 영화를 걱정하는 영화인의 모습이었다.

영화해서 무얼 먹고 사냐고? "영화에 대한 꿈으로 먹고 살지"

전윤찬 피디는 '영화를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사냐'는 질문에 "영화를 먹고 산다"고 답했다. 해당 질문은 영화 피디 기획의 첫 번째 순서였던 배정민 피디(영화 <도가니> 제작)가 던진 물음이었다.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도 하고 지낸다"라면서 전윤찬 피디는 "영화에 대한 꿈 하나로 버티고 사는 거지 않는가"라고 반문 했다. 영화를 할 때 스스로 살아있는 느낌이든다는 그는 스태프들에게도 항상 영화를 왜 하고 있는지 물어보라고 권한다고 했다. "영화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면 영화를 하는 게 맞다" 함께 고생하는 스태프들에게 전하는 그의 조언이었다.

전윤찬 피디에게 다음 순서의 영화 피디에게 던질 질문은 없는지 물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 영화계의 피디로서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싶은가?"


전윤찬 풍산개 윤계상 김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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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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