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도 없이 덮어놓고 버스타고 가보자!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111] 충남 아산시 나들이① 충무공의 넋이 담긴 현충

등록 2011.12.27 18:28수정 2011.12.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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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가는 길 충남 아산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는 현충사로 갑니다. 현충사 본관으로 가자면 이 소나무 숲길을 지나가지요. 큰 소나무가 길 양 옆에 늘어서 있는데, 가지가 휠 대로 휘어져서 마치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는 듯 두 팔 벌려 마중을 나왔답니다. ⓒ 손현희


"으으으 추버라! 이래가지고 내일 자전거 타고 갈 수 있을까?"
"글쎄, 이거 암만해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우째야 되노? 날씨가 너무 춥다. 하필이면 이럴 때 이키나 춥노?"
"그케 말이라. 일단 한 번 더 살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틀 동안 강바람을 맞으면서 타는 건 무리지 싶다."
"그렇겠지? 낙동강 자전거 길은 조금 더 따뜻할 때 가는 게 낫겠다."

갑자기 날씨가 더 추워진데다가 눈까지 온다는 소식이 있어 몹시 걱정이 되었어요. 몇 주 동안 성탄절 연휴 이틀 동안 자전거 타고 나들이 할 수 있는 곳을 살펴보고 낙동강 자전거 길을 중심으로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날씨 때문에 계획을 바꿔야만 할 듯했어요.


지금까지 자전거 타고 나들이 갈 생각만 하다가 다른 방법으로 가야할 곳을 찾으려니 막막하네요. 이곳저곳 도시마다 누리집에 들어가서 문화관광 안내를 꼼꼼히 살펴봐도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자전거를 타고 갈 곳이라면, 우리가 갈 수 있는 코스를 잡기가 편할 터인데, 이젠 버스나 기차로 갈 곳을 찾으려니 답답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곳 구미에서는 한 번에 타고 가서 닿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도 거의 다 둘러본 곳이고, 조금 멀리 나가자니 차편이 마땅치 않았지요. 어디를 가든지 다른 지역을 거쳐서 또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곳 뿐 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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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밭에 난 발자국 때마침 지난밤에 눈이 내려서 온통 세상은 하얗습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찍었을 듯한 발자국이 무척 정겹네요. ⓒ 손현희


목적지도 없이 덮어놓고 시외버스를 타다

몇 군데를 살펴보다가 내린 결론은,

"우리 그냥 내일 아침에 터미널에 가서 덮어놓고 시간이 되는 버스를 타고 가자. 가다가 보고 풍경 좋으면 아무 곳이나 내리자. 여행이 뭐 별거겠어? 이런 게 여행의 참맛 아니겠나?"
"그래봅시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아침 눈을 떠 창밖을 보니,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았어요. 그다지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아주 얇게 쌓인 첫눈이 무척 반갑더군요. 역시나 생각대로 밖은 몹시도 추웠어요.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서운했지만 그래도 포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춥고 바람도 매서웠지요.


구미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시간에 탈 수 있는 건 대전으로 가는 버스였어요. 덮어놓고 타고 갑니다. 버스 안에서 오늘 우리 여행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오마이뉴스> 엄지뉴스로도 한 컷 보내고, 스마트폰으로 대전을 중심으로 한 여행지가 어디가 있을까? 찾아보기도 했지요.

대전에 닿으니, 곧바로 천안을 거쳐 아산까지 가는 버스가 있더군요. 또 덮어놓고 타고 갑니다. 이젠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천안이나 아산에서 가볼만한 곳이 어디일지 찾아봤어요. 아산시에 있는 문화관광코스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자기야, 아산은 옛날에 온양이 아닌가? 온양온천 있는데…."
"몰라. 온양이 아산인가? 온양에는 민속박물관이 있는데, 내가 전에 얘기했지? 거 왜 박물관에 후배랑 둘이서 갔다는데 있잖아. 난 한창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그 놈이 뭐 그리 볼 게 많냐면서 지는 휙휙 스치듯이 보고 가면서 나보고 더디다고 투덜댔다는 얘기."
"아, 기억나! 그 때 그 후배가 하도 재촉해서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왔다고 했잖아."
"그래. 거기 말이라. 그럼 이번에 온양민속박물관에는 꼭 가보자. 이참에 잘됐네. 그때 못한 구경 느긋하게 해보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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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온양) 시외버스터미널 아산 터미널이랍니다. 작고 소박한 곳이에요. 오가는 이들이 그래도 꽤 되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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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현판 현충사 현충사에는 남다른 게 눈에 띕니다. 바로 한글로 쓴 현판인데요. 어디를 가든지 한자로만 된 현판만 보다가 이렇게 한글로 쓴 걸 보니 퍽이나 정겹고 반갑더군요. ⓒ 손현희


아산! 하면 충무공 이순신, 그렇다면 현충사부터

아산시에 닿으니 온통 눈밭입니다. 구미에서는 아주 얇게 내린 눈만 봤는데, 이곳은 온통 눈 천지에요. 하얀 눈이 두텁게 내려앉아 길도 미끄럽고 걷기도 조심스럽더군요. 그래도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구미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경인데다가 낯선 도시에서 또 다른 풍경을 만났으니 얼마나 설레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산! 하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가장 먼저 떠올려지니, 그렇다면 현충사부터 둘러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도 내 마음을 아는 듯 현충사부터 둘러보자고 합니다.

"그래도 이순신 장군의 본고장에 왔는데, 현충사에 가서 인사라도 하고 가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하하, 거 좋은 말씀, 현충사부터 찾아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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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요. 누군가 벌써 눈사람을 만들어놨어요. 작고 앙증맞게 만든 눈사람이 정겹고 귀엽기도 합니다. ⓒ 손현희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길을 모르니 택시를 타기로 했어요. 가는 길에 보니, 남편이 그토록 다시 가고파 했던 온양민속박물관을 지나쳐가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가보기로 하고 아산 시내 구경을 하며 갑니다. 은행나무가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서있는 길을 따라 한참을 가네요. 택시기사님이 이곳은 해마다 가을이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시더군요. 가을이 아니라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황량해보이기도 했지만 길이 참 멋있더군요.

현충사 들머리부터 온통 하얀 눈밭을 보니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아직 발자국조차 남지 않은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졌는데, 풍경이 매우 멋스럽더군요. 가장 먼저 충무공 이순신기념관에 들어가서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갖가지 전시물과 유물들을 구경했어요. 어릴 적 위인전 책을 읽을 때면, 가장 많이 읽었던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 전시물과 함께 보고 읽으니 책에서 봤던 내용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더군요. 무과시험을 치르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버들가지로 친친 동여 메고 다시 시험을 치렀던 이야기하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하면서 시작되는 시조에 나오던 바로 그 큰 칼과 말로만 듣던 <난중일기>도 전시해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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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랍니다. 해마다 한 권씩 따로 있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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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생활때의 모습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하고 시작하는 시조를 잘 아시지요? 바로 그 한산섬 시절의 충무공의 모습을 그림을 나타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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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칼 옆에 차고~ 이순신 장군이 쓴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시조에 나타난 긴 칼입니다. 장군이 쓰던 칼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진짜 크더군요. ⓒ 손현희


기념관에서 나와 이제 현충사 본관까지 걸어갑니다. 이 추운 날에도 구석구석 우리처럼 구경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어 참 기분 좋더군요. 들머리부터 본관까지 가는 내내 풍경도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큰 소나무 가지가 휘어질 대로 휘어져서 마치 우리를 마중 나와 반기기라도 하는 듯 양 옆으로 선, 운치 있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 높다랗게 자리한 현충사를 바라보니, 꽤나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한글로 쓴 현판이었어요. 참 정겹더군요.

가장 먼저 향을 피우고 묵념을 하면서 나라를 구하려고 애쓴 충무공의 넋을 기렸습니다. 고맙다는 마음을 함께 담아서요. 방명록에 이름도 남기고 살펴보니, 하루에 못해도 두 쪽씩은 이곳을 다녀간 손님들의 이름이 적혀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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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에서 내려다보는 아산시 현충사 본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꽤 멋스럽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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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옛집 충무공이 혼인하여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아 살았던 옛집이랍니다. 집 뒤쪽에는 가묘가 있고 충무공의 신위가 모셔져 있답니다. 지금도 해마다 이곳에서는 기제사를 모시고 있답니다. ⓒ 손현희


본관을 벗어나 모퉁이를 돌아서니, 그 옛날 장군이 살았던 옛집이 있었어요. 여느 옛집의 정취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이곳에서 장군이 혼인한 뒤 장인한테 물려받아 살았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답니다. 생가 앞에는 장군이 무예를 익히며 갈고 닦던 활터도 있었어요. 저 멀리 있는 과녁에다가 화살을 쏘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활터에서 나도 따라서 활을 겨누는 시늉도 해봤지요.

추운 날씨,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덮어놓고 나선 여행, 그렇게 찾아온 충남 아산시에서 가장 먼저 찾아온 현충사의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이젠 다시 아까 올때 보았던 온양민속박물관까지 걸어서 갑니다. 그 옛날 남편이 예까지 와서 빨리 가자 재촉하는 후배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나왔다던 바로 그 박물관에 말이에요.
#현충사 #이순신장군 생가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아산시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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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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