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800억 전자주민증 사업, 대체 왜 하나?

[주장] 경제적 타당성도 개인정보보호 확신도 없는 사업

등록 2011.12.28 12:05수정 2011.12.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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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전자주민증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16년간 국회와 인권단체들의 거듭되는 반대에도, 반대에 부닥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세부 계획을 변경해서 드디어 제1야당의 반대 없는 사실상 여야 합의 처리로 상임위 통과까지 이루어낸 행정안전부 관료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매사 이런 자세를 견지한다면 우리 행정부에서 못 해낼 일이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리 행정 역사에서 여기에 비유할 만한 사건은 단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 1988년 농업용지 개발을 목표로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초기부터 환경 파괴는 물론 경제적 타당성 부족으로 논란에 시달려왔다.

건설교통부와 전북도 역시 농업용지의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함을 깨닫고는 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나중에는 관광레저용지로 개발하겠다고 하기에 이른다. 결국 18년만인 2006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사업은 추진되게 되었지만, 지금 황량한 새만금 간척지에 가보면 도대체 이 사업이 왜 필요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요즘은 그 넓은 땅을 골프장으로 채우겠다고 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개발여건 성숙 정도를 고려하여 적기개발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 아래 유보용지라는 개념까지 도입하고 있다. 한마디로 땅은 만들어놨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 이 사업이 필요했는지, 꼭 필요한 사업이었는지는 아무 상관없이, 만들기로 했으니 무조건 만들었던 것이다.

대책 없는 전자주민증 도입, 새만금 때랑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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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계획의 변천사 (출처 : 새만금사업단 웹사이트) ⓒ 새만금사업단


지금 전자주민증을 둘러싼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의 태도가 딱 그 짝이다. 차라리 1996년 처음 전자주민증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에는 빅브라더의 탄생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좌초되었을지언정 최소한 경제적 합리성만큼은 갖고 있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친 지금의 계획은 국가 감시의 의혹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면서 수천억을 왜 써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 행정안전부(당시 내무부)가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 하였을 때의 명분은 통합신분증이라는 경제적 합리성이었다. 그러나 통합신분증을 만들면 의료, 금융 등 전 국민의 온갖 기록이 낱낱이 정부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었다.


그러자 2006년에는 IC칩을 도입해 보안성을 강화하고 매칭키만을 전자정보에 담겠다는 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매칭키 자체가 언제든 다른 신분증과 연계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자, 이번에는 아예 성명, 주민등록번호, 지문, 사진 등 현행 주민등록번호에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칩에 담겠다고 나왔다. 또한 칩 정보가 단말기 이외의 어떤 다른 네트워크로 전송되지 않도록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대로라면 당장 빅브라더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보다 위변조가 조금이나마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행정안전부 추산으로만 앞으로 5년간 4000억이 소요된다. 그냥 현행 주민등록증을 쓴다면? 앞으로 10년간 유지관리비용으로 1000억이 든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면 현재와 대비해서 매년 700억씩 더 들어가야 한다.

1년에 800억씩 더 들여서 하겠다는 게 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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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에서 공개한 전자주민증 예시 모형 ⓒ 행정자치부


그렇다면 그 돈을 들여 얻을 수 있는 효과란 무엇인가? 1년에 400~500건 정도에 불과한 위변조 사례를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이 주민등록증 표면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의문점 두 가지. 우선 1년에 500건이 정말 적은 숫자인가? 그 대부분이 엄청난 사기에 이용되는 거라면 적지 않은 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주민등록증 위변조로 인해 구속된 경우가 1%, 즉 5건 정도에 그쳤다. 실형 선고도 아니고 입건되어 구속된 경우만 얘기하는 거다.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기껏해야 미성년자 출입금지 업소에 들어가기 위해, 부모 몰래 휴대폰을 개설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위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정도 문제 때문에 매년 700억을 더 들이는 게 합리적인가?

다음으로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이 주민등록증 표면에 노출되지 않으면 어떤 장점이 있나? 사실 주민등록증 한번 훑어본다고 해서 주민번호나 지문이 유출될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식의 사례를 들어본 적도 없다. 수많은 주민등록번호 유출 사고는 거의 다 인터넷 사이트나 금융기관, 이동통신사 대리점 등에 집적된 개인정보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유출되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일이지, 주민등록번호가 주민등록증 표면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사고는 거의 없다. 게다가 행정안전부는 친절하게도 금융기관이나 이동통신사 대리점 등은 어차피 단말기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나 지문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얘기하기로는 단말기를 통해 정보를 볼 수는 있지만 저장하지는 못하게 하겠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금융기관과 이동통신사들은 본인 확인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현행처럼 주민등록증 복사를 해봐야 거기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본인확인이 이루어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는 의혹... 타당성 조사 다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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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자주민증 관련 토론회 ⓒ 이주연



그러니 전자주민증 인식 소프트웨어에는 저장 기능은 없더라도 인쇄 기능은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면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말라는 얘기와 같은 얘기가 되는 건데, 정말 그럴 거라면 주민등록번호를 IC칩에 포함시키지 않는 게 더 간단하다.

이러니 도대체 전자주민증을 도입한다고 무슨 실익이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연간 800억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서 스마트카드 관련 산업에 쏴주는 것 외에는 어떤 합리적 이유도 찾기가 어렵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새만금 사업처럼 4년에 22조도 정도도 아니고 고작(?) 5년에 4000억 정도 예산을 삼키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16년의 시간을, 몇 차례의 좌절을 겪고 계획을 뒤집어가면서까지, 성사시키려고 공을 들였다는 사실이다. 16년이면 몇 배 더 큰 규모의 국책사업을 서너 개는 더 만들어냈을 시간이다. 그러니 이 전자주민증이 행정안전부의 말과는 달리 통합신분증으로의 확장을 위한, 그래서 전 국민의 다양한 정보를 긁어모으기 위한 교두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어차피 16년을 기다려온 사업이 아닌가? 경제적으로 타당성은 있는지, 행정안전부가 공언하는 대로 개인정보가 지켜질 수 있는지, 나아가 굳이 개인정보를 전자화할 필요가 있는지 우선 검증한 후에 통과시켜도 늦지 않다. 국회는, 법사위는 법안 처리를 미루고 경제성 평가와 프라이버시 영향 평가부터 먼저 실시하게 하라.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함께하는시민행동 기획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함께하는시민행동 기획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자주민증 #개인정보 #삼성 #새만금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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