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법, 연내에 끝내야 한다

[주장]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등록 2011.12.27 21:07수정 2011.12.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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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안의 타결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출생예정일보다 만 2년 늦어진 법안이라 그런지, 진통이 크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어렵게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시민사회조차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여야는 1공(1공에는 KBS, EBS, MBC)다민(SBS와 종편), 종편의 미디어렙 적용은 2년 유예, 미디어렙 소유지분은 방송사(미디어 홀딩스 불허) 40% 이하, 크로스미디어 판매 불허 등으로 협상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민희 최고위원이 "미디어렙법안의 성안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6인소위에서 합의한 방송광고대행법안에 대해 재협상을 시도하고 진전이 없으면 연내 미디어렙 입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중소방송발전지원법을 발의하고 연내 미디어법 입법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이 다수당이 된 내년 총선이후로 미디어렙 처리를 연기하자는 주장은 정말 순진한 이상론이 아닐 수 없다.

최민희 최고위원의 주장은, 한나라당의 당론에 따라 어설프게 타협안을 도출하여 종편에게 날개를 달아주느니, 차라리 내년 총선 후 여소야대로 국회 권력을 차지했을 때 제대로된 미디어렙법안을 제정하여 종편을 묶고, 방송사의 지분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일견 시원시원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우자는 주장이 아닌가 싶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년 총선은 4월 11일 치루어진다. 그리고 총선의 결과는 야당이 대승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통합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미워서, 총선 결과 민주통합당이 승리를 구가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총선이 끝났다고 바로 원구성이 되지 않는다. 총선 이후 의석분포에 따라 상임위 구성을 하고, 국회의장과 부의장 그리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여 원을 구성한다. 그 구성은, 패배의 쇼크를 벗어나지 못했을 한나라당에서 책임론, 이 대통령 탈당 주장 등이 제기되면서 아마도 상당 기간이 지나야 여야 협상이 시작될 터이다. 여야 협상이 시작된다 해도 어떤 상임위의 위원장을 주고받을 것인가 등을 놓고 또 시간을 끌 것이다.


18대의 경우 3개월이 걸려서야 원이 구성되었다. 19대 국회의 경우 잘 되어 6월초에 원 구성을 했다고 하자. 바로 대선국면에 돌입한다. 문방위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당선의 기쁨도 잠시, 미디어 산업의 현안 문제, 종편 허가 취소 문제, 미디어렙 법안 제출 등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국면이다. 문방위 의원들이 '한가하게' 법안 준비를 할 여가가 없다. 정권이 갈리고 대선 후 논공행상 문제가 있으니 또다시 표밭을 누벼야 한다.

그러면 곧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이다. 당선자가 가려지면 인수위 구성에 들어가고, 자리다툼이 벌어지며, 방송통신위원회 해체 등 정부조직 개편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는데, 미디어렙 법안을 다룰 정신이 과연 있을 것인가.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가 연상된다. "안돼!".

이렇게 상황이 전개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생각해보자. 이미 SBS는 '불법 무허가' 미디어렙인 미디어크리에이트를 가동, 2011년 1월부터 영업을 실시하고 있다. MBC도 자회사 형태의 미디어렙을 만들어, 3월부터 SBS와 경쟁하면서 광고재원을 무한흡입해 가고 있다. 종편들은 자유롭게 직접 영업을 하면서 보도와 광고를 연계하여 광고주들을 겁박하고 있다.

그리고 각 방송사는 총선, 대선 국면에서 카메라 기자를 앞세워 국회의원과 정치권을 취재하면서 "지금 한창 잘 하고 있는데 왜 쓸데없이 다시 미디어렙의 족쇄를 채우려 하느냐"고 협박 반 로비 반의 취재를 할 것이다. 방송사의 공격이 두렵지 않은 정치인, 국회의원은 없다. 아마도 많이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상파와 종편의 카메라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동안, 종교방송, 지역방송 그리고 군소 PP, 조중동외의 신문 들은 치명타를 입고 빈사상태를 헤맬 것이다.

최민희 최고위원은 한겨레의 <시론>에서 "광고취약 매체들의 '생존권 문제'와 조·중·동과 조·중·동 종편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강짜'를 부리는 한나라당의 행태가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문제인가. 먼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 광고취약 매체들에 대한 확실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디어렙법안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상임위 전병헌 의원이 관련 법안을 마련해 두었다니 고마운 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병헌 의원이 미디어렙 법안의 불성립을 전제로 <중소방송발전지원법안>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법안을 가지고 한나라당과 협의를 한 적이 있는가? 언론노조, 언론연대, 종교방송협의회 등의 시민단체조차 중소방송지원법을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설사 시민단체들이 협의를 했다 치자. 미디어렙법안을 무산시킨 후, 특별히 한나라당과 긴급하게 협의해 중소방송발전지원법을 만들 수가 있는가? 한나라당이 응해줄까? 만약 응한다 했을 때 임시국회는 언제 열 것인가? 2월에? 공천이 걸려 있고, 국회의원 당락이 목전에서 나누어지는 2월에 중소방송발전지원법안을 놓고 여야가 사이좋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인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미디어렙에 관한 규정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지상파방송사들이 중소방송에게 연계판매를 해줄 것인가. 미디어렙법안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소방송발전지원법만큼은 성립시킨다는 이야기는, 여야가 원만하게 국정을 논의할 때 가능한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이런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종교방송과 지역방송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길은 한가지뿐이다. 총선과 대선 후, 언젠가 이루어질 미디어렙 법안의 성립 때까지 풀뿌리를 씹으면서 연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연명하는 것은 아주 쉽다. <사마귀 유치원>에서 최효동이 말하는 대로 "숨만 쉬고 있으면 된다".

그러니 최민희 최고위원과 민주통합당에 요구한다. 간단한 요구이다. 새로운 미디어렙 법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종편을 묶어두고, SBS와 MBC를 코바코 체제에 묶어둘 수 있다면 총선 후 제정을 주장해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늑대 네 마리가 정글에 나타났다고 해서, 호랑이와 사자까지 풀어놓자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 생태계가 괴멸되어 버린다. 한번 우리를 벗어나 피 맛을 본 호랑이와 사자는, 절대로 다시는 우리 속으로 걸어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누차 강조했지만, MBC의 선택은 우리나라 방송의 앞날을 좌우한다. 지상파 판도는 KBS 30%, MBC 45%, SBS 25%이다. MBC가 공영성을 추구하느냐, 상업성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지상파 나아가 방송 전체의 방향이 공영성이냐 상업성이냐로 나뉘어진다. 종편이 미디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 않다.

반면 거인 MBC의 행보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SBS와 MBC가 경쟁하면서 상업성을 키우면, 20%만 더 끌어가도 3000억의 재원이 사라진다. 종편 못지않은 탐식성이고, 종편 못지않은 피해를 준다. 종편이 밉지만, 종편 죽이자고(최민희 최고위원 주장대로 총선 후 제정한다고 해도, 종편에는 전혀 영향도 못 주겠지만) MBC까지 풀어놓아 지역방송, 종교방송 나아가 중소미디어들을 모두 죽여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이상론을 말할 수 있다. 지고지선의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고 건곤일척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서로 입장 차이가 있는 여야가 만나 협상을 하다보면, 서로 양보도 해야 한다. 방송의 공영성과 언론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담보한다는 대(大)를 위해, 지분과 종편 유예라는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고 본다.

미디어렙법안을 찢는 사람이 있다면, 줍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주전파만이 애국자가 아니요, 주화파라고 매국노가 아닌 것이다.
#미디어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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