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친구로부터 받은 성탄 카드

등록 2011.12.28 09:30수정 2011.12.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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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의외입니다. 제 앞으로 온 성탄 카드가 아닙니다. 아내가 받은 카드입니다. 그것도 딸애의 친구로부터 받은 성탄 카드여서 더 의외입니다. 제 딸애는 지금 고2입니다. 새해가 되고 겨울 방학이 지나고 개학하면 고3이 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고3 하면 큰애로 통했고 곧 숙녀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고3이라고 해도 애들 티가 덕지덕지합니다.


그런 딸애의 친구 중에 '신서'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신서, 신서' 해서 저도 그 아이 이름을 신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카드를 받아보고 '신서'의 정식 이름이 '신소연'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 아이들이 '신소연'을 줄여 그냥 '신서'라고 불러준 듯합니다. 소연이는 딸애와 한 반입니다. 반장을 맡아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공부도 잘 하고 마음도 착하니 자연 주위 친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연이는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꽤 됩니다. 버스를 타면 30여 분을 가야 하니 지방의 군소도시 김천에서는 먼 거리에 속합니다. 그래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기숙사 생활이라고 해도 몇몇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어서 잠만 잘 수 있는 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학교 식당에서 먹을 수 있지만 아침 식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인지라 별 불평 없이 잘 견뎌내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땐 어김없이 불편함이 따른다고 합니다. 특히 소풍 갈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할 형편이 안 됩니다. 그런 사정을 안 아내가 딸애 도시락을 싸면서 소연이와 몇 아이들 몫까지 함께 싸서 도시락을 보내곤 합니다. 아이들이 밝게 자라고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기쁘다며 즐겁게 그 일을 했습니다. 소연이는 그것을 사랑으로 여기고 마음 속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소연이가 보낸 성탄 카드를 읽고 키득키득 웃기부터 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아내로 살아오면서 늘 '사모님'이란 호칭으로 불려왔는데, 글쎄 소연이가 '아주머니'라는 표현을 성탄 카드 감사 인사 중간 중간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생소하면서도 재미있고 또 정겨운 표현이라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늘 '목사님'으로 불리다가 가끔 카센터를 가거나 아니면 목욕탕 등지에서 '사장님'이란 표현으로 불릴 땐 맛깔스럽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친구의 어머니에게 성탄 카드를 만들어서 이렇게 정성껏 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의 과거를 되돌아 볼 때, 친구 어머니에게 성탄 카드 또는 연하장을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라도 했습니다. 아내가 딸애의 친구 소연이에게서 받은 성탄 카드는 그런 점에서 의외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카드를 거실 책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소연이가 쓴 감사 글이 잘 보이도록 펼쳐서 책장 상단 중간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내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무언가 도움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가끔 아내와 같이 서울 나들이라도 할 때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할머니들을 붙잡고 친구가 되어  주는가 하면, 또 버스 터미널에선 가출해서 무단 상경한 지방의 여중생을 설득해서 돌려보내는 수고까지 아끼지 않습니다. 또 집에까지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는 노숙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식사를 차려 먹게 하고 교통비까지 손에 쥐어 돌려보냅니다. 밤늦게 찾아오는 나그네에게는 사택 욕실에서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워 보내기까지 합니다. '지극 정성'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에게 성탄 카드를 보낸 소연이도 집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밝고 맑게 생활하는 것을 늘 기특하게 여겨왔습니다. 공부도 잘 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갖고 있고 리더십도 있습니다. 지난 5월 어느 날엔가는 딸애의 생일 선물이라며 가영이와 함께 세 친구의 우정을 자랑하는 기념 첩을 만들어 생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꼬박 밤을 샜다고 합니다. 대단한 우정이고 정성입니다. 그것에 대한 사연을 제가 칼럼으로 정리해서 한 인터넷 신문에 기고했던 적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의 우정이 비교적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소연이와 제 딸애의 우정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소연이는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 제 딸애와 또 다른 교회 목사님 딸을 생각할 때 교회에 다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소연이의 믿음 생활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소연이가 아내에게 보낸 카드에 올린 감사 인사를 원문 그대로 올리려고 합니다. 아내는 기분 좋다고 하지만 혹 소연이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To : 현경이 어머니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현경이 친구 소연이예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시험 기간 동안 현경이가 싸온 샌드위치 매일 같이 맛있게 먹었어요. 아주머니 음식 솜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주 명성이 자자해요. 저도 현경이한테 무엇인가를 줘야 하는데, 맨날 얻어만 먹고 있어요.

저와 친한 친구로 현경이와 가영이가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저한테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다녀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천이 안 돼요. 아주머니, 현경이를 통해서 얼핏 들었는데, 교회 일 때문에 금식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소녀 같으신 아주머니가 금식을 하시다니…. 저는 아주머니가 항상 힘내시면 좋겠어요.

아주머니처럼 착하시고 마음이 고운 분은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실 거예요. 아주머니, 제 주위에는 참 좋으신 분들이 많아요. 항상 사랑과 관심 주세요. 아주머니,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늘 좋은 일과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래요. 늘 화이팅 하시구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11. 12. 23. 소연 올림

제법 어른스런 어휘를 동원해서 쓴 성탄 감사 편지입니다. 목사님의 딸들(현경, 가영)을 친구로 두어서 언제가 교회에 나가게 될 것 같다는 소망도 곁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목사님의 사모님인 친구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이라며 신앙적 문장도 포함시키고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이런 소연이가 교회에 나와 함께 믿음 생활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의 신호라며 감사했습니다. 소연이가 잘 자라 이 사회에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피력했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소연이가 친구 어머니인 아내에게 보낸 성탄 카드는 그래서 좀 의외의 선물이었습니다.
#성탄 카드 #딸의 친구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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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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