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어륀지? 헤매지 말고 이 책 보세요

['지못미' 올해의 책②]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등록 2011.12.30 08:13수정 2011.12.3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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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의 유통기한은 요구르트보다 짧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새 책에 밀려 어느새 독자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간 책들. 이대로 잊혀지기에는 참 아까운 책인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던 책들이 참 많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그 가운데 '지못미' 올해의 책 세 권을 골라 다시 읽어봤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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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표지 ⓒ 뿌리와이파리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이란 책에 허영심은 신이 인간에게 준 미덕이란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알뜰하고 소박한 나에게도 허영심이 좀 있다. 남들 하나씩은 다 갖고 있다는 '○○○똥' 가방이나 '○넬' 가방을 향한 불타는 욕망은 아니다. 패셔니스트가 외모의 꾀죄죄함을 못 참듯이 나는 내 머리 속의 꾀죄죄함을 못 참는다.

그래서 나의 허영심은 가방이 아니라 책방에서 본색을 드러낸다. 책방을 기웃거릴 때는 불타는 구매욕에 마구 사로잡힌다. 그 구매욕으로 찾아낸 올해 나의 명품은 타밈 안사리가 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란 책이다. 올 한 해 이슬람 세계는 그 어느 곳보다도 변화무쌍하고 격렬했다.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은 30년이 넘도록 철권통치를 유지해온 이집트의 무바라크와 리비아의 카다피를 비롯한 장기 독재정권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아랍 여러 나라에 민주화 열풍을 일으켰다. 또한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고, 9년여를 끌어온 이라크 전쟁이 종전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하면 테러를 먼저 떠올리고, 부르카나 히잡으로 상징되는 여성차별과 억압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진짜 그럴까? 내게 이슬람은 과격하고 호전적인 이미지보다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천일야화>로 기억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인데, 왜 이슬람이 세계의 화약고로 동네북이 됐을까, 사뭇 궁금했다.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제목부터 남다른 이 책, 바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이다. 그동안 길들여졌던 서구의 시각에서 본 세계사가 아니라, 이슬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사라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은 인류 문명을 이끌어 온 거대한 한 축임에 틀림없다.

추천사를 보니 책에 대한 찬사 또한 대단하다. <식량 전쟁 :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를 쓴 라즈 파텔이 이 책을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는 완벽한 해독제'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내 궁금증의 치료제도 될 수 있을 듯하다.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 누가 지어낸 말이야?


저자부터 살펴보자면 타밈 안사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유서 깊은 이슬람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불 대학교의 교수였고, 어머니는 아프가니스탄 남자와 결혼해 그곳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선은 지극히 중립적이다. 타밈이 들려주는 이슬람 초기의 이야기는 마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재미나고 구수하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현 이슬람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치부까지도 드러내면서 편향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계사를 통찰한다. 무엇보다도 그 점이 매우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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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퇴임을 한 달여 앞두고 이라크를 깜짝 방문한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알 말라키 이라크 총리와 기자회견 도중 이라크인 기자가 신발을 던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 AP/연합뉴스


이슬람은 전 세계 인구의 1/5이 넘는 13억 명의 신도를 가진 종교이다. 그야말로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슬람의 교세가 이처럼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른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라는 이슬람의 강압적인 종교전파 방식 때문이었다고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죽음과 믿음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슬람은 결코 폭력적이지도,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이슬람 제국은 정복한 지역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큰 저항 없이 서로 공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용이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오히려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된 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것은 십자군전쟁 패배 후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확산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에서 유래한다. 그후 아퀴나스의 이 말은 마치 이슬람의 본질이 폭력에 기초한 것처럼 왜곡되어 무비판적으로 우리에게 이식된 것이다.

그 결과 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로 비춰졌으며, 급기야는 이러한 호전성이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분쟁, 폭력의 화근이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문명의 우월성과 유럽중심주의를 강조하고 그들의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어져 온 것이다.

"세상이 부패했지만 네가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믿음의 강요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에서 훨씬 심했다. 아메리카를 정복한 유럽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라. 길을 가다보면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를 외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올해 초에는 조계사 경내에서 예수를 믿으라며 소란을 피웠던 목사와 신도들도 있었다.

타 종교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떠나서 나는 진짜로 궁금하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인지.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해서 갈 수 있는 천국이라면 난 전혀 가고 싶지 않다. 거기서 "서울시를 봉헌하겠다"던 분을 다시 만난다면 이미 그곳은 천국이 아닐 테니까.

많은 종교가 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부패했지만 너는 탈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부패했지만 네가 변화시킬 수 있다." (본문 105쪽)

탈출과 변화,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쪽이 더 매력적이다. 혼자 탈출해서 잘 살라고 유혹하는 것보다 고생되더라도 함께 노력해서 변화시키자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가 잘 몰랐던 이슬람의 공동체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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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 후,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던 마지막 미군이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로 철수하고 있다. ⓒ Newyork Times


서구 시각으로 이슬람 세계를 재단하지 말라 

9·11 직후 부시는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그 후에는 대량살상무기를 핑계삼아 이라크를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민주화시키겠다고 전쟁을 일으켰다.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은 죽었고 전쟁은 끝났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저자는 서구의 시각으로 이슬람의 세계를 재단하지 말 것을 얘기한다.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아온 무슬림에게 개인주의적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통과 문화를 어지럽히는 이질적인 제도일 뿐이며, 무슬림이 혁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상적인 이슬람 공동체라는 것이다.

서구 중심의 세계사를 기준으로 삼아온 우리에게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볼 것을 이야기한다.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식으로 미국을 향해서만 모든 촉을 열고 있는 이 나라 위정자들에게 이 책은 마치 '오렌지'와 '어륀지' 사이에서 헤매지 말고 '한국인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그려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두껍긴 해도 상당히 재미있고 진도도 잘 나가는 이 책, 지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강추다.

덧붙이는 글 |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씀, 류한원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2011년 8월, 607쪽, 2만8000원


덧붙이는 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씀, 류한원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2011년 8월, 607쪽, 2만8000원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뿌리와이파리, 2011


#타밈 안사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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