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핵 포기... 생각처럼 쉬울까?

[정욱식 칼럼] 김정은과 핵무기(상)

등록 2011.12.28 17:49수정 2011.12.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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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은 "핵과 위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12월 28일 치 북한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혁명유산은 "핵과 위성, 새 세기 산업혁명, 민족의 정신력"이라며 "핵보유국과 위성 발사는 대국들의 틈에 끼여 파란 많던 이 땅을 영영 누구도 넘겨다보지 못했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은 19일 김 위원장 사망 발표 당시에도 "(김 위원장이) 그 어떤 원수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켰다"고 주장했고, 22일 치 <노동신문> 사설에서는 "조국을 그 어떤 원수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위력한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키신 것은 만대에 불멸할 업적"이라고 밝혔다. 한편,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선군영도를 높이 받들고 나라의 자위적 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해 사회주의 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북한의 화법은 중국의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천명한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위성 보유를 찬양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강대국으로의 부상과 급격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핵무장을 둘러싼 오늘날의 북중관계는 1950년대 중소관계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의 대표적인 업적과 유산을 핵무기와 위성 보유라고 밝힘으로써, 북핵 해결 가능성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다. 반면 한·미·일 3국은 김정은 체제의 긍정적인 변화 여부의 척도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삼고 있다. 이러한 양쪽의 흐름은 앞으로도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세가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김정은의 북한, 핵 포기 더욱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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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 영상 공개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 통일부 제공


먼저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는 국가 안보상의 이유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한미 양국의 대북 강경책에 맞서 "핵 억제력"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말해왔다. 김 위원장의 사망을 두고 북한 급변 사태론과 연계시켜 사고하는 한·미·일의 흐름은 북한의 새 정권으로 하여금 "핵 억제력"을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낳을 공산이 크다.

둘째는 김정은 정권이 중국으로의 과도한 종속을 견제할 카드가 필요하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눈에 띄게 증가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급서는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중국 역시 주변 국가들에게 "북한을 자극하지 마라"고 요청하는 등, 발 빠르게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로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중국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핵무장이야말로 북한의 자주성과 정책 자율성을 유지하는데 유용하다고 볼 것이다. 이는 과거 중국·소련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핵무기를 '종이호랑이'에 비유했던 마오쩌둥이 핵무장을 선택한 데는 한국전쟁과 대만 해협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핵위협이 커진 탓도 있었지만,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소련의 안보 우산에 의존하는 한, 중국의 주권과 정책 자율성은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중소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마오쩌둥과 유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셋째는 북한 내부적인 이유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비핵화를 선택하는 것은 군부의 이해관계에 반할 수 있다. 또한 북한에게 핵 포기는 가장 어렵고도 전략적인 선택인데, 김정은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국, 북한의 핵무장 현실로 받아들일까?

지정학적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중국은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에도 북한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왔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보다 북한의 안정에 더 큰 전략적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중국의 득실관계 판단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북한의 핵무장에 따른 중국의 가장 큰 우려는 한반도의 불안정과 동북아에서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경제력과 외교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일본·대만 등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핵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반면 북한이 핵무장을 통해 한·미·일을 상대로 자체적인 "억제력"을 확보한다면, 중국으로서도 안보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필자가 만나본 다수의 중국 전문가들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공격당한 사례는 없다"며 "북한의 안보 불안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핵포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이와 관련해 1950년대 소련이 중국의 핵개발을 적극 도운 사례는 오늘날의 북·중 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소련은 중국의 자체적인 핵 억제력 확보가 미국·중국의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 자국이 중국을 방어해야 할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중국이 50여 년 전 소련과 흡사한 생각을 하고 있을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북한의 신년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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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북한이 장례식때까지 13일간 애도기간에 들어간 가운데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마을 대형 인공기가 조기로 걸려 있다. ⓒ 권우성


정리하자면 김정은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고, 중국도 북한의 핵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이거나 북핵 해결을 '장기적 과제'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분석과 전망이 타당성을 지닌다면, 향후 한·미·일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 것이고, 또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우선 관심의 초점은 북한의 신년 사설에 모아진다. 신년 사설에서도 '핵과 위성 보유는 김정일의 업적이자 유산'이라고 강조된다면, 그리고 김정은 체제가 이를 계승할 것이라고 천명한다면, 비핵화를 가장 중시하는 한·미·일의 냉담한 반응과 맞물려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은 고조될 것이다. 반면에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고 '6자회담을 통해 이를 달성하는 것이 변함없는 목표'라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면, 대화와 협상의 동력은 되살아날 수 있다.

핵 문제에 관한 신년 사설의 내용을 예측해보자면, 북한은 이 두 가지, 즉 '핵 억제력'의 필요성과 '조선반도 비핵화'를 동시에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의 북한' 역시 '양다리 걸치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김정은 정권이 핵 문제와 관련해 아버지의 노선을 답습하거나 더 완강한 자세를 보인다면, 한·미·일의 대북정책도 딜레마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 북한의 새로운 정권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설지, 아니면 내년에도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지루하고 때로는 위험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사망 #김정은 #핵무기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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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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