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꼼수정권'

등록 2011.12.28 16:27수정 2011.12.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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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거의 모든 영농 방법이 기계화되어 있고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또 고인 물이 장기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에 농촌 어디에도 '둠벙'은 없다. 옛날에는 논배미에 있는 둠벙들을 다니며 멱도 감고 바구니나 체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그러다가 몸에 붙은 거머리를 손으로 떼어내는 일도 흔했다. 큰 두레박 양쪽 두 가닥의 줄을 두 사람이 양쪽에서 양팔로 잡고 호흡을 맞춰 둠벙 물을 논으로 퍼내던 일이 아롱아롱하다.

수렁의 실체

농촌에서 흔하던 둠벙이 모두 사라진 것과 함께 크고 작은 늪들이 거의 사라졌다. 또 논배미나 둠벙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수렁들도 모두 사라졌다. 수렁은 늘 칙칙한 색깔의 물을 머금고 있었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곤 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수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수렁은 누구에게나 식별이 가능했다. 아무도 수렁에는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학동 시절 친구들 중에 수렁이 얼마나 깊은지 한번 알아보자며 옷을 벗고 걸어 들어간 녀석이 있었다. 혼자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동료들이 있기에 친구 녀석이 용기를 부려본 것이다.     
     
몇 걸음도 떼지 못했는데 더는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몸이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더니 허리까지 들어가버렸다. 허리까지 들어간 상황에서는 도저히 혼자서는 나올 수가 없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에서 그 친구는 사색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지혜롭게 준비해간 긴 작대기가 있어서 여럿이 힘을 합해 그 녀석을 수렁에서 끌어낼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소년 시절에 이미 수렁의 실체를 경험했다. 내가 직접 빠져본 것은 아니지만, 장난기 많고 모험심도 강한 친구 녀석 덕분에 수렁의 실상을 목격했다. 수렁에 빠져 죽었다는 사람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또 우리나라에는 머리까지 폭삭 빠져버리는 수렁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허리까지 빠지는 수렁들은 분명히 있었다. 따라서 혼자 수렁에 빠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수렁에 빠지면 작대기가 필요하다

인생을 살면서 종종 수렁 생각을 한다. 우리 삶에는 수렁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 속에도 수렁은 존재하고, 사회나 국가에도 수렁은 존재한다. 갖가지 성격, 오만 가지 양태의 수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국가적인 것이라면 당연히 역사의 질곡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수렁을 생각하고 역사를 의식하다 보면 4·19혁명 직전의 상황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 안에는 이미 깊은 수렁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수렁을 만들었고, 스스로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수렁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아니다. 수렁을 의식하면서도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짓을 마구 감행했다. 수렁인 줄을 알았기 때문에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갖가지 미친 짓을 감행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 중에 수렁인 것을 미리 알고도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수렁인 줄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이미 빠진 뒤에야 자신이 수렁에 빠졌음을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단순하고도 평범한 일반론이다. 수렁인 줄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빠지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수렁인 줄을 알면서도 자못 용감한 척 만용을 부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일단은 학동 시절의 내 친구 녀석처럼 '지혜롭게' 동료들을 대동하고 작대기도 준비한다. 동료들과 작대기를 믿고 또 허세도 부리며 수렁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세상의 일이란 묘해서, 그 작대기만으로는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작대기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고, 너무 짧아서 무용지물이 되는 수도 있다.

오늘, 4·19혁명 직전의 상황 같은 역사의 수렁이 만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승만의 후예들 모두 일단은 용감무쌍했다. 용감하게 돌진하다 보니 온갖 거짓말과 무리수와 꼼수가 필요했다. 그것 자체가 만용이었다. 용기와 만용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만용 속에서 과도하게 업적을 생각하다 보니, 업적과 업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놈의 업적 때문에 많은 업보를 만들었고, 업적으로 착각하는 업보들은 깊고 깊은 수렁이 되었다.

일단 수렁에 빠지고 보니 많은 작대기가 필요했다. 만용 대열에 동참한 이승만의 후예들은 이리저리 갖가지 작대기들을 동원했지만, 신실하지 못한 작대기들이어서 하나같이 무용지물이 되고 오히려 자충수가 되었다.

선거혁명으로 미완의 4.19혁명 완성시켜야

앞으로 고작 1년 남은 기간에 또 얼마나, 어떤 형태의 작대기들이 동원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신실하지 못한 작대기들일 게 뻔하다. 너무 깊숙이 수렁에 빠져 버려서 '꼼수'라고도 불리는 조악하고 간특하고 허약한 작대기로는 수렁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 스스로 수렁을 만들기는 했으되, 또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그 수렁은 덫이 되고 질곡이 될 수밖에 없다. 요술방망이가 처음에는 통했을지라도 계속 통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모두가 불행하다. 이승만의 후예들만 불행한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불행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다. 어이없고도 엄청난 역사의 수렁을 스스로 만들어 4.19혁명을 자초한 이승만과 그 후예들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을 때 수렁 극복이 가능한데, 점점 그 식별의 눈들이 커지고 있음이 명확하다.

다행히 또 한 고비 역사의 질곡을 지나오면서 다수 국민들은 역사에 대한 혜안을 갖게 되었다. '꼼수'라는 말이 생겨나고 회자되는 시대의 배경을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혜안과 통찰력으로 시대의 불행, 수렁을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함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 혜안과 통찰과 자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2012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2012년 새해에는 총선과 대선이라는 최고의 국가 대사를 치르게 된다. 선거혁명이 필요하다. 선거혁명으로 미완의 4.19혁명을 완성시켜야 할 장엄한 역사의 장이 우리에게 펼쳐질 즈음인 것이다. 역사는 국민이 만드는 것이지 한 시절의 권력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님을 다 함께 깊이 명심하고, 다 함께 분골쇄신의 주먹을 쥐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이명박 정권 #수구 집단 #한나라당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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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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