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맞아도 모른 체 하는 아이 늘고 있다

[학교폭력, 이대로는 안 된다 ①] 경쟁 위주의 교육 정책이 학교폭력 불러

등록 2011.12.28 18:22수정 2011.12.29 16:51
0
원고료로 응원
마그마는 땅 속 깊은 곳에 늘 그렇게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잘 모르고 지낸다. 그러다가 화산이 터져 마그마가 용암으로 분출이 돼야 땅속에 그렇게 뜨거운 물질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일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학교폭력 문제가 그렇다. 욕설과 '왕따' '빵셔틀' '신발셔틀'등의 조롱, 그리고 물리적 폭력의 형태로 행해지는 이 문제는 아이들에게 있어 일상에서 항상 부딪히는 현실의 문제다. 하지만 어른들은 평상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피해를 입은 아이가 사망하거나 자살에 이른 정도의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호들갑을 떤다.

2011년 12월 들어 학교폭력과 연관된 것으로 판단되는 자살·사망사건이 연이어 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대전의 한 여고생이 아파트 14층에서 투신 자살하더니, 19일 청주에서는 일진 아이들이 주로 벌이는 놀이 때문에 한 중학생이 사망하고, 20일 대구에서도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집단괴롭힘으로 인해 자기 삶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 중에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통해 자신의 괴롭힘 실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의 유서에 적힌 내용이 모두 사실로 밝혀지고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진실이 경찰 조사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무지와 무관심에 묵살되는 사건이 더 심각

a

대구의 D중학교 2학년 학생이 유서를 쓰고 자살해 충격을 주고 있다. ⓒ 조정훈


그동안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많이 있었지만, 이번만큼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없었다. 그 이유는 피해자의 증언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의 실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이들, 특히 피해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느낌이나 생각, 자기 처지, 자기 자신의 요구를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며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일진 아이들이 두려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조차 알지 못한다. 더러는 일진 아이들이 주입한 사고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피해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아주 작은 목소리 또는 침묵의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목소리는 교사와 학교당국, 부모들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철저히 묵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사건에서 아이의 유서가 없었고 경찰 조사를 통해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가해자들은 평범한 아이들이고, 그저 장난이었을 뿐'이라는 학교 측의 설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 했을 것이다. 이는 대전의 여학생 자살사건이 별다르게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 교육을 연구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대구 사건보다는 대전 사건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반응... 반성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 반성을 하지 않고 호통을 치고 있는 현상이다. 지난 23일, 대구 교육감은 유족과 시민들에게 드리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일제고사나 월말고사 등 기초학력 강화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경쟁 위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학원폭력의 심각성을 언급하면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일선 교육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점검할 필요할 있다"며 "범정부차원에서 시급히 대책을 만들어 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편 정책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반성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감동도 없고 반향도 없는 공허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1982년 노르웨이에서 학생 3명이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했을 때 노르웨이 정부가 보였던 반응과 큰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교육부는 사건 발생 후 전국의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학교폭력에 대처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 수상 직속의 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 속에서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폭력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상당수의 전문가와 교사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그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파악일 것이다. 또한 현 정부의 교육 철학과 정책을 검토해야 함은 물론이다.

학교폭력에 '모른 척 한다'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a

영화 <돼지의 왕>의 한 장면 ⓒ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


이명박 정부의 책임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명확하다. 하나는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학생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연도별(2007년에서 2010년까지) 학교폭력 목격 시 대응 행동의 변화 과정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7년에는 학교폭력 대응 시 모른 척 한다는 아이들이 35%, 말리거나 대응한다는 아이들이 57.2%였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해에는 모른 척 한다는 아이들이 53.1%로 무려 18.1%P나 증가했고, 말리거나 대응한다는 아이들의 비율이 39.1%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의 극심해진 빈부 격차와 사회적 약자를 못살게 구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가장 체제 순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의 계급질서나 폭력적 분위기를 가장 먼저 모방하고 내면화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 출범 이후의 냉랭해진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선에 있는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가해자나 소위 '서열이 높은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 지적을 받았을 때 '힘이 약한 아이나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맞거나 심부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응 또는 '다른 아이들도 그러는데 나만 걸려서 억울하다'는 반응이 늘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학교폭력 목격 시 대응행동'은 이명박 정부 기간 중 계속 악화돼 '모른 척 한다'는 아이들이 2009년에는 56.3%, 2010년에는 62%가 됐다. 그리고 '말리거나 대응한다'는 아이들도 급격하게 줄어들어 2009년에 36.2%, 2010년에는 31%가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제고사 강요 등 성적위주의 경쟁정책으로 아이들의 삶을 고통으로 내몬 것 역시 학교폭력의 양상을 더 심각하게 만든 주요한 요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일제고사 강요 등 성적 위주의 교육 정책이 도입된 것 역시 주요한 요인이다. 경쟁을 강요한 교육은 아이들의 삶을 고통으로 내몰며 학교폭력의 양상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성적 경쟁으로 인해 압박을 받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 줄어들었음은 당연하다. 뿐만 아니다.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누구에게 가겠는가. 시험 전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가 시험 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일탈 행동, 문제 행동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대다수의 교사들이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아이들은 극심한 불안과 충동심리를 가장 약한 아이에게 집단적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달아 이어지는 아이들의 자살 사건은 아이들 훈육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비전의 문제, 그리고 현 정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정치적 사안이 되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되레 큰 소리를 치는 모습,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못 살게 굴면서도 당당한 대통령의 모습은 집단괴롭힘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해 아이들에 비해 더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이다.

덧붙이는 글 | 문재현 기자는 청주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문재현 기자는 청주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소장입니다.
#학교폭력 #집단괴롭힘 #일진 #이명박정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