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아날로그 감성이 번지다

[웹투니스타_5] '어떤 교집합'의 고아라

등록 2011.12.29 15:09수정 2011.12.2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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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 작가 ⓒ 홍지연


이야기의 화자는 스무 살의 평범한 대학생인 '수옹'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그의 관찰 대상인 '송 삼촌'과 '송 누나'다. 게스트 하우스겸 한옥체험관인 '우리집'의 영업을 돕기 위해 갓 상경한 송삼촌은 서울 공기가 힘들다며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는 등 예민한 구석이 많다. 
 
어려운 집안형편에도 꿋꿋이 취업준비중인 아르바이트생 송 누나는 한없이 여리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가졌다. 그런데 된장을 치킨으로 착각하는 등의 다른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초현실적인' 실수를 똑같이 저지르는, 별난 두 사람.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수옹은 어느 순간부터 송 삼촌과 송 누나 사이의 닮은 구석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점점 마음이 쓰이고, 점점 복잡한 마음이 생겨난다. 과연 이들이 만들어가는 '어떤 교집합'의 정체는 무엇일까.

트레이드마크인 엷은 수채그림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작가 고아라를 지난 14일 대학로 작업실에서 만났다.


'어서와'로 화려하게 이름을 알리다 

만화가는 자연스레 생겨난 꿈이었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잘 그렸던 탓에 항상 주위에 친구가 많았고, 만화를 그리는 것은 그녀의 자랑스런 힘이었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과정이 당연하게 이어졌다. 재학 중에는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제작사로 유명한 '연필로 명상하기'에서 짧지 않은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2008년 졸업과 함께 닥친 막막했던 상황.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며 잠시 방황도 했지만, 곧 훌훌 털어내고 이듬해 네이버 베스트도전을 통해 웹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약 1년간의 연재가 끝나고 3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어서와>(필명 몹)는 만화가로서 그녀의 존재를 널리 알린 처녀작이다. 자취생이자 복학생인 '솔아'가 친구의 부탁으로 고양이 '홍조'를 맡아 키우며 벌어지는 이 상큼 발랄한 이야기로 그녀는 성공적인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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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의 데뷔작 <어서와> ⓒ 고아라


"신데렐라가 된 듯했죠. 나름 신인치고는 좋은 데뷔였던 것 같아요. 이것(그때에 비해 지금 다소 부진한(?) 상태) 역시 그냥 과정이죠, 커가는 과정. 언제까지 데뷔 초의 인기를 바랄 수는 없으니까요. 돌이 깎이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한테는 떼 많이 쓰고, 울고불고 해요. 인기가 너무 없다고…(웃음)."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 세계는 여류 만화가들의 영향이다. <워킹맨>, <사쿠란>, <꽃과 꿀벌>을 쓴 일본 작가 안노 모요코의 초기작들을 무척 좋아하고, 국내 작가로는 토마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 


수채화 그리고 여백

이후로 그녀는 <사랑하는 나날>, <럭키 미> 등을 완성하고, 지금은 네 번째 작품 어떤 교집합을 연재중이다. 밴다이어그램의 겹친 부분처럼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예전에, 지인들의 트위터를 보다 우연찮게 전혀 왕래가 없는 두 사람이 서로 비슷한 글을 쓰게 된 것을 보면서, 이런 우연이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떤 사람들의 닮은 부분만 찾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 그게 '어떤 교집합'의 시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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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중인 웹툰 <어떤 교집합> ⓒ 고아라


아직 이야기의 초반이지만 그녀의 작품 세계를 잘 아는 몇몇 마니아층은 앞으로의 스토리를 점치며 기대하고 있다. 마니아층을 조금씩 모으고 있는 고아라 만화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특유의 분위기 있는 연출과 그림이다. 
 
유약해 보이는 엷은 선, 마치 눈물이나 세월에 번진 듯한 색감은 웹툰으로서는 보기 드문 서정적인 느낌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여백. 조금 덜 그린 듯한 느낌까지 드는, 꽉 채우지 않은 느낌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녀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예전부터 뭘 하든 여백을 많이 넣었어요. 그 안에 생각을 넣고 싶어서요. 설명을 너무 많이 하기 보다는 안하는 편이 보는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기 더 쉬운 듯해요. 그래서 여백을 두는 편이죠."

모든 작업은 순전히 수작업.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입히고, 스캔하고, 포토샵으로 수정·마무리를 한다. 다소 번거로워 보이는 과정이지만, 손작업 자체를 즐기는 그녀에게는 딱이다. 다른 작가들처럼 그녀 역시 CG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교집합을 시작할 때쯤 다른 느낌을 내보기 위해 시도한 적도 있지만, 작품과 맞지 않아 금세 접어버렸다. 

고아라의 무기는 '따뜻함'

'따뜻함'은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한 단어다. 이야기가, 인물이, 그림이 따뜻하다. 별 내용이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는 중에도 이 따뜻함은 남아 독자들의 감성을 두드린다. 그 힘은 실은, 사람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서 나온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스스로 피곤해질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탓"이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과거도 궁금해지고, 끊임없이 그 사람 자체를 탐구한다. 그래서 다소 엉뚱한 취미까지 생겨버렸다는 그녀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떨지 궁금해요. 저 사람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고, 어떤 부모님 밑에서 컸을까 하고 궁금해해요. 오지랖이 넓어 그런지 처음에는 혼자 마음대로 추측해보죠. 물론 실제와는 100 다르더라고요.(웃음) 나름대로는 철두철미하게 분석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죠. 그렇지만 그런 '간극'이 재미있어서 또 다시 일부러 상상해보곤 해요. 그런 과정에서 캐릭터가 탄생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제법 무난하지만 어딘가 빈 듯하고, 이야기는 주로 인물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앞으로 성장해 간다. 그 주된 동력은 관계이며, 동시에 사랑이다.

"보듬어주고픈 캐릭터를 좋아해요. 그런 캐릭터를 그리다 보면 일단 목적이 생기잖아요. 이런 모자란 친구들이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목적이죠. 목적이 생기니까 스토리 짜는 것도 행복해지고요."

'작품을 읽고 나니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는 소감은 그녀가 팬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칭찬이다. 작가가 되기를 잘했다고 느낄 만한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던 순간이다.

"'시나브로'라는 말을 아주 좋아해요.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삶에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제가 그린 캐릭터들이 읽어주시는 분들께 조금씩, 조금씩 배어갔으면 좋겠어요."

엷게, 때로는 진하게, 하얀 종이 위에 물감이 번지듯 '고아라'라는 색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물들길 바란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이 세상에 더 많이 퍼져나가길 바란다. 그녀가 붓을 드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아라 #어서와 #어떤 교집합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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