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대구에서 연달아 이어지고 있는 아이들의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나 가슴이 먹먹하고 참담하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찌 말로써 다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기사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부모는 왜 몰랐냐?"며 부모에게 이중으로 상처를 주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나 교사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공격은 과연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렇게 부모를 비난 하는 것은 가장 아픈 사람들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통해 학교폭력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배우고 토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먼저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전과 대구 사건의 가해자들이 일진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일진 아이들에 의한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부모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일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징후를 통해서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아이에게 물어본다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부모는 곧 벽에 부딪치게 된다. 아이들이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대구 사건에서도 부모가 아이의 멍자국을 보고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어봤지만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부딪쳤다고 얼버무리고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것이 어찌 그 아이 만의 문제일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대다수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아이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아이들이 사실을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아이들의 특성상 또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른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왕따나 전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진 아이들이 가진 힘과 폭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은 더더욱 말을 할 수 없다.
또 다른 어려움은 부모가 일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부모의 경험과 아이의 경험의 다르기 때문에 부모가 이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노는 아이들은 양아치나 날나리라고 해서 학교의 주류도 아니었고, 그런 아이들이 괴롭히면 공부를 잘하거나 정의감 있는 아이들이 나서서 중재를 하거나 도와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 힘 센 아이, 부자집 아이, 운동 잘 하는 아이들이 일진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학교와 학생문화의 주류이고 누구를 괴롭힐 경우 도와줄 아이들이 있을 수 없다. 평범한 아이들은 일진 아이들이 두려움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기도하기 때문에 절대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7월에 있었던 대구의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여중생 자살 사건이 그런 것이다. 친구를 도와주려고 교사에게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가 일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자살을 한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학습한 아이들은 교사와 부모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말을 해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 고립된 아이들이 선택하는 길이 자살인 것이다.
아이가 이야기해서 일진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과연 부모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어려울 것이다.
학교에 가서 우리 아이가 일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까 도와달라고 이야기 하는 순간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로부터 "우리 학교에는 일진이 없다." 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바로 가해자인 일진 아이들 부모들에게 연락을 해서 학교로 불러 피해자부모를 공격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일진 아이의 부모들은 " 당신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피해를 보게 생겼다. 당신 아이가 문제가 있어서 당할 만 하니까 당하는 거 아니냐? 왜 멀쩡한 아이의 장래를 망치려고 하느냐? " 며 오히려 피해자 부모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행패를 부린다. 만약 교사가 피해자 부모를 도우려고 하면 그 교사마저 학교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일진문제를 초기에 제기했던 선생님, 그리고 학교폭력을 함께 연구하는 우리 모임의 교사들은 학교에 일진문제를 제기했다가 지금도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
피해자 부모가 화가 나서 교육청과 교육부에 학교의 이러한 만행에 대해서 항의를 하고 시정을 요구하면 더욱더 황당한 대답을 듣게 된다.
" 우리는 일진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바도 없고 일진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문제는 학교장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
이건 가상시나리오가 아니다. 우리가 연구하면서 여러 번 경험했던 실제 상황이다. 지칠대로 지친 피해자 부모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학을 가면 일진 아이들이 그 쪽 학교 일진들에게 연락을 해서 또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부모들은 지치고 온갖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걸린다. 그리고 가정은 파탄상태가 된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심각하고 처참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대안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로부터 나올 수 있다. 현재 여기저기서 대책과 대안을 이야기하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없다. 마치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우리가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일진이 있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교육당국의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이런 일진 현상을 강화하고 문제를 만들고 있으면서 모든 책임을 부모와 교사, 학생에게 넘기는 지금의 상황은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그들이 공식적으로 일진이 없다고 대응하는 이상 일진아이들이 벌이는 심각한 학교폭력으로 인한 아이들의 피해는 계속 될 것이다.
지금처럼 교육당국이 일진이 없다고 강변하는 한 교사도, 부모도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
아이들을 도우려고 하는 교사와 부모가 상처를 입는다면 누가 이 문제를 다루려고 할까?
상황이 이런데 한 부모나 한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현재의 이 폭력적상황은 결국 피해자들에게 더 피해를 입히는 이중가해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그런 난폭한 공격성의 표현보다는 진심으로 토론하고 이것을 통해서 사건이 가지는 의미와 교훈을 배우고 일진이든, 일진으로 피해를 받는 아이든 우리 아이들을 도울 수 잇는 그런 인식, 제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도무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부터 배울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모, 교사, 아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함께 토론하고 서로 귀를 열고 들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사이자 왕따를 당했던 아이의 부모로서, 그래서 학교폭력을 연구하는 모임을 하게 된 사람으로서 간절히 요청한다. 덧붙이는 글 | 충북 청원의 초등학교 교사이며 폭력없는 평화로운 학교만들기 교사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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