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정리로 한참 바쁠 때 대전, 대구에서 잇달아 일어난 아이들의 자살 사건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네 장의 유서를 인터넷에서 출력하여 읽으면서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의 심정에 감정이 이입되어 가슴이 먹먹했다.
유서와 기사들을 자세히 읽으면서 교사들이 어떻게 대응을 했나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우리 시대 교사의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대전 자살사건의 경우에는, 학생이 죽기 이틀 전 담임교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일진 아이들의 보복이 두려움에도 교사를 찾아갔을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야말로 마지막 행동으로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가장 적절한 대응 방법은 무엇일까? 심각한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매우 위축되고 불안하기 때문에 안심을 시키는 말로 면담을 시작해야 한다.
내 경우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게 생각해. 이렇게 찾아와 주어서 무척 고마워. 네가 괴롭힘 당한 것을 자세히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를 괴롭히는 일이 그칠 때까지 나와 다른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이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참지 말고 얘기하는 게 중요해."
그리고 바로 진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가해 아이들을 조사하고 학교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조치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의 필사의 구조 요청에 대해 교사는 "이건 친구들끼리의 문제니까 너희들끼리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를 절망에 빠뜨렸다.
많은 교사들이 이러한 말을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훌륭한 대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피해 아이가 그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라며 책임을 넘긴 것이다. 도움을 요청한 아이에게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주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구 자살 사건의 경우에도 교사가 아이를 도울 기회는 있었다. 교사가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중학교 2학년 남자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집단괴롭힘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거나 그 못지않은 위기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왜 그런지 깊이 있게 캐물어야 하고, 답변을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알려서 함께 상담을 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면담을 통해서 그 원인을 찾아야 했는데 부모에게 아이가 고민이 있는 거 같으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다. 아이의 고통이 학교에서 생긴 것인지 가정에서 생긴 것인지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러한 충고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아이들이 죽음의 충동을 느끼고 있다.
2010년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피해 경험을 가진 아이들 가운데 14%의 아이들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답변했다. 우리나라 전체 초중고생이 720만 명이고 그중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히는 아이들이 20% 정도로 140만 명이다. 그 아이들 중 14%라고 하면 적어도 20만 명의 아이들이 자살 충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성적 부담, 잡무 등으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교육이란 것은 아이들과 관계 맺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교사들이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인 때 아이들을 돕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대안은 있다.
이런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교사와 아이들이 정말 행복한 평화로운 교실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교실에서는 누가 어떤 아이를 괴롭힐 때 피해자와 주변 아이들이 '멈춰'를 외치는 것이 공동의 약속이다. 그런데 폭력 속에서 오랫동안 주눅이 든 아이들은 쉽게 '멈춰'를 외치지 못한다. 특히 피해 아이들은 더 그렇다.
교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주변의 친구들이 힘차게 '멈춰'를 함께 외쳐줄 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멈춰'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순간은 약한 아이들이 자기와 세계를 믿을 수 있는 공명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며, 자신과 친구들, 그리고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멈춰'를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총회는 소집된다. 공동체의 성원 중 한사람의 아픔도 공동체 모두의 아픔이기에 단 한 사람의 요구에도 총회는 성립되는 것이 원칙이다. 총회에서는 역할극을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입장을 바꿔보면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폭력의 순간이 가장 훌륭한 감정 이입을 배우는 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들을 한 달 정도 하면 아이들은 교사가 없어도 '멈춰'를 외치고, 역할극을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따라서 처음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그 이후는 오히려 전통적인 학급운영을 하는 것보다 갈등해결에 적은 시간이 들고, 그 갈등이 공동체를 위한 배움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일진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 폭력으로 발생한 비극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대전 자살 사건의 경우, 괴롭힘을 받고 있는 것을 이야기 했다고 일진 아이들로부터 '너 죽어! 네가 죽을 수나 있냐'는 비웃음을 받고 '그럼 내가 죽어 줄께' 하고 대꾸 한 후 집에 와서 투신한 것이다.
대구 자살 사건도 일진으로 인한 문제임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가해 학생이 보낸 문자 중에 '내일부터 학교에서 애들한테 똥파리라고 불리게 될 거다. 싫으면 지금 당장 해라!'는 말이 있다. 또, 괴롭힘을 선생님에게 알리자는 친구에게 '너도 보복당하니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처럼 가해 학생들은 한 아이를 순식간에 왕따를 만들 수 있는 힘과 그들을 반대했을 때 바로 보복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인데 이것이 일진의 특징이다.
이번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왜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일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일진 아이들의 괴롭힘을 교사에게 이야기했는데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보복을 당한다면 누가 부모와 교사를 믿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평범한 아이들과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고 공동체의 참다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교사가 일진 문화를 이해하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이 안심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교실, 가족, 사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교사가 이렇게 노력을 한다하더라도 교육당국에 의해서 좌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교육청은 일진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지하다. 2011년 5-6월 충북의 한 교육 연구소에서 일진 존재 여부를 물었을 때 진보교육감이 있는 일부 교육청을 제외한 대다수의 시도 교육청이 모두 일진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리고 다음 달 7월 대구에서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학교에서 일진에 의한 왕따 사건으로 한 여학생이 자살을 했다. 이처럼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생들이 일진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해도 그것이 일진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교사가 일진에 대한 현황에 대해 조사하여 보고하면 문서를 조작해서라도 없는 것으로 만든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일진 아이들은 학교와 교육당국, 교사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면 잠깐만 몸을 숙이고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대책이 효과가 있을까? 일진 아이들을 조장하는 것이 바로 학교폭력 제로화라는 교육부 시책의 본질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사들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학부모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학교와 학교 밖의 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이러한 일진문제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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