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집 비리.'
'저축은행 비리.'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온갖 '비리'로 얼룩진 신묘년 토끼의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올해는 특히 사건 사고가 많았다. 돌이켜 보면 경찰 간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이어진 함바집 비리에서 출발한 대형 비리 사건의 시작은 마치 시리즈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저축은행 비리에서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까지 바람 잘날 없었다.
올 한해 국내 정치권에서 불어 닥친 '한미FTA 날치기' 찬바람과 기상천외한 '디도스 공격', 밑도 끝도 없는 '무상급식 논란' 등으로 정치권에 대한 민심은 꽁꽁 얼어붙었다. 이 외에도 두고두고 마음 아프게 한 사건들이 많다. '도가니 사건'과 특혜 논란 속 '종편 출범' 등은 그 후유증이 쉬 가라앉지 않고 여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문들 10대 뉴스 들여다보니, FTA에 '울고' 안철수·박원순에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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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2일 <광주일보>가 내보낸 10대 뉴스들. ⓒ 광주일보
그래서 용의 해를 기다리며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60년 만에 맞이하게 될 흑룡의 해라며 일찌감치 새해를 반기는 문구가 눈에 띌 정도다. 다가올 새해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권불 10년'이라 했던가. MB정권도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총선과 대선이 잇따라 치러지는 임진년 새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국민들 삶·복지의 방향과 수준을 다시 결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한해다. 그래서일까.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만 되면 등장하는 '10대 뉴스'가 올해는 예년보다 빨리 등장한 느낌이다.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간지들이 앞 다퉈 세밑 특집기사로 10대 뉴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서울에선 <한국일보>, <국민일보> 호남에선 <광주일보>, 영남에선 <부산일보>, <매일신문> 등 5개 신문사가 발 빠르게 내놓았다.
이들 5개 신문사가 선정해 발표한 10대 뉴스들을 종합해 보았다. 올 한해 이들 신문이 뽑은 10대 뉴스 중에는 '한미FTA 국회 비준안 기습처리'와 '안철수 신드롬·박원순 당선'이 5곳 모두 포함돼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안철수, '올해의 인물'...내년에도 바람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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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0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에 대해 "서로의 진심이 통했고 정치권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합의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뒤 안 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11월 22일 오후 한나라당이 사전예고 없이 국회 본회의를 소집, 한미FTA 비준 동의안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등 FTA 이행에 필요한 14개 부수법안을 기습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본회의장 의원 발언대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비준안 날치기 처리 이후 정치권은 급랭했다.
정치권에 순풍도 불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안철수 바람'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또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9월 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대 5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선풍적인 지지를 얻었다. 올해 화제의 인물로 단연 그를 지목하는 이유다. 안 원장은 당시 지지율 3%대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장에게 후보직을 양보, 당선을 도왔다.
안 원장은 젊은 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1, 2위를 다투고 있어 올해 가장 정치권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손색이 없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과 깔끔한 후보 자리 양보, 그리고 1500억 원이 넘는 재산 기부라는 파격적인 행보에 정치권이 요동쳤다. 기성 정치의 틀을 뒤흔들 정도로 안철수 바람은 휘몰아쳤다. 당장 안 원장이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한 가운데 내년에도 계속될 안풍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축은행 비리', '도가니 사건', '김정일 사망' 공동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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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국민일보, 부산일보, 광주일보, 매일신문 등 5개 신문사가 내놓은 2011년 국내 10대 뉴스 분석 표. ⓒ 박주현
이어 전국을 강타한 저축은행 비리와 도가니 사건 충격, 김정일 사망이 공동으로 2위에 올랐다. 불법대출 등 금융비리, 횡령 등 기업비리, 고위층 로비 등 권력형 비리로 확대돼 '비리의 종합세트'라고 불리는 부실저축은행 사건에 대한 수사가 8개월 동안 장기화 됐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비리 규모는 9조 원대로 단일 규모 최대 금융비리 사건이었다. 비리 수사가 일단락됐지만 실체적 진실규명 미흡 등 수사결과에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부실저축은행 퇴출 저지를 위한 정관계 로비의 몸통을 밝히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2005년 불거졌던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사건은 정치권과 언론의 무관심 속에 한동안 잊혀 졌지만, 지난 9월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면서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뒤늦게 행정조치에 나선 광주시교육청은 인화학교 재학생들을 다른 곳으로 전학조치하고 학교를 폐쇄시켰다.
이밖에도 올 한해 언론의 영상과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뉴스로는 '반값등록금 및 무상급식 논란', '평창,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한진중 분규·김진숙 309일간 고공 농성',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논란', '사상 초유의 9·15 정전사태', '삼호주얼리호 구출', '서울 집중호우로 우면산 산사태' 등이 10대 뉴스로 선정됐다.
언론이 외면한 뉴스 1위, 'MB 측근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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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3단체가 지난 12월 14일부터 25일까지 현업 언론인과 일반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 기자협회보
그런데 이게 웬일. 언론이 외면한 10대 뉴스도 선정됐다. 언론사들이 앞 다퉈 선정해 내보내고 있는 10대 뉴스와는 달리 언론이 감추어 온 뉴스들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무엇보다 언론이 외면한 뉴스 1위로 'MB 측근 비리'가 올라 주목을 끈다. 대한민국 언론은 살아 있는 권력에 유독 약하다는 소릴 들을만하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3단체가 지난 12월 14일부터 25일까지 현업 언론인과 일반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2011년 언론에서 가장 무시하고 왜곡한 뉴스'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올 한 해 동안 정치·사회·문화에 걸쳐 이슈가 된 뉴스 30개를 미리 제시한 뒤 10개를 선택하도록 했다. 1628명이 응답했다.
이들 단체가 '2011년 언론이 무시한 10대 뉴스'를 선정해 2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올 한 해 동안 국내 언론매체는 권력형 비리와 의혹에 철저히 눈감은 것으로 분석됐다. 1위에 'MB 친인척 측근 비리'(77.3%)가 차지한데 이어 '4대강 부실공사와 홍수예방 효과'(73.3%), 'MB 내곡동 사저'(73.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테러 여당 연루' (69.4%)등 이명박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뉴스가 상위권을 차지한 것으로 입증됐다.
'4대강 부실공사' 논란 2위, 'MB 내곡동 사저' 보도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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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민주통합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원혜영 공동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이들 뒤로 이명박 대통령 측근비리 종합 현황도가 보인다.
ⓒ 남소연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이 연루된 금품수수 사건 등 연달아 제기되고 있는 측근 비리에 대해 실체를 규명하려는 언론매체의 노력이 미흡했다는 평가다. 또한 '종합편성채널의 폐해와 특혜'는 5위(62.8%)를 기록했다. 지난 12월 1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은 개국 전부터 온갖 특혜 논란이 따라다녔지만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침묵으로 일관했음이 또 한 번 입증된 셈이다.
이밖에 '한미FTA'(60.5%),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논란'(60.0%), '위키리크스 비밀 외교문건 공개'(56.2%), '제주 세계 7대 경관 사기 논란'(53.1%), '강정마을 해군기지'(51.4%) 등도 10대 뉴스에 올랐다.
이와 관련 전국언론노조측은 "설문을 시작한 14일 이후에 불거진 이슈에 대해선 기타란을 통해 수렴했는데, 기타란에 응답된 내용 가운데 BBK 폭로로 유죄판결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과 관련된 뉴스도 다수 포함됐다"고 밝혔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권이 격랑 속으로 빠져든 가운데 37년 '김정일 철권통치 시대'가 막을 내려 한반도와 주변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아쉬움과 아련함과 분함과 충격과 슬픔이 가득한 한해로 점철된 2011년 한 해가 저문다. 그래서 다가올 2012년에 거는 기대가 더욱 무겁게 들려온다. 내년에는 '절망'과 '불통'대신 부디 '희망'과 '소통'을 함께 나누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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