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태 선배, 후배 김상곤의 눈물을 바칩니다

[추모글] 당신의 조언으로 교육감 출마... "꼴찌들이 힘 모을게요"

등록 2011.12.30 16:22수정 2011.12.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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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 유성호


선배님! 이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종일 눈앞은 어둡고 먹먹한 가슴의 통증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컥 차오르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있지만, 걸음마다 허방을 짚는 듯 현실감이 없습니다.

저리도 푸르른 겨울하늘과 맑은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는 날, 이렇듯 허무하고 비정하게 세상을 버리고 싶으셨습니까? 선배를 향한 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어찌 감당하고 살아야 할런지요? 우리들 가슴에 화인으로 새겨진 원죄와 당신에게 진 빚에 대한 아무런 '탕감'도 없이, 이렇게 속절없이 가버리시면 우리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한 시대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우리 시대 정의의 가늠자를 잃었습니다. 추념의 언사조차 불필요한 사치가 되는 '시대의 전설'이 사라졌습니다.

김근태 선배, 당신은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선배는 저에게 스승이었고, 언제나 함께 가는 평생 동지였습니다. 저는 선배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읽었고, 인생과 정의를 배웠으며,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선배의 신념과 삶의 기품을 보면서, 이 땅의 지식인이 갖춰야 할 삶의 자세를 익혀 왔습니다.

1971년으로 기억합니다. 엄혹한 독재가 민주주의의 목을 옥죄던 시대, 서울대에서 저는 독재정권과 싸우는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선배는 복학한 4학년 열혈 청년운동가로서, 저항과 투쟁의 선봉에 서서 어설픈 우리들을 '지도'해 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김근태, 장기표, 고 조영래 변호사, 심재권. 70·80년대 노동, 청년, 사회 운동 진영 전체의 탁월한 이론가이자 뛰어난 실천가의 상징적 이름들입니다. 저는 유독 선배가 좋았습니다. 날이 퍼렇게 살아 있는 명쾌한 논리, 진정을 토할 때마다 파르르 떨리던 손, 큰 시련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눈빛, 강한 신념과 투지 뒤에 숨어 있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감성. 그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선배는 존재 자체로 언제나 제 삶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였습니다.


선배의 삶이 수배와 감옥, 고문의 시간으로 채워지는 만큼 우리의 눈물과 싸움도 그만큼 진해진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숙명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1985년인가요? "벌거벗은 채 전기고문을 당할 때,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올 때, 마음속으로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노래를 불렀다"는 선배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우리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야만과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향한 우리의 비수는 선배로 인해 더욱 날이 섰습니다.

'기술자'가 조종하는 전기와 물이 샅샅이 할퀴고 간 몸과, 만신창이로 헤진 영혼을 이끌고도 선배는 또다시 그 지긋지긋해도 좋을 운명 같은 '운동'을 다시 시작했지요.

1995년 선배가 현실정치에 들어가시면서, 저에게도 함께 정치입문을 제안하셨지만, 저는 교수운동의 중요성과 역할을 들어 선배의 청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 있는 토대는 달라도 우리는 언제나 갈 길을 물었고, 한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지난 2009년, 시민사회가 강하게 저의 교육감 출마를 요구해 왔을 때에도 깊은 고뇌 끝에 결국은 선배의 조언을 구했었지요. 선배는 "어차피, 이왕 해야 하는 일이면 제대로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선배의 조언이 출마를 굳히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신에게 후배 김상곤의 눈물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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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자료사진) ⓒ 권우성

당신은 현실정치에서도 건강한 사회, 건강한 경제, 건강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당신의 철학과 정책 비전을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당신은 늘 '비주류'를 자처했지만, 우리가 보기에 당신은 언제나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위해 싸우며 약자의 삶에 눈물을 건넨 우리 시대 진정한 '주류' 였습니다.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한다"는 선배의 마지막 말씀을 곰곰 되새겨봅니다. 민주화된 정의로운 권력이 있는 나라를 향한 당신의 염원으로 읽으니 가슴이 더욱 아픕니다.

선배님!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선배가 마음의 짐 모두 내려놓고 안심하고 가실 수 있도록, 수많은 '아름다운 꼴찌'들이 힘을 모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아름다운 시대의 의인이셨습니다. 핏빛 고통과 눈물 같은 희망이 씨줄날줄로 만나 짜내려 간 당신 이생의 삶의 무늬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우리 가슴에 끝끝내 살아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배여! 이제 모두 다 내려놓고 편히 가소서. 고문도 없고, 고통도 없는 평화의 세상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소서. 부디 영면하소서. 경기도교육감인 후배 김상곤이 눈물로 바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보내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보내왔습니다.
#김근태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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