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왜 회개하지 않지요"

아내와 남강둔치에서 김근태 고문 타계를 두고 나눈 대화

등록 2011.12.31 10:56수정 2011.12.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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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1980년대를 살면서 '민주주의'를 입에 담은 사람 중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갔습니다. 나이 예순네 살입니다. 우리나라 남성 평균 수명이 77세이니 예순네 살은 짧디 짧게 산 삶입니다. 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우리나라 남성평균 수명보다 무려 13년이나 적게 살고, 이렇게 안타까움을 남기며 먼저 떠났을까요.


김 고문은 지난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년) 의장 시절 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전기·물고문을 받았습니다. 고문이 남긴 질곡은 지난 2007년 그에게 파킨슨 병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늘은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요"

김 고문 타계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할머니 집에 다 보낸 후 아내와 단 둘이 남강 둔치를 걸으며 김 고문 별세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 한 분이 떠났네요."
"벌써 몇 분이 돌아가셨어요."
"응?"
"이명박 정권들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큰 족적을 남긴 분들 말이예요.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리영희 선생님, 이소선 여사 정말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분들이 하나 둘씩 떠나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참 착하고, 사람과 생명을 사랑했던 분들이 떠났어요. 그런데 독재자들은 아직도 살아남아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어요."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이 아직도 건강하게 살고 있지. 옛말에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살고, 착한 사람은 하늘이 빨리 데려간다'고"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권들어 많이 분들이 떠났습니다. 그것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분들입니다. 하늘도 참 무심하지요. 이런 분들은 빨리 데려가시고, 독재자들은 남겨두는지.착하고, 생명을 사랑하신 분들은 하늘도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빨리 데려가고 싶었고, 독재자들은 세상에서 욕을 엄청 먹고 나중에 오라고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애써해보지만 심장이 울리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목사가 왜 회개하지 않지요"

그리고 김 고문을 이렇게 빨리 가게 만든 장본인 '고문기술자' 이근안 이야기를 꺼내면서 심연에서 분노가 이글이글거립니다.

"당신 김근태 고문이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는지 알아요?"
"고문 후유증 아니예요?"
"맞아요.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당하고, 알몸으로 기어다녔대요."
"사람이 아니었네요."
"그런데 당신 김근태 고문을 짐승취급하며 고문한 사람이 누군인지 아세요.?"
"이근안 아니예요?"
"맞아요. 이근안 그런데 그 사람이 목사라는 것도 아세요?"
"몇 년 전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근안씨는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그럼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회개했나요."
"회개는 무슨, 얼마전 <한겨레>에서 읽었는데 이근안이 지난해 2월 시사주간지 <일요서울>와 인터뷰에서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며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비록 나는 그 예술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했다'며 고문 사실을 부인했었요."
"어떻게 목사 입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목사라면 당연히 자기 지은 죄에 대해 회개해야 하지 않나요."

목사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면서 자기가 지은 죄에 회개를 해야 한다는 아내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목사로서 못된 일 많이하고, 잘 한 일 없지만 사람을 그렇게 고문하고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예술이다', '심문기술자'라며 부인하는 것 정말 목사인게 부끄러웠어요."
"하나님 얼굴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예요."
"맞아요. 십자가를 지고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왜 고문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애국'이라고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그렇게 살지 마세요."
"…"

"국립묘지보다 모란공원이 낫겠네요."

한 동안 말 없이 걸었습니다. 김근태 고문은 참 영혼이 맑은 정치인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데 김 고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002년 대선 때 정치자금 받은 것에 대해 '고해성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야 저분은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만큼 때묻지 않는 분이었지요.

"김근태 고문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래요."
"국립묘지 안 가나요? 장관을 지냈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이라면"

"김 고문이 생전에 모란공원에 묻히기를 바랐대요. 거기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살다가 돌아가진 분들이 많이 묻혀있어요."
"솔직히 이명박 정권들어 죄 많이 짓은 사람들 중에는 국립묘지에 가는 사람있어요. 전두환 경호실장인가 하는 안현태씨와 북한에서 망명한 황장엽씨. 그리고 지난 11월 30일 자 <한겨레>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한국전쟁 당시 가장 큰 패전을 당하고, 우리말도 잘 못한 장군이 국립묘지에 안장됐어요. 그러니 모란공원에 묻히는 것이 더 낫겠어요."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신이 나보다 더 낫네요. 아무튼 그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과 김근태 고문이 모란공원에 안장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지만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와 역사의식이 부재한 것은 사실이예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이 목사 이근안을 생각했습니다. 목사라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죄없는 사람을 짐승처럼 고문했는데도 회개조차 하지 않고 목사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입니다. 김 고문을 떠나보내면서 목사인게 참 부끄럽습니다. 유가족에게 위로를 드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 만세!'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근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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