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전통 굿의 맥을 잇는 사람들

'경기안택굿보존회'를 찾아가다

등록 2011.12.31 15:22수정 2011.12.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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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장삼을 입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고성주의 가르침을 따라 경기도 굿을 따라 익히는 사람들. ⓒ 하주성

▲ 학습 장삼을 입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고성주의 가르침을 따라 경기도 굿을 따라 익히는 사람들. ⓒ 하주성

 

예전에 정월이 되면 초 3일이 지난 후에 집집마다 풍장소리가 들리거나, 집안에서 삼현육각에 맞추어 걸 판진 굿판이 벌어지고는 했다. 어느 집에서는 정월 초3일에 내려온다는 평신(=地神)을 맞이한다는 지신밟기를 하기도 하고,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가내의 안녕을 비는 안택굿을 하기도 했다.

 

안택굿은 대개 정월에 많이 하지만, 10월 상달에 추수를 마치고 하기도 한다. 안택굿은 집안의 가신(家神)들에게 일 년의 안녕이나, 추수의 고마움을 전하는 굿이다. 정월에 굿을 할 수 없는 집에서는 떡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간단하게 비손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이를 '정월고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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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포천, 의정부, 동두천에서 경기도 굿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수원까지 다닌다. 좌측부터 최은수(의정부), 김도희(동두천), 이지선(포천) ⓒ 하주성

▲ 소리 포천, 의정부, 동두천에서 경기도 굿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수원까지 다닌다. 좌측부터 최은수(의정부), 김도희(동두천), 이지선(포천) ⓒ 하주성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안택굿

 

사실 안택굿이 언제부터 전해졌는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오래 전부터 정월이 되면 집집마다 안택굿을 펼치고는 했는데 어린 시절, 정월이나 시월에 집에서 전문적인 무격을 초청해 한바탕 걸진 굿판이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안택굿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베풀어졌으며, 보편적인 굿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안택굿은 수많은 굿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굿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관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그런 굿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안택굿이란 것을 만나보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굿이 점차 전문적인 '굿당'이라는 곳으로 숨어들기 시작하면서, 초저녁 해가 질 무렵에 시작해, 대문에서부터 우물, 마구간, 창고, 뒤뜰, 부엌을 돌아 대청 위에서 벌어지는 안택굿은, 이제는 집안이 아닌 굿당으로 옮겨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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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주 경기도 굿을 4대째 이어가고 있는 고성주. 2011, 6, 20 안택굿 시연장에서 ⓒ 하주성

▲ 고성주 경기도 굿을 4대째 이어가고 있는 고성주. 2011, 6, 20 안택굿 시연장에서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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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굿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절차는 물론 소리와 장단 등을 익혀야 한다. 고성주의 지도로 장단을 배우는 모습 ⓒ 하주성

▲ 학습 굿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절차는 물론 소리와 장단 등을 익혀야 한다. 고성주의 지도로 장단을 배우는 모습 ⓒ 하주성

 

경기도의 굿은 걸 판진 축제의 장이다

 

사실 경기도에는 도당굿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도당굿은 세습무인 화랭이들에 의해서 절차가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도당굿이란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굿이기에, 안택굿은 '신탁(神託)'이라는 신의 말을 전해주는 공수를 줄 수 있는 강신무들에 의해서 절차가 진행이 되었다. 그래야만 일 년 간의 길흉을 미리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굿을 하는 날이 되면 온갖 음식을 준비한다. 지금이야 미리 '굿비'라고 하여서 돈을 책정을 해 놓지만, 예전에는 그런 비용을 산정하지 않았다. 음식은 굿을 하는 '제가 집'에서 마련을 하고, 무격들은 굿을 하면서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나, 제가 집의 사람들이 내어 놓는 '별비'라는 것으로 충당을 했기 때문이다.     

 

굿을 하는 시간이 되면 온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그 집으로 모여든다. 안택굿을 하는 집은 마을의 축제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대문에서부터 시작한 굿은 집안을 한 바퀴 돌아 대청에 이르게 되고, 밤새 굿판은 웃음과 울음이 그치지를 않는다. 그래서 굿판은 '열린 축제'라고 부른다. 누구나 다 들어와 먹고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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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대감 경기도 안택굿에서는 도깨비대감이란 재미있는 구경꺼리가 있다. 쌀 말 위에 올라가 뛴다. 2011, 6, 20 경기안택굿 시연장에서 ⓒ 하주성

▲ 도깨비대감 경기도 안택굿에서는 도깨비대감이란 재미있는 구경꺼리가 있다. 쌀 말 위에 올라가 뛴다. 2011, 6, 20 경기안택굿 시연장에서 ⓒ 하주성

 

경기안택굿을 이어가는 사람들

 

2011년이 저물어가는 12월 30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에 소재한 '경기안택굿보존회'를 찾아갔다. 전통 굿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에서는 한창 노랫가락의 흥겨운 소리가 들린다. 4대 째 경기도 굿의 맥을 잇고 있는 고성주(남, 55세)의 지도로 전통 굿을 배우는 열기가 뜨겁다.

 

'신내림'이라는 것을 받은 사람들이 경기안택굿을 배우기 위해 장삼을 펄럭이며 한창 학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고성주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의정부, 동두천, 포천 등. 수원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곳 수원까지 전통 경기도의 굿을 배우러 다닌다는 것이다.

 

옛말에 '영험은 신령이 주지만, 재주는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즉 강신이 된 무격이지만 굿을 하는 절차, 문서, 소리, 춤사위, 제물 차리는 법 등은 모두 선대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한 몸으로 굿을 베우려고 하는 것일까?

 

의정부에서 왔다는 최은수(여, 45세)는 "우리 굿은 신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절차는 배워야 한다. 전통적인 굿은 굿태, 음악, 장단, 상차림 등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굿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을 제대로 학습을 해야만 올바른 굿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배우러 다니는 것이다"라고 한다.

 

동두천에서 배우러 다닌다는 김도희(여, 44세)는 "이렇게 우리 지역의 전통 굿을 배우러 다니면서 선생님들께 우리 문화에 대한지식을 배우고 싶어서 열심히 다닌다. 물론 쉽지가 않은 학습이지만, 최선을 다해 배우려고 다짐을 한다."고 했다.

 

포천에서 학습을 통해 지역의 굿을 올바로 전승시키겠다는 이지선(여, 53세)은 "그동안 여기저기서 많은 굿을 배우기도 했지만, 정작 경기도의 전통 굿을 모르고는 지역에서 전승이 되는 도당굿을 할 수가 없다. '왕방산 도당굿'을 하는데 전통 굿을 알아야 제대로 전승을 시킬 수가 있을 것 같아 학습을 하고 있다. 이 시대에 제대로 된 경기도 굿을 할 수 있는 분은 선생님뿐(고성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라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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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닺기 경기안택굿 중 성주굿에서는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지경을 닺는다. 경기도의 안택굿은 축제화 되어있다 ⓒ 하주성

▲ 지경닺기 경기안택굿 중 성주굿에서는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지경을 닺는다. 경기도의 안택굿은 축제화 되어있다 ⓒ 하주성

 

이들에게 경기도 굿을 학습시키는 고성주는 벌써 굿판에 선지가 47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숱한 굿판과 무대를 통해 경기도의 전통 굿을 알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실 경기도 강신무 굿의 역사는 세습무 굿인 도당굿보다 앞선다고 보아야 한다. 조선조 때 도성 밖으로 축출당한 많은 무격들이 노들(노량진)로 내려오고, 그들이 다시 수원, 화성, 오산, 시흥 등지로 자리를 옮겨 지역의 특색에 맞는 굿을 전승시켰기 때문이다.

 

4대째 대물림을 하면서 지역의 굿을 지켜온 내가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온통 뒤섞여버리고만 굿제 때문이다. 여기 멀리서 배우러 오는 이분들은 정말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굿의 전통을 지켜가고 싶다는 마음을 알기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어 줄 뿐이다"라고 한다.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춤사위를 배우고, 경기도 굿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타령조와 장단을 하루에 4 ~ 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배우기 위해 땀을 흘리는 사람들. 아마 이들이 있기에 경기도 안택굿의 전승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2012년에는 더 많은 곳에서 올바른 경기도 안택굿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기안택굿보존회 #수원 #학습 #축제 #고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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