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마지막 화두는 '신자유주의'..."이대로면 또 실패"

2년간 공부모임 '동인'에서 활동한 이해영 교수 "우리가 유언 집행자 돼야"

등록 2011.12.31 16:51수정 2011.12.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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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고인을 추모하는 영상이 TV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고 있다. ⓒ 유성호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정치적 유언이라 할 메시지는 남겼다. 그는 지난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2012년을 점령하라'는 글에서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한 진보적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 말 이후 2년 동안 김근태 상임고문과 함께 공부모임 '동인'에서 활동했던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3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상임고문은 마지막까지 신자유주의 대안을 모색했다"며 "이제 민주화운동의 대부나 고문 피해자라는 얘기는 접고, 우리 모두가 유언 집행자가 돼 그가 남긴 메시지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근태, 2년 간 공부모임 '동인' 빠짐없이 참석... "신자유주의 성찰해야"

동인은 김근태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진보적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이 꾸린 모임이다. 정치인 중에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 우원식 전 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했다. 학계에서는 이해영 교수,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등이 함께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해영 교수는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가 독주하는 상황에서 '왜 민주·진보 진영은 한나라당에 패배했느냐'하는 문제제기에서 모임이 시작됐다"며 "동인 참석자 사이에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됐다"고 말했다.

동인은 경제, 재정, 비정규직, 복지국가, 남북관계 등 주로 신자유주의 대안 모색과 관련된 주제의 세미나를 한 달에 한 번 열었다. 지금까지 22번 열렸고, 김근태 상임고문은 지난 10월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 교수는 "김 상임고문은 보통 의견을 듣는 편이었지만, 자신의 경험이나 민주당에 대한 우려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당시 세미나에서 정세균·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을 이끌면서 당이 우경화되고 실용주의 노선이 주류가 된 것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당 노선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FTA에 대해서 크게 반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고 집권하면,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해영 교수는 "김근태 상임고문이 10월 18일 올린 마지막 글은 그동안의 세미나를 통해 정리된 내용으로 정치적 유언이라 할 수 있다"며 "당내에서 김근태 상임고문은 주류나 친노세력과 불편한 관계였지만, 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유언 집행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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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줄을 서서 분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다음은 김근태 상임고문이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올린 '2012년을 점령하라'는 내용의 글 전문이다.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 만들고, 그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

2012년을 점령하라

세계는 격동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잔혹한 유럽의 여름, 월가를 점령하자는 뉴욕의 가을, 그리고 월가점령에 대한 다른 도시들의 공감, 급기야 10월 15일 전 세계 곳곳에서 월가점령시위 동참......

월가점령시위가 확산되자 미국의 언론, 학계,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보수 쪽에서는 폭도라는 말까지 사용해가면 월가점령운동을 폄하하고 있고, 진보 쪽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역사의 순간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월가점령에 나선 사람들이 폭도로 여겨지지도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당장 붕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양 진영의 주장이 워낙 강력하고 방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관계로 자칫 생각과 판단의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아졌다. 월가점령운동에 대한 양극단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차분히 묻고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우선 미국인들은 왜 월가를 점령하자고 외치고 있을까.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왜 월가점령에 공감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1%인지 5%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처럼 전 세계가 공감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증거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의 구분 없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적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월가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희생도, 반성도, 징벌도 없는 불공평함에 분노한 것이다. 금융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월가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티파티의 압력에 굴복해 길을 잃은 공화당과 의회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기도 하다.

드디어 미국인들이 기존 정치를 불신하고 스스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들은 티파티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발악에 맞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냉혹해서 그들이 공화당을 장악한 티파티 정도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면 미국은 한 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감세가 중지되거나 약간 다시 오르거나 다음 선거에서 오바마가 재선되거나 일뿐이다. 이런 사실을 2008년 촛불집회를 했던 우리는 너무 잘 안다. 2008년의 촛불국민들은 2009년엔 조문행렬을 이었고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야한다.

흔한 말로 정치권의 위기, 야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일 뿐 비난이 승리는 아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미국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처럼 경선에 뛰어들어 직접 후보를 내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해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전자가 쉽고 확률도 높다. 비호감일지 모르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미국의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의 공통점은 적극적 참여와 정당과의 연계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2011년 10월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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