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아모레미오>가 80년대 운동권 학생을 다루는 방식

[TV리뷰]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에서 1980년대를 보다

12.01.07 10:34최종업데이트12.01.07 10:34
원고료로 응원

KBS 2TV <드라마스페셜>의 <아모레미오> 포스터 ⓒ KBS


1980년대 초반은 군부 독재 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다. 이 시기에는 컬러TV가 도입됐고 장발 단속과 통행금지가 없어졌으며 프로야구가 생겼다. 그때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또 누군가는 "이제야 끼니 걱정 안 하고 살게 됐다"며 '비둘기 집'을 노래하기도 했다.

지난 1월 1일 첫 방송 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연작시리즈> 4부작 <아모레미오>는 이 모든 것이 '기묘한 균형'을 이루며 공존했던 그 시대를 이야기했다. '아모레미오'(나의 사랑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어)라는 제목 그대로 그 시절을 살았던 청춘의 사랑을 담았다.

원단 공장을 운영하는 해창(정웅인 분)은 외동딸 미래(다나 분)의 결혼을 앞두고 20년 넘게 소식이 끊긴 아내 수영(김보경 분)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의 예비 시어머니인 도순(박탐희 분)이 파혼을 선언한다. 미래의 부모가 젊은 시절 어울리던 해창과 수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이들과는 사돈을 맺을 수 없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진 미래는 이들의 과거를 캐기 시작하고, 해창은 애써 지웠던 과거를 떠올리며 전전긍긍한다.

<아모레미오>는 1980년대 초반과 현재를 오간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른바 '쇳밥'을 먹으며 살아온 남자 해창을 중심으로 그가 첫눈에 반했던 미대생 수영, 그녀가 짝사랑하는 경영학도 민우(김영재 분), 해창이 자취했던 집주인의 딸 도순 등 '출신 성분'이 다른 네 청춘의 얽히고설킨 사연을 풀어간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야기와 복선을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이 모든 이야기의 발단에는 해창의 거짓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래의 출생 비밀과 수영이 그들을 떠난 이유, 해창의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지게 된 문제의 사건 또한 전모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인 해창은 지금은 개과천선했지만 그 시절에는 이른바 양아치였던 인물이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못"딴 것이 한이었던 젊은 시절의 그는 운동권 대학생을 경멸하는데 그가 다니던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던 대학생들의 꼬임에 넘어가 파업에 앞장섰다가 해고된 전력 때문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는 그가 내심 대학생활을 동경했던 데서 오는 '어깃장'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첫눈에 반한 수영에게 학생 수첩을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접근해서 자신을 같은 학교 경영2과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거짓 소개를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앞으로 줄줄이 거짓말을 늘어놓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후일 그와 그의 친구들이 치르게 될 대가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현재의 그가 자기 딸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예비 사위 진국(박건일 분)에게 손찌검까지 해가면서 내뱉은 말을 보면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말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거짓말은 안 된단 말이야. 한번 시작하면 갈수록 고약해지는 거야, 그거 알아들어?".

정웅인·박탐희 연기 '눈길'...운동권 향한 냉소적 시각은 '글쎄'


ⓒ KBS


지금까지 제시된 이야기의 틀과 시대적 배경, 인물의 면면만으로 판단해 보면 <아모레미오>는 자칫 심각하기만 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적어도 1회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해창과 도순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마다 코미디를 가미했다. 두 사람이 빠르게 치고받는 대화는 만담 수준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상대를 향해 연탄집게를 휘두르거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는 등의 액션과 과장된 반응 또한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른바 '성격파 배우'로 분류되는 정웅인은 어두운 내면을 숨기고 어릿광대의 얼굴로 살아가는 해창의 비애를 넉살 좋은 연기로 표현했고, 지금까지 도도한 현대 여성을 주로 연기했던 박탐희는 입가에 까만 점을 붙이고 코믹한 콧소리를 내는 '동네 노는 언니'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반면 해창의 거짓말과 엮이는 수영의 그쪽 친구들, 즉 운동권 학생들을 지나치게 경직된 인물로 묘사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야기가 대부분 해창의 시각으로 진행된다는 점, 대학가에 프락치가 판을 치던 당시의 시대적 정황 등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특히 몇몇 장면은 운동권 학생에 대해 기본적으로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편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해창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던 수영이 처음으로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일일찻집 장면을 보자. 수영이 소속된 운동권 동아리 남학생들은 운동부 학생들이 들어와 여학생들에게 집적대며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보라"는 수영의 성화에도 민족 노선이냐 계급 노선이냐, 학생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하던 논쟁을 계속할 뿐이다.

결국 그 상황을 정리하는 건 해창이다. 그가 운동부 학생들의 불의를 응징하는 순간, 그들의 논쟁은 공허한 것이 되고 운동권 학생들을 향해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따져 묻던 평소 해창의 지론이 힘을 얻는다. 시대의 불의를 이야기하던 운동권 학생들이 눈앞의 불의를 외면하는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드라마는 이들에게 어떤 소명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는다.

해창 일행이 중국집에서 노동가요를 부르던 일군의 대학생에게 행패를 부리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해창 일행은 그들을 향해 "니들이 기계를 알아? 기계 한 번 돌려본 적 있냐고? 비싼 등록금 냈으면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란 말야" "미제가 만든 물건은 뭐든 안 된다는 놈들이 이건 왜 처먹냐? (중략) 이 밀가루도 미국에서 배 타고 온 거 아니냐고?" 등의 말을 쏟아내지만 대학생들이 하는 말이라고는 기껏해야 "죄송합니다"와 "잘못했습니다"가 다다.

물론 이 드라마는 이제 겨우 4분의 1을 달렸을 뿐이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사연을 동등하게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민우와 수영의 사연이 본격적으로 소개될수록 운동권의 핵심 인물인 정만의 목소리도 좀 더 풍부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아쉬움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을까.

문제는 '균형'이다. 연출자나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드라마가 아닌 이상, 드라마는 지금 실재하거나 한때 실재했던 어떤 현상이나 일군의 집단을 묘사할 때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그 균형이 어그러지는 순간 왜곡 또는 편향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처럼 20여 년 전 이야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때를 직접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드라마가 1980년대와 만나는 첫 경험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떤 일이든 '모 아니면 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건 위험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아모레미오> 1부는 세심함이 부족했고 좀 아슬아슬했다.

덧붙이는 글 ..
아모레미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