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동 고인돌은 누구의 묘였을까?

수원 금곡동 고인돌에 반하다

등록 2012.01.18 18:00수정 2012.01.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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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금곡동 고인돌 수원박물관 경내에 소재한 금곡동 고인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칠보산 자락 금곡동에서 발견이 되었다

금곡동 고인돌 수원박물관 경내에 소재한 금곡동 고인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칠보산 자락 금곡동에서 발견이 되었다 ⓒ 하주성

▲ 금곡동 고인돌 수원박물관 경내에 소재한 금곡동 고인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칠보산 자락 금곡동에서 발견이 되었다 ⓒ 하주성

선사시대의 돌무덤인 고인돌은 흔히 뚜껑 구실을 하는 넓은 덮개돌(개석·蓋石)을 여러 개의 굄돌(지석·支石)이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일종의 무덤방으로 꾸민 이 구조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 혹은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른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여러 유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다. 고인돌의 분포 관계를 보면, 주변 지역인 중국과 일본의 일부 지역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들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4만 기 이상에 해당하는 많은 고인돌이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섬과 내륙에 퍼져 있다.

 

수원 지방의 고인돌

 

a 문돌 발견 당시 앞뒤의 문돌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문돌 발견 당시 앞뒤의 문돌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 하주성

▲ 문돌 발견 당시 앞뒤의 문돌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 하주성

a 굄돌 굄돌은 덮개돌의 하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양측에 커다란 돌을 놓고, 앞되로는 문돌을 놓는다

굄돌 굄돌은 덮개돌의 하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양측에 커다란 돌을 놓고, 앞되로는 문돌을 놓는다 ⓒ 하주성

▲ 굄돌 굄돌은 덮개돌의 하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양측에 커다란 돌을 놓고, 앞되로는 문돌을 놓는다 ⓒ 하주성

수원에도 몇 곳에서 고인돌이 발견됐다. 팔달산 남부 능선에는 고인돌 군(群)이 있으며, 칠보산 자락 금곡동에서도 고인돌이 발견됐다. 더욱 인근 용인시에도 몇 곳에서 고인돌이 발견이 되고 있다. 이로써, 이 일대가 선사시대에 취락을 이루고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수원시 금곡동 칠보산 자락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탁자식이다. 밑으로는 굄돌을 받쳐 방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올린 형태. 금곡동 고인돌은 택지개발을 하면서 2009년 수원박물관 경내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이 고인돌은 밑에 잘 다듬은 굄돌을 받치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얹은 형태다.

 

경기남부에서 가장 큰 금곡동 고인돌

 

a 덮개석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튼 고인돌이다

덮개석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튼 고인돌이다 ⓒ 하주성

▲ 덮개석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튼 고인돌이다 ⓒ 하주성

금곡동의 고인돌은 그 규모에 있어서, 수원에서 발견이 된 고인돌 중에서 가장 크다. 무덤방을 만든 굄돌 역시 큼직한 돌로 양쪽을 큰 돌로 막고, 앞뒤로는 약간 좁게 무덤방을 만들었다. 

 

고인돌은 그 덮개석의 크기에 따라 순장한 사람의 지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금곡동 고인돌의 경우, 부락의 촌장 정도나 마을 지도자 격인 사람이 묻힌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의 경우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의 형태가 있다고 하는데, 금곡동 고인돌은 무덤 고인돌로 보인다. 우선은 커다란 굄돌로 사방을 막아 무덤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북방식의 탁자식 고인돌임도 알 수 있다.

 

그 모습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a 금곡동 고인돌 부정형으로 조성 된 자연석을 덮개돌로 삼았다

금곡동 고인돌 부정형으로 조성 된 자연석을 덮개돌로 삼았다 ⓒ 하주성

▲ 금곡동 고인돌 부정형으로 조성 된 자연석을 덮개돌로 삼았다 ⓒ 하주성

a 측면 고인돌의 측면. 큰 돌은 길이가 190cm에 폭은 150cm이다

측면 고인돌의 측면. 큰 돌은 길이가 190cm에 폭은 150cm이다 ⓒ 하주성

▲ 측면 고인돌의 측면. 큰 돌은 길이가 190cm에 폭은 150cm이다 ⓒ 하주성

북방식인 탁자식 고인돌은 두 개의 큰 돌을 양편에 세우고, 앞뒤에 조금 작은 돌로 문을 만들어 놓는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발견된 고인돌의 형태를 보면 덮개돌을 지탱하는 양측의 돌은 그대로 있지만, 문 역할을 하는 앞뒤의 돌은 거의 파괴돼 있다. 금곡동 고인돌의 경우에도 발견 당시 양측의 굄돌은 그대로 있었지만, 앞뒤의 문의 역할을 하는 돌은 사라져 있었다. 이 고인돌을 이전하면서 복원했다고 한다.

 

금곡동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320cm, 폭 270cm에 두께 80cm이 되는 부정형을 띄고 있다. 굄돌은 왼쪽의 받침 길이 190cm, 폭 150cm, 그리고 두께가 30cm다. 오른쪽 굄돌은 길이 140cm, 폭 100cm, 두께 25cm 정도가 된다. 이 고인돌의 높이는 140cm 정도.

 

a 고인돌 금곡동 고인돌은 덮개돌의 길이가 320cm나 된다

고인돌 금곡동 고인돌은 덮개돌의 길이가 320cm나 된다 ⓒ 하주성

▲ 고인돌 금곡동 고인돌은 덮개돌의 길이가 320cm나 된다 ⓒ 하주성

서호 옆 여기산 선사 유적지와 함께 수원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금곡동 고인돌. 비록 보존을 위해 자리를 옮겼지만, 그 규모만으로도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지난해 12월 26일 찾아간 수원박물관에서 만난 금곡동 고인돌. 이런 돌무덤 하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선다는 것 또한 답사의 묘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2.01.18 18:00ⓒ 2012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금곡동 고인돌 #선사시대 #수원 #수원박물관 #칠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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