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비에 나올라믄 빨리 보건지소로 오소"

어르신들의 참여로 뜨거웠던 보건지소 촬영 현장

등록 2012.01.20 15:05수정 2012.01.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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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촬영 곽봉희 할머니와 조점심 할머니 촬영 ⓒ 최성규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나 보다. 지난해 12월 하순, 한 지역 월간지에서 취재를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블로그와 온라인에 조금씩 연재했던 진료실 이야기가 그들에게 신선하게 비친 모양. 사진기자 한 분과 취재기자 한 분이 단감이 담긴 대나무 채반을 들고 나타났다.

반나절 동안 진행된 취재는 어머니의 손맛처럼 정갈하고 깔끔했다. 얼굴을 마주한 기자는 나만의 철학을 듣고 싶어했다. 제3자의 시선은 날카로워서 본인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파고들었고, 고르디오스의 매듭(프리지아의 왕 고르디오스가 만든, 아무도 풀 수 없다는 밧줄의 매듭이었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잘랐다)은 서서히 풀렸다. 

속을 완전히 탈탈 털어 내비친 후 그들은 돌아갔다. 잡지에 기사가 실리고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잡지라는 매체의 파급력 덕분에 지역 방송국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보여줄 게 있을까? 상대방도 많은 걸 바라진 않을 것이다. 1월 11일로 촬영 날짜가 잡혔다.

1월에 시골은 일이 없다. 긴장이 풀린 어르신들은 그제서야 뼈마디가 내지르는 비명을 듣는다. 지소가 위치한 남양마을 바로 옆 기동마을을 비롯해 중산마을, 더 멀리 망주리에서도 찾아온다.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어머님, 아버님'들께 촬영이 있음을 알렸다. 이왕 오실 거 일찍 오시라 했다.

방송국 차량이 오기로 한 날. 어르신들은 너무 일찍 왔다. 연달아 보건지소 문턱을 넘으신 어르신들의 출신 성분(?)은 다양하다. 골안마을, 상와마을, 망주리 평촌.


"방송국에서 왔는가?"
"아따, 어머님은 얼굴이 안 나오겠는데요. 치료받고 가실 때쯤 올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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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곽봉희 할머니와 인터뷰하고 있는 PD ⓒ 최성규


"방송국서 나오는데 환자 없음 안 돼지. 오후에 또 올게"

오랜 단골 조점심 할머니가 오셨다. 동갑내기 친구인 곽봉희 할머니도 오셨다. 최근 눈이 안 좋아져서 두문불출 집 안에만 있던 분이다. 친구의 권유에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최근 높은 출석률을 보이는 정애순 할머니도 발도장을 찍었다. 방송국 사람들이 늦어진다는 말에 같이 걱정해주었다. 방송국에서 손님이 오는데 환자가 뜸하면 안 된다며 오후에 한 번 더 오겠다는 적극적인 제안까지. 오후에는 진료비를 받지 않겠다는 제안으로 화답했다.

점심 전에 촬영팀이 도착해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PD, 촬영감독, 보조, 기사분이 자리를 잡았다. 평소 하던 대로 하라는 주문이 쉽게 들리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빤히 쳐다보는 네 명의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뻣뻣한 나에 비해 담담하기까지 한 어르신들. 촬영 감독님의 말을 들어보니, 시골에 계신 분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 촬영을 나갔는데, 큰 ENG 카메라를 보고는 '측량하러 나오셨소?'라고 물어볼 정도였단다.

환자분과의 대화, 새로 오신 어르신 얼굴 촬영, 진료기록부에 기록, 침 놓는 모습 등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디스크에 저장되었다. 중간 중간 PD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는 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침상 위에 계신 분들도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객관적이고 집요한 제3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치료 실력은 어떤지, 이제 곧 떠난다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지 말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남양에 더 있으라는 말을 들은 PD가 질문을 했다.

"어머니가 가지 말라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음…. 어머니도 같이 가입시다."

농담으로 응수했지만, 마음이 약간 젖어올랐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단어를 속으로 뇌까렸다. 전적으로 믿기는 힘들다. 만나서 헤어지는 경우는 많지만,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마음의 동요를 막기 위한 자기 암시.

"가지 말라" 한마디에 마음은 젖어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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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손녀 촬영 당일 손녀와 보건지소를 찾은 김금업 할머니 ⓒ 최성규

주변에 계신 분들 인터뷰를 다 땄지만 나는 끝나지 않았다. 다양한 주제의 질문에 대해 나의 소신과 견해를 밝혀야 했다. 평소 물어봐준 이도 없고 대답한 적도 없다. 미리 정리된 생각도 있을 리 없다. 질문을 받은 시점부터 철학이 만들어진다. 공보의 이후 진로는? 도시로 가서 지금껏 생각해왔던 계획에 기반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답했다. '가지 말라'는 말이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도시로 가겠다는 포부가 어쩐지 허공에서 맴돈다.

촬영팀은 총 4일간 내 곁에 머물렀다. 진료실 안과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장면 외에 개인적인 생활들도 모두 담아갔다. 딱히 보여준 건 없다. 대신 어르신들이 보여줬다. 그들이 이렇게 살고 있고 아픈 데가 있다고. 아픔은 그들의 행적을 드러내 준다. 서임원 아버님이 키우던 소에게 받혀서 옆구리가 결리고 곽형례 어머님이 농사일 도와주다가 무릎이 망가졌듯이.

그래도 살아간다. 아니 살아지는 것이다. "빨리 죽어야지"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보건지소에 들르고, 파스도 자주 붙인다. 언젠가 김금업 어머니가 오셨는데, 오른쪽 엄지 손톱이 뿌리부터 들려 있었다. 일하다가 들린 모양이다. 손톱 안을 자세히 보니 쌀 한 톨이 빼꼼하게 들어 있었다. 밥을 안치려고 쌀을 씻는데 들어간 모양이라며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일상과 아픔은 공존한다.

촬영 도중 조점심 할머니의 사위가 오셨다. 인터넷에 오른 할머니 기사에 반가웠다는 말을 전한다. 가끔 하는 전화 한 통으로는 어르신들의 일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촬영이 또 다른 자녀들에게 어르신들의 일상을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조용하지만 역동적인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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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손녀 집으로 ⓒ 최성규


#방송국 #KBS #공중보건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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