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소문이 흐드러지다

[역사소설 함흥차사 4]

등록 2012.01.21 15:37수정 2012.01.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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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開經에서도 정몽주와 이색이 술상을 앞에 두고 있었다. 술이 사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좀체 잔을 들려 하지 않던 두 사람 가운데 정몽주가 입을 열었다.

"목은牧隱께서는 최근 장안에 낭자한 소문을 들으셨는지요?"
"아직 듣지 못하였네만, 말해보게나."
"너무나 참람하고 불측하여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렵습니다."
"말하라고 했네."
"전하의 생부生父가 신돈이라는 소문이…."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색이 술상을 내리쳤다.

"어떤 놈들이 감히 그 따위 헛소문을 퍼뜨린다는 말인가!"

이색이 격분했지만 소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통용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소문이 그렇듯 출처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어이없게도 공민왕 자신이었다. 공민왕의 정비(正妃)인 노국대장공주가 난산 끝에 돌아간 다음 들인 왕비와 후궁들도 전혀 생산이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반야(般若)라는 후궁에게서 아들을 얻기는 하였는데, 반야는 공민왕의 후궁이 되기 이전에 신돈의 여종이었으니 어찌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진실을 알고 있을 당사자들인 공민왕과 신돈, 반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당사자들 가운데 신돈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제거되고 공민왕이 의문사를 당한 것에 비해, 가장 비밀을 잘 알고 있을 반야의 죽음은 의혹을 더욱 부채질 했다.

공민왕이 죽음을 당했을 때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우왕을 즉위시켜 정권을 잡은 이인임은 반야를 예우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위부(巡衛府)에 투옥한 다음 임진강에 던져 죽이는 것으로 아예 입을 막아버리고 말았으니 의혹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터였다.


"전하께서 즉위하셨을 때 의혹이 무성했었던 것은 충분히 각오한 일이었네. 모든 정황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상 의혹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겠지. 그러나 즉위하신지 이미 육년이나 지난 다음에 왜 다시 고개를 드느냐는 말일세."

소문의 확산은 왕실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과 동일한 파괴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작년에 최영과 이성계가 왜구들을 결정적으로 격파한데다, 명나라에 의해 북쪽으로 밀려나 북원으로 격하된 원나라도 거의 힘을 잃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 무엇 때문에 왕실의 정통성을 심각한 의문이 제기할 목적이 분명한 소문이 고개를 쳐든다는 말인가? 이색이 곤혹스럽게 정몽주를 바라보았다.


"혹시 승하하신 선왕께서도 다시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가?"
"예전보다 더욱 망측하게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허허,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이러는가…."

이색이 깊이 탄식했다. 마흔 넷의 한창 나이에 재위 23년을 채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공민왕은 죽은 다음에도 편치 못했다.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만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을 것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와 보위를 물려줄 후계자를 한꺼번에 잃은 공민왕이 크게 낙담하여 모든 의욕을 잃었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비정상적인 쾌락에 탐닉했던 나머지 급기야 목숨까지 잃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퍼진 점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왕비를 잃은 공민왕이 용모가 뛰어난 청년들을 가까이 두고 그들과 궁녀들이 혼음(混淫)하게 하고는 문틈으로 엿보았다거나, 때로는 자신이 청년들과 남색(男色)을 즐겼다고 했다. 심지어 후계자를 얻을 목적으로 청년들로 하여금 후궁들은 물론 왕비까지 간음하게 하였는데, 환관 최만생(崔萬生)으로 하여금 명령을 전하고 상황을 보고하게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세 번째로 맞은 왕비인 익비(益妃)가 회임을 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공민왕은 크게 기뻐했다. 익비의 소생을 후계자로 삼으려던 공민왕은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을 제거하려 하였지만, 자신도 죽게 될 것이 두려웠던 최만생이 청년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만취하여 잠자리에 공민왕이 비명횡사를 당한 것으로 믿는 백성들이 적지 않았다.

"설마 포은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당시 선왕께서 가까이 하셨던 청년들은 자제위(子弟衛)의 소속으로 가문과 학식이 검증된 인재들이었습니다. 권신(權臣)들을 경계한 선왕께서 믿을 수 있는 자제위를 하여금 정사를 보필하게 하고 호위까지 맡기신 것을 모른다면 어찌 관가(官家)의 녹을 먹는 자라 하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선왕께서 자제위들로 하여금 궁녀들과 혼음을 시켰다면 회임하는 궁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회임한 궁녀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데다, 오직 익비만 회임하였으니 약간이라도 상식을 가졌다면 얼마나 허무맹랑한 헛소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네. 게다가 이미 반야에게서 아들을 둔 이상 다시 아들을 얻는다면 그로 인해 권력투쟁이 발생할 것이 명약관화하거늘, 하물며 자제위의 씨로 하여금 보위를 잇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런 것을 믿는 자체가 지극히 한심한 일일세."

"하오나 최근에 들어 다시 무성하게 피어나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왕께서 제정신이 아닌 행위를 저지르다 목숨을 잃었다는 헛소문도 참람하기 이를 데 없거늘, 전하의 생부가 신돈이라 하여 왕실의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기까지 하는 놈들을 발본색원하여 대역죄로 징치해야 마땅할 할 것입니다."

"포은이 보기에는 누구일 것 같은가?"

"일단 이인임과 최영은 아닐 것입니다. 선왕께서 승하한 것과 전하께서 즉위한 덕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자들이 굳이 그런 소문을 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선왕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겠다는 자들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공민왕을 절망시킨 것은 한계에 부딪친 탓이었다. 공민왕이 명나라를 따르고 원나라를 배척한 것은 단순한 역학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고려를 말아먹었던 부원배들을 척결하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종주국을 명나라로 이전하는 정책이 요구되었겠지만, 공민왕은 그것을 이용하여 완전히 판을 갈아엎으려 했다.

충자 항렬의 왕들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고려는 왕이 허수아비 이상으로 기능하기 어려웠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창건한 다음 장남에게 보위를 전하려 할 때부터 어깃장이 나기 시작했다. 왕건이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호족들의 딸들을 취하여 맺은 혼인동맹의 결과 정식의 왕비만 무려 여섯에 달하고 그 미만의 부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당연히 벌어진 갈등과 다툼은 왕건이 죽은 다음 본격적으로 비화되었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왕권의 약화로 이어졌다.

강하고 유능한 왕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선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부분의 왕들은 기를 펴기 어려웠다. 강한 자들은 왕을 폐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죽이는 것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저 왕이라는 이름 밖에 가지지 못했던 왕들을 배출하던 고려의 왕실은 마침내 결정타를 맞았다.

의종 24년(1170)에 정중부에 의해 발생한 '무신의 난(武臣亂)'이 무려 백 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과정에서 왕실이 극도로 피폐하게 되었다. 정중부, 이의방,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던 정권은 최충헌에 의해 타도되었지만 그것은 집안에 의한 공포정치의 연장으로 기능할 따름이었다.

최충헌 이후 최우, 최항, 최의로 이어지던 공포정치는 40년 동안이나 지속되던 몽골의 침략에 대해 의견이 갈리던 끝에 붕괴되고 말았다. 최우를 죽이고 최씨 가문을 타도한 집권한 심복이 다른 자에게 죽음을 당하는 등의 혼란 끝에 백년에 달하던 무신정권이 종식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원나라의 속국이 되어 충자 항렬을 사용해야 했던 왕들이 여섯이나 등장하였으니 왕실의 권위와 체통을 입에 담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강한 자들이 어명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심복을 물 좋은 자리에 앉히는 관행이 오래도록 유지되었는데, 그것은 다시 왕권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을 끊지 않고서는 왕권이 강화될 수 없었다. 여러 차례나 일어나 공민왕을 죽일 뻔했던 반란들도 왕권을 강화하려는 조치에 대한 반작용인 만큼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었는데, 정몽주 등이 주창하고 공민왕이 주목한 돌파구는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기었다.

몽골에 패배하여 속국으로 전락한 고려가 원나라의 정치권에 예속된 것처럼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기게 되면 그들의 문물을 도입해야 할 터였다. 공민왕이 가장 주목한 명나라의 문물은 과거제도였다. 고려도 과거제도를 통해 관리를 뽑기는 하였으나 이색과 정몽주, 정도전 같은 몇몇 인재를 제외하면 유명무실에 가까웠다.

공민왕은 과거를 부흥시켜 학식과 능력이 검증된 인재들을 관리로 임용하여 왕실에 충성하게 만들려 했다. 명나라의 제도를 따라야 한다는 명분으로 부흥된 과거제도를 통해 권신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데다, 이후 국정을 바르게 운영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야 했다. 명나라가 북원을 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군량과 전마(戰馬)를 무리하게 요구하고 공녀(貢女)와 환관을 바치라고 해도 군말 없이 따랐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신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과거제도가 활성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충성심이 깊고 강직하기로 따를 사람이 없다는 최영조차도 공민왕의 뜻을 탐탁지 않게 여길 정도였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개혁정치의 선봉에 세웠던 신돈을 스스로 제거해야 하는 등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친 데다, 사랑하는 아내와 그토록 원했던 후계자까지 잃은 공민왕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제주도에 잔존해 있던 원나라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수도의 병력과 왕실을 든든하게 지키던 최영까지 출전한 상황에서 그만 공민왕이 죽고 말았다.

"선왕의 죽음은 그동안 누적된 좌절과 피로와 슬픔에 의한 돌연사일 개연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인임이 사실대로 발표하지 않았던 게지요."

"그럴 테지, 사실대로 발표했다가는 정권을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이인임이가 그렇지 않아도 눈에 가시 같던 자제위를 범인으로 몰아 잔혹한 고문을 가해 거짓자백을 받은 다음 전하를 즉위시켰을 것이네. 반란을 진압하고 나중에 당도한 최영도 굳이 이인임을 추궁할 필요가 없을 테지. 선왕의 뜻대로 명나라와 평화체제가 유지되고 과거제도가 도입되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인데다, 달리 즉위시킬 왕자도 없는 이상 차라리 이인임과 권력을 반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도라고 판단했을 테니까."

"하지만 최영이 결코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이인임이 드러내고 전하를 무시하는 등으로 전횡을 일삼는 데다, 심복들까지 날뛰고 있어 칼을 뽑을 빌미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상관하지 않아도 그렇게 굴러갈 것 같으니까 포은은 소문의 출처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네."

슬쩍 예를 표한 정몽주가 밖으로 나오자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기다리던 가마에 오르자 가마꾼들이 빨리 귀가하기 위해 서둘렀다. 저 앞에서 이쪽을 향해 말을 달리던 누군가가 급히 멈추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별래무양하십니까?"

이성계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소인이야 별래무양하오만 장군께서 어인 일이시오?"
"전하를 배알하여 동북면의 방비상태를 상주 드린 다음, 기왕 올라온 김에 성균관에 있는 아들놈을 만나보고 빙장의 댁으로 가는 중입니다. 제 빙장은 포은과도 안면이 없지 않을 테니 함께 가셔서 박주라도 나누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은 감사하나 다른 약조가 있는 관계로 성의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소이다. 소인은 상관하지 마시고 어서 빙장 댁으로 가보시지요."

이성계와 헤어진 정몽주는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개경에 있는 이성계의 장인은 강윤성(康允成)이었다. 이인임에 비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세력을 자랑하는 강윤성이 정실부인이 있는 이성계에게 둘째 딸을 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이인임이 강윤성을 얕잡아보지 못하는 데는 아주 유명한 칼잡이를 사위로 둔 것도 포함될 수 있었는데, 최영과 마찬가지로 이성계와 강윤성도 그런 소문을 유포할 자들이 아니었다.

다시 길을 줄이던 정몽주는 언뜻 정도전을 떠올렸다. 정도전이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은 공민왕의 유지를 받들어 명나라와 화친하고 북원을 배척할 것을 주장했다가 이인임의 눈 밖에 난 탓이었다. 학식과 상황판단과 결단력과 추진력의 모든 면에서 자신과 대등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 정도전이 지금까지 조용히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최근에 유배에서 풀려난 다음 한양에 초옥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비록 이인임 일파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다지만 일단 개경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을 정도전이 왜 한양에 머무르고 있는지 새삼스레 의아해졌다.
#역사소설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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