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진짜 테러범은 도대체 누구일까

[리뷰]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12.01.27 10:07최종업데이트12.01.27 10:07
원고료로 응원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를 거쳐 미시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교수. 이 정도 이력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 중에 엄친아가 아닌가? 그렇게 똑똑하고 공부 잘한 엘리트의 인생이 어느 날 꼬이기 시작했다. 잘 나가던 대학교수에서 연일 신문과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는 테러범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 아우라픽처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1월 대학교수였던 한 남자가 석궁을 들고 판사의 집을 찾아가 테러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법부에서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조사도 하기 전에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엄중처벌을 주장했다. 뉴스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그러나 정작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다. <남부군>(1990)과 <하얀전쟁>(1992)의 정지영 감독이 <까>(1998)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 <부러진 화살>이다. 지난 18일 개봉 이후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인 50만 명을 훌쩍 지나 누적관객수 100만을 넘기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짙은 사회성을 바탕으로 위트와 재미까지 더했으니 흥행은 더 말해 무엇할까.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2007년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박홍우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법원장)를 집 앞에서 석궁으로 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된 사건이다. 재판의 공판내용을 중심으로 한 법정극인 영화는 지금 인터넷을 중심으로 팩트와 픽션 사이에서 논란이 뜨겁다.

그깟 원칙이 대체 뭐라고...

수학자라는 직업이 말해주듯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한 김경호(김명호 역, 안성기 분) 교수는 그 원칙 때문에 꼴통으로 찍히고 범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5년 대학교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 사실을 지적하면서부터 일은 시작된다. 문제 자체가 오류였기에 해당 문제를 모두 맞다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채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학은 학교의 명예를 운운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일을 덮었고, 대신 문제를 제기했던 김 교수는 해교 행위를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어제까지 동료였고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딪치자 다 같이 협력하여 그를 꼴통으로 몰아붙였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원칙은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어느 광고는 남들이 모두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디 그런 용기를 용기로 인정해 주는 사회였던가?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아닌 대학에서 그것도 교수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비겁하게 '자기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어'라고 비꼬며 동료를 왕따시키고 매장시킬 수 있는 사회가 여기 아닌가.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같은 청소년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어도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아닌가. 어른들조차 원칙보다 이해관계가 중요하고 정의보다는 야합이 우선이기에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명분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남들 다 어기는 그깟 원칙이 뭐라고 김 교수는 자신이 그렇게 힘들게 쌓아 온 기득권을 버렸을까?

아름다운 법과 개판인 재판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 아우리 픽쳐스


구치소에 갇힌 김 교수가 박준 변호사(박훈 역, 박원상 분)와 첫 대면한 자리에서 나눈 법에 대한 정의는 사뭇 감동적이다. 변호사는 "법은 쓰레기다"라고 소리치는데 정작 김 교수는 "법은 아름답다. 문제가 정확하면 답이 정확한 수학처럼 법은 정확하다"라고 말한다. 상식 없는 세상에 원칙으로 맞선 수학자의 아름다운 이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제 재판은 수학자의 법 개념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법대로, 원칙대로만 해달라고 아무리 요청해도 칼자루를 쥔 판사들은 법대로 하지 않았다. 결론을 이미 내놓고 요식행위로 하는 재판에서 결코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리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피해자의 증거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를 요청하지만 판사들은 모두 이를 묵살하고 만다.

김 교수는 판사를 향해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전문가가 없으며 오직 사기꾼만이 전문가'라고 일갈한다. 사법부가 스스로 법 정의를 무너뜨림으로써 함께 권위도 무너뜨린 것이다. 이것이 팩트이든 픽션이든 이런 문제제기가 된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사법부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영화의 문제제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사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라는 법 정의는 이미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에 눌려 압사당한 개념이 아닌가 말이다.

누가 테러범인가

영화 <부러진 화살> ⓒ 아우라 픽처스


따라서 팩트와 픽션을 따지기 이전에 법의 존재이유를 묻고 싶다. 법은 '수'(水)·'치'(廌)·'거'(去)의 3자가 합쳐진 것(法)이라고 한다. 여기서 '수'는 공평함을, '치'는 정의실현을, '거'는 악을 제거하는, 응징적인 강제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조율하려는 목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그렇게 떠들던 '법치주의'와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는 권력의 최상부에서부터 지켜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지난 4년간 목도해왔다. 권력지향적 정치검찰이 휘두른 칼에 전직 대통령은 벼랑에서 몸을 던져야 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와 부정에는 눈을 감아 버리지 않았던가. 이것이 공평한 법치주의의 현실이었다.

재판 중인 사건의 당사자가 무기를 들고 판사를 찾아간 것은 물론 잘못이다. 하지만 문제는 '오죽하면 그랬겠냐'라는 피고의 입장에 대부분이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점이다. 원칙을 무시한 대학, 공평한 정의실현은 안중에 없이 일방적인 사법부, 그런 기득권층의 오만함을 인정하고 받아준 이 사회, 진정한 테러범은 김경호 교수가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아닐까?

실화 사건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억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자면 정치권을 포함한 경찰, 검찰, 사법부와 같이 법을 다루는 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크고 깊은 상황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정되지 않는다면 외부의 힘을 통해서라도 개혁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부러진 화살 정지영 김명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