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는 군인을 찍으면 안 됩니다

[좌충우돌 무계획 쿠바여행기 ②] 아바나편

등록 2012.02.07 16:43수정 2015.12.2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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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튿날의 시작은 쿠바산 커피와 함께

밤 9시가 안 된 시각에도 첫날의 피곤함은 나를 새 나라의 어린이로 만들어 주었다. '이왕 이렇게 졸린거 푹자야지'라고 중얼거리며 잘 준비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분명 자기 전에 아침잠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다 제거했다고 생각했다. 휴대폰 알람은 물론 집주인에게 깨우지 말라는 부탁까지 마치고 잠에 들었다. 잠에 취한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가장 중요한 열정은 꺼지지 않았는지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스르륵 일어났다.


물을 마시러 주방에 나가보니 집주인 할머니는 커피를 마시며 흔들의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맛도 맛이지만 마신 뒤에는 꼭 화장실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수한 커피향은 언제 화장실로 뛰어가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마저 슥슥 지워버렸다. 스페인어를 한마디 모르는 나는 자신있게 나도 한잔 달라는 몸짓을 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커피를 그다음엔 손을 둥글게 말아 원샷하는 시늉을 하자 흔쾌히 한잔 가져다 주셨다.

'그렇게 맛있다던 쿠바산 커피를 드디어 맛보는구나'의 눈빛으로 그윽하게 커피잔을 바라보고 한모금 꿀꺽했다. 혀끝부터 식도까지 쓴맛에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하지만 인상을 계속 쓸수 없는 이유는 어깨너머로 주인장의 기대감 어린 눈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초만에 뒤돌아 웃는표정과 함께 주인장에게 양손 엄지손가락을 하늘 높게 찔렀다(굿!이라는 선의의 거짓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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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새벽거리 동이 막 트고 난 후 아바나의 거리. 이렇게 한산한 모습은 새벽녘에만 볼 수 있다. ⓒ 박범준


체게바라의 흔적을 찾으려 시내를 누비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 곳에 왔던 나였기에 무작정 걷는거 외엔 체게바라의 흔적을 찾을 방도가 없었다. 길을 모르니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했고 나는 친근감 가득한 미소로 쿠바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내 모습은 사기꾼들이 접촉하기 좋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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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만큼이나 많은 체게바라 아바나 시내에서 이런 조형물들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 박범준


쿠바에 가게되면 사기꾼들을 정말 조심해야한다. 신변에 위협을 가하거나 협박을 하는 일은 없지만, 접근해서 무언가 요구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대부분 모히또 한잔이나 쿠바산 시가를 사달라고 요구한다).


한두번 당하다 보면 익숙해 지고 대처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된다. 손재주가 정말 좋은 쿠바사람들은 수공예품을 만들고 직접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정말 사고싶은 것들이 많지만 싼가격과 질이 좋기 때문에 계속 사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여행예산에 문제도 있지만 한번 두번 요구에 응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모습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미소와 함께 기분좋게 거절하는 것을 추천한다(숙소에 도착하니 지갑은 얇아져 있었고 털모자 3개와 한박스의 시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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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시장의 모습 일요일 오전. 말레꼰 부근의 한 거리에서 이렇게 장이 열렸다. 홍대의 플리마켓과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공예품들이 있었고 그 질은 매우 우수했다. ⓒ 박범준


수소문 끝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시청이고 그 다음이 혁명광장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물론 그들에게 기념품을 샀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다. 시청 앞은 정말 분주한 곳이고 먹을 것도 엄청 많았지만 귀찮은 호객행위도 10분에 한번 꼴로 지겹도록 당하게 된다.

지겨운 호객행위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시끄러운 노래만 선곡해서 듣고 있었다. 하지만 찜통더위에 귓구멍을 지금 당장 열지 않으면 증기기관차의 수증기가 내 머리에서 날 것만 같아 노래 한 곡을 채 듣지 못하고 포기했다.

시청앞 노점에 파는 음료수는 무더운 날씨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만약 여러분이 쿠바에 가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마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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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톨리오의 모습 아바나의 중심에 있는 카피톨리오의 모습이다. 서울 시청앞 광장의 모습과 비슷했다. 가장 복잡한 거리이고 활기찬 곳이다. ⓒ 박범준


혁명광장에 도착하다

지도를 펼치고 그날의 느낌이 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혁명광장이라는 곳이었고 모든 관광객들의 집합소였다. 왜냐하면 건물에 그려진 체게바라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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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광장에 있는 체게바라 아바나에서 가장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다. 한쪽 벽면에는 사진과 같이 체게바라의 모습이 반대편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 박범준


인터넷에서 체게바라에 대해 검색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무 흥분을 했는지 경비를 보던 군인들까지 찍고 있었다. 한 군인이 나에게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고 정말 순수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인상이 험악한 그 군인은 사진기부터 내놓으라고 그랬고 직접 사진을 지정해주며 지우라고 명령했다(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군인을 찍으면 안 된다고 그랬다).
덧붙이는 글 쿠바여행기 입니다.
#쿠바 #아바나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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