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복지법'보다 '어르신복지법'이 바람직하지 않나?

등록 2012.02.12 19:22수정 2012.02.12 19:22
0
원고료로 응원
지난해 12월 29일 한나라당 손숙미·조전혁 외 8인의 국회의원이 노인복지법의 제목과 내용에 나오는 '노인'이라는 용어 대신에 영어 낱말을 한글로 음차하여 '시니어'로 고칠 것을 주장하는 법률안을 발의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법률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노인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의미를 불식시키고, 가장 적당한 용어로 '시니어'로 바꾸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제안을 하였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관련 국회의원들은 교보생명과 시니어파트너즈가 공동으로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입법의 근거로 들고 있다. 설문조사 문항 가운데 좋아하는 호칭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56.4%)이 "시니어"를 선택하였으며, "실버"는 22.1%가, "액티브 시니어"는 13.4%가 꼽았다. 고령자(5.7%), 노인(2.3%)이라는 용어는 소수만 선택하였다고 한다. 설문조사 기관은 사설 기업이 한 것이다. 이런 설문 조사 결과를 국회의원들이 수용하였다고 판단된다.

이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되면 "노인복지법"이 "시니어복지법"으로, "노인의 날"이 "시니어의 날"로, "노인복지상담원"이 "시니어복지상담원"으로, "노인전용주거시설"이 "시니어전용주거시설"로 표기가 바뀐다.

그러나 이 법의 개정 취지가 우리말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영어를 선호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첫째, 개정 용어의 선호 문항이 편파적이다. 영어식 용어가 많고, 우리말 용어가 적다는 점이다. 노인이라는 말보다 더 우리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말로 '어르신'이 있다. 어르신은 '어르신네'의 준말이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문항에 넣었다면 영어 표현인 '시니어'보다 더 높게 선택하였을 것이다. '어르신'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니어'라는 영어식 표현을 사용함은 여전히 영어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둘째, 이 법률안 개정을 시작으로 영어식 용어로 법률안이 개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립 국가는 자국어로 법률안을 제정한다. 자국어가 없을 경우에 한하여 외국어를 사용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래 영어몰입 교육이 일어났고, 공공기관의 간판도 영어로 표기된 경우가 많아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이는 사업 명칭에도 영어식 표기가 범람하고 있다. 우리말글이 이토록 심하게 위축된 시기가 없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시정에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지경이다.

차제에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보좌관은 반드시 '국어기본법'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한국어와 우리나라 공식문자인 한글로 공공 언어를 쓰도록 되어 있다. 아울러 호칭 관련 법률안을 발의할 때에는 사전에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이나 100년이 넘게 우리말글을 연구해온 한글학회에 자문을 구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말로 선호하는 용어로 선정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박용규 기자는 학글학회 정회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박용규 기자는 학글학회 정회원입니다.
#노인복지법 #시니어 #어르신 #우리말 #영어 숭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영국 뒤집은 한국발 보도, 기자는 망명... 미국은 극비로 묻었다
  2. 2 [10분 뉴스정복] 동아일보 폭발 "김건희는 관저 떠나 근신해야"
  3. 3 [단독] 이정섭 검사 처남 마약 고발장에 김앤장 변호사 '공범' 적시
  4. 4 멧돼지 천국이 된 밭... 귀농 5년차의 한숨
  5. 5 전주시청 1층에 가보셨나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