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굽는 사람, 이보다 더 괴로울 수는 없다

[서평] 김인호의 <조선의 9급 관원들>

등록 2012.02.21 10:59수정 2012.02.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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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설탕과 함께 우리 몸을 해치는 물질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소금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그래서 소금은 오래 전부터 지금의 돈처럼 쓰이기도 했고 때문에 '백색 황금'이라 불리기도 했다.

어쨌건 없으면 안 되는 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소금 덩어리를 낙타 가죽에 싸서 건축 재료로 쓸 만큼 흔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소금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나라도 있었다. 이런지라 소금 때문에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듯 귀한 소금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산속의 바위 소금이나 소금 광산에서 얻기도 하고 소금이 들어 있는 호수(염호)에서 얻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의 타가자라는 도시 사람들은 소금광산에서 90kg짜리 소금 덩어리를 캐내어 낙타 양쪽에 하나씩 매달고 926km를 걸어 팀북투라는 곳까지 날랐다고 한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일종의 실크로드나 차마고도와 같은 소금길은 이렇게 생겨났다.

소금 전매하는 일 언제부터 생겼는지/오랜 세월 그대로 고치지 못하네//우리나라는 법이 가장 엄하여/해마다 내는 세금 일년 농사보다 많다네//나도 관동으로 나온 뒤에/해안을 다니며 몸소 독려했지//백성들 누추한 거처는 오두막집/쑥 엮어 만든 문에 자리조차 걸 수 없어//늙은이가 자식 손자 데리고/한 치의 시간도 쉴 수가 없지//혹한 때도 바닷물 길어오기에/짐 무거워 어깨 등이 다 빨개지고//뜨거운 열기와 연기 그을음//끓이는 훈기에 눈썹이 새까매졌지//문 앞의 열 수레나 되는 나무도/하루 저녁 땔감이 되지 못하네//하루 종일 백말의 물을 끓여도/소금 한 섬 채울 수 없네//만약 기한 내에 대지 못하면/혹독한 관리는 성내고 꾸짖으며//운송하는 관리는 산처럼 쌓아놓고//전매하여 비단 베로 바꾸지//임금은 공신을 소중히 여겨/상으로 (이를) 주는데 아끼지 않아//한사람 몸에 입은 옷/만백성 괴로움 깊이 쌓인다//슬프다, 저 소금 끓이는 사람들이여!/옷은 헤어져 등도 못 가리고//이 괴로움 견디지 못하여/급히 도망가 자취를 감추네-<근재전집> 권1, 관동와주

하지만 우리에겐 염호나 소금광산이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바닷물을 솥에 끓이고 끓여 졸여 얻는 자염법(煮鹽法)으로 소금을 얻었다. 오늘날 '염전'하면 자연스럽게 서해안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강원도에서도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위는 고려시대 지식인 안축(1282~1348)이 강원도에 파견 나갔다가 동해안에서 소금 굽는 사람들을 보고 그 비참함에 충격을 받아 기록한 것이다. 위 기록의 주인공인 소금 굽는 사람들을 '염간'이라 불렀는데 소금이 워낙 귀한 몸이다 보니 나라에서 전매하며 해마다 염간 한 사람이 25섬이니 30섬 등과 같은 일정량을 바치게 했다.

바닷물을 퍼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 힘든 일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만드는 것이었다. 염간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다. 가족들 모두가 하루 종일 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것도 추운 겨울까지. 그래도 생산량은 하루에 한 섬을 채우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소금 생산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1427년(세종 9) 강원도 감사(지금의 도지사) 보고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그는 강원도 염간 한 사람이 1년에 내야 할 소금량이 20섬이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에 연안지역의 소나무를 베지 못하는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강원도는 바닷물을 졸이는 자염법을 쓰기 때문에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염간들은 먼 곳에서 나무를 구해 와야 했다. 이를 운반하는 중간에 소, 말이 죽거나 상하였다. 또한 소금생산량 역시 적어져 염간들은 늘상 허덕여야 했다.
-<조선의 9급 관원들>에서


그런데 안축의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늙은이가 자식 손자와 함께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많은 바닷물을 퍼다 열 수레나 되는 나무를 때 소금 굽는 일을 쉴 새 없이 하고 또 해도 한 섬을 채우기 힘들 정도로 요구량은 지나친 반면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죽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멍에 '염간'


a  <조선의 9급 관원들> 겉그림

<조선의 9급 관원들> 겉그림 ⓒ 너머북스

안축이 만난 고려 염간들의 혹독한 실정은 조선시대라고 달라질 것이 없었다. 조선시대 염간들 역시 혹독하기는 마찬가지. 이처럼 연안지역의 소나무를 베지 못하는 금지령이 내려지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연안지역에서 땔나무를 쉽게 구하지 못하기에 염간들은 배를 동원해 가까운 섬으로 가 나무를 해와야만 했다.

그런데 옛날 배는 지금과 달리 동력이 아닌 사람 손에 의지했기에 파도가 심하면 움직이기 어려워 그마저도 어려웠다. 때문에 풍랑이 심하면 한번 왕래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또한 파도로 배가 침몰하면 죽기도 했는데, 만약 염간인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대를 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죽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멍에요 족쇄였던 것이다.

게다가 남해안과 서해안은 상현과 하현 때, 조수가 물러갈 때를 기다려 염전을 갈아야 했으며 이처럼 별도로 뺏기는 일이 흔했으니 염간의 어려움은 우리의 추측을 훨씬 웃돌 것 같다. 그럼에도 임금은 공신을 소중히 여겨 상으로 (이를) 주는데 아끼지 않았다.

만백성의 어버이(오늘날에는 흔히 '존경하는 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표현한다)라는 임금이 그 백성들의 고혈을 몇몇 공신에게 맘껏 생색을 내는 데 아낌이 없었던 것.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마음으로 만백성의 어버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남는 소금은 염간이 개인적으로 판매하도록 허용했지만 사실 염간에게 받는 소금량은 적지 않았다. 황해도는 1년에 24섬의 소금을 받았다. 24섬의 소금은 당시 노비가 일 년에 내는 거친 베 1,2단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래서 세종대에는 나라에 바치는 소금은 10석, 개인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4석으로 바뀌었다. 이 소금들은 두목을 맡고 있는 염간들이 모두 합쳐서 배에 실어 올려 보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손실되는 양이 적지 않았다. 소금이 곡식보다 손실량이 많자 정부는 운반할 때 생기는 손실분까지 더해서 받았다. 경기도의 경우는 소금 1석을 20말로 받았는데, 원래 1석은 15말이었다. 1석당 5말을 더 받았기 때문에, 한해 10석을 바치면 50말을 더 내는 셈이다. 그 외 지방에 나간 수령들이 염전을 조사한답시고 소금을 받아가는 일도 많았다. 그만큼 염간의 일은 괴로운 것 중에서 최고에 속했다. 하루 종일 불 때서 바닷물 졸이는 과정의 반복, 인생의 굴레였던 것이다.
-<조선의 9급 관원들>에서

<조선의 9급 관원들>(너머북스 펴냄)의 주인공들은 소금을 구워 나라에 바쳤던 '염간'처럼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묵묵히, 또한 이름 없는 존재로, 그리고 염간처럼 갖은 수난을 겪으며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던 조선의 하급 관원들이다.

혹은 오늘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저자는 존재와 그 기록은 있으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외면하거나 크게 주목하지 않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의 삶, 그 애환과 행복을 조선왕조실록이나 옛문헌기록을 근거로 모두 4부로 나눠 들려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과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과 많은 문집에 흔적이 있으나 오늘날 신문 사회면의 작은 기사처럼 전후 사방을 꿰지 않으면 없었던 것으로 간주할 만한 정도의 작은 단신이다.…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직업 소유, 통사, 구사, 마의, 산원, 중금, 숙수 등을 거의 처음으로 소개한다. 이들은 관청과 궁궐의 하위직이었지만 지금의 공무원이나 전문직보다 어쩌면 더 인기 있는 직종이었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착호갑사, 간첩, 목자, 염간, 조졸, 망나니 등은 신분을 떠나 나랏일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랏일은 출세의 기회가 있는 지름길이었다. 이들은 양반과 백성 사이에서 천시당하기도 했고, 때로는 권력자와 가깝다는 위치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모두가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실핏줄과 같은 존재이다.- 머리말에서

덧붙이는 글 | <조선의 9급 관원들>ㅣ저자:김인호ㅣ출판사:너머묵스ㅣ2011-12-05ㅣ값:16500원


덧붙이는 글 <조선의 9급 관원들>ㅣ저자:김인호ㅣ출판사:너머묵스ㅣ2011-12-05ㅣ값:16500원

조선의 9급 관원들 - 하찮으나 존엄한

김인호 지음,
너머북스, 2011


#공무원 #염간 #망나니 #김인호(작가) #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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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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