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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의 또다른 매력, 문지기의 신들린 '선방 쇼'

[2012 핸드볼 코리아리그 남자부] 인천 도시공사 22-20 상무 피닉스

12.02.28 11:53최종업데이트12.02.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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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열(상무)의 결정적인 슛을 손으로 막아내는 인천도시공사 문지기 강일구 ⓒ 심재철


경기 시작 직전에 묘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여자부 인천체육회와 SK 루브리컨츠의 경기가 끝나고 코트가 정리되자마자 이어 벌어질 남자부 선수들이 들어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핸드볼 경기장에서 이름난 문지기 부부 오영란(인천체육회)과 강일구(인천 도시공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웬만하면 눈짓을 주고받으며 활짝 웃어줄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그들은 내외하듯 각자 역할에 충실했다. 특히, 남편 강일구는 연습해야 할 골문의 자리를 다시 잡는 등 곧 벌어질 경기 준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순간 골문 뒤로 아내 오영란이 지나갔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들의 사이를 불편하게 오해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인천도시공사 문지기 김창권이 경기를 끝낸 오영란(인천체육회, 노란 옷)에게 인사하는 사이에 오영란의 남편 강일구(왼쪽)는 경기 준비에 여념이 없다. ⓒ 심재철


조치효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도시공사 남자핸드볼 팀은 27일 저녁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벌어진 2012 핸드볼 코리아리그 상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22-20(전반전 12-12)으로 이겨 두 경기 연속 패배의 아픔을 기분 좋게 씻어낼 수 있었다.

전반전은 강일구

야구 경기는 투수, 축구 경기는 공격수가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핸드볼은 문지기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격과 수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핸드볼 경기의 특성상 간혹 터져나오는 문지기의 수퍼 세이브는 속공으로 이어져 손쉬운 득점을 쌓아놓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득점도 그렇지만 경기의 흐름을 그 한 번의 선방 순간이 바꿔놓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는 것도 큰 이유다.

이번 시즌 핸드볼 코리아리그 인천 도원체육관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경기 끝날 때까지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동점, 역전의 순간도 모자라 재역전의 피날레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중요한 고비때마다 양쪽 문지기(인천도시공사 강일구, 상무 피닉스 지효근)의 놀라운 선방 쇼가 빛났다.

상무 엄효원의 7M 던지기를 놀라운 순발력으로 막아내는 인천도시공사 문지기 강일구 ⓒ 심재철


먼저 이름을 떨친 것은 인천 도시공사의 강일구. 경기 시작 후 5분 만에 상무의 첫 득점 기록이 적힐 정도로 강일구의 벽은 높아 보였다. 피벗 플레이어 김동명의 슛을 몸으로 막아낸 것이 13개의 선방 기록 중 첫 번째 것이었다.

특히, 20분이 지나면서 상무 피닉스 김현호의 슛이 연거푸 날아 들어왔지만 각도를 기막히게 잡은 강일구의 몸통과 손짓, 발짓은 좀처럼 빈 틈이 없어 보였다.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력과 노련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인천 도시공사는 점수 차이를 4점 이상 둘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전반전 끝무렵 패기를 앞세우며 달려든 상무 피닉스의 뒷심이 놀라웠다. 점수판을 12-12로 만들어 놓는 남성욱의 기습적인 슛 동작은 아무리 노련한 강일구라도 막아낼 수 없는 스피드였다.

후반전은 지효근

인천도시공사 피벗 박찬용(흰 옷)의 슛을 솟구쳐 올라 잡아내는 상무 문지기 지효근 ⓒ 심재철


그렇게 극적인 동점을 만들고 전반전을 끝낸 상무 선수들은 후반전 초반에 급기야 뒤집기까지 성공했다. 후반전 시작 직후 노련한 엄효원의 도움을 받아 체격 조건이 좋은 피벗 김동명이 역전골을 터뜨린 것도 모자라 후반전 10분에 비교적 먼 거리에서 던진 윤시열의 슛이 그물을 흔들어 16-13까지 달아날 수 있었다.

노련한 두 선수(엄효원, 윤시열)가 상무의 공격을 주도한 것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문지기 지효근의 신들린 듯한 선방이었다. 인천 도시공사의 김민구가 뛰어난 탄력을 자랑하며 빠르게 공격했지만 후반전 6분과 7분에 연거푸 나온 지효근의 선방 쇼는 흐름을 빼앗기지 않기에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경기는 두 문지기를 위한 한판 맞대결처럼 느껴졌다. 경기 종료 직후에 이어진 시상식에서도 지효근과 강일구는 나란히 상을 받았다. 잠깐의 선수 교체 겨를도 없이 33개의 상대 슛 모두를 혼자서 상대하며 13개의 선방 기록(방어율 39.39%)을 남긴 강일구는 당연히 최우수선수 트로피를 받았고 29개의 상대 슛 중에서 11개를 막아낸 지효근(방어율 37.9%)은 우수 선수 자격으로 손목 시계를 받았다.

종료 직전에 터진 박찬용(인천 도시공사)의 멋진 쐐기골 순간 ⓒ 심재철


마무리 집중력은 인천 도시공사 선수들이 앞섰다. 경기 종료 2분 가량을 남겨놓고 인천 도시공사의 노련한 유동근은 오른쪽 날개 지역에서 결승골(21-20)을 터뜨렸고, 상무 피닉스 김양욱의 오버 스텝 반칙으로 얻은 또 한 차례의 공격 기회에서 피벗 박찬용이 믿기 어려운 점프 슛 쐐기골을 멋지게 꽂아 넣었다. 아마도 남자 핸드볼계에서 가장 몸놀림이 날렵한 피벗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회 장소를 삼척으로 옮기는 코리아리그 중반 일정은 더욱 흥미로운 명승부들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상무 선수들은 3월 3일 저녁에 강력한 우승 후보 두산과 맞붙으며, 인천 도시공사는 바로 3월 4일 저녁 충남체육회를 다시 만난다. 지난 18일 서울에서 당한 2점차 패배(17-19)의 불편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강일구 오영란 핸드볼 코리아리그 지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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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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