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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향한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의 강심장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그룹] 한국 2-0 쿠웨이트

12.03.01 09:30최종업데이트12.03.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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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예선 한국 대 쿠웨이트 경기에서 이근호가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선수들이 기쁨을 함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누구나 꺼리는 독배를 손에 잡아들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상황이 절박했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분명하게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수락한 것이다. K리그 전북팬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렇게 냉정한 감독은 처음이다.

안방 경기임에도 예상 밖으로 상대에게 밀리던 흐름에서 결정적인 골이 두 개나 나왔지만 최강희 감독은 단 한 번도 활짝 웃거나 박수 쳐주지 않았다. 마치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승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29일 오후 9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그룹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안방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10팀이 겨루는 최종 예선에 1위(4승 1무 1패, 14득점 4실점) 자격으로 당당히 올랐다.

"국가대표가 있다는 건 이런 K리그가 있다는 것"

비겨도 소용없는 방문 팀 쿠웨이트 선수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나왔다. '닥공'의 창시자 최강희 감독 앞에서 그들은 정말로 '닥공'을 흉내 내고 있었다. 적어도 50분까지는 그것이 먹혀들었다. 하지만 공격의 흐름을 읽어내는 최강희 감독의 안목은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최강희 감독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을 믿었다. 경기장 관중석에는 김두현의 팬으로 보이는 여성 팬이 "국가대표가 있다는 건 이런 K리그가 있다는 것"이라는 손 글씨를 펼쳐 들고 있었다. 전북 모터스를 K리그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은 최강희 감독은 바로 이것이 K리그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경기를 만들어냈다.

후반전 시작 후 2분 만에 우리 축구팬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건이 터졌다. 쿠웨이트의 떠오르는 골잡이 유세프 나세르가 비교적 먼 곳에서 오른발로 강하게 찬 공이 문지기 정성룡을 넘어 크로스바를 때린 것이다.

쿠웨이트 선수들은 이것 말고도 전반전에만 유효 슛을 4개나 기록했다. 반면에 우리 선수들의 유효 슛은 그때까지 단 한 개도 없었다. 정성룡이 쳐낸 왈리드 주마의 왼발 중거리슛(8분)을 시작으로 쿠웨이트식 닥공은 본격적으로 뚜껑이 열렸다. 31분에도 알 무트와에게 오른쪽 대각선 슛을 내줬고 41분에도 바로 그 알 무트와의 오른발 바깥쪽 슛이 정성룡의 선방에 막혔다.

이 몇 장면만으로도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밀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노련한 김상식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었지만 앞에서 공-수 조율 역할을 맡은 김두현이 기대 이하의 플레이로 중원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다. 후반전 초반에 최강희 감독은 이 상황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결단을 내렸다. 전북 팬들에게 익숙한 '닥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닥공'의 비밀은 감독의 믿음

최강희 감독은 먼저 김두현 대신 기성용을 들여보내며 무너진 허리의 재활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13분 뒤에는 미드필더 한상운을 빼고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을 들여보냈다. 이렇게 되니 우리 팀에는 공격수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만한 선수가 무려 네 명(이동국, 박주영, 이근호, 김신욱)이나 뛰게 된 셈이었다.

자신이 내보낸 선수들을 믿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최강희 감독이 만들어낸 '닥공 축구'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흔들리는 허리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겠지만 그래도 김상식의 중심 잡기를 믿었고 그 앞에서 네 명의 공격수들이 적절하게 역할을 분담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준 것이다.

거짓말처럼 김신욱이 들어간 뒤 1분 만에 귀중한 결승골이 터졌다. 상대의 키다리 공격수가 들어오니까 쿠웨이트 선수들의 공-수 간격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수비수 이정수가 편안하게 공을 띄워 줄 수 있었고 바로 거기서 원하는 골이 나왔다.

수비수 등을 지고 공을 잘 멈춰놓은 이동국은 오프사이드 함정을 무너뜨리는 절묘한 찔러주기를 이근호에게 보내주었고 거기서 다시 넘어온 공이 쿠웨이트 미드필더 탈랄 알 에네지 발에 맞고 흐르자 침착하게 왼발 바깥쪽 슛으로 그물을 흔들었다. 지난 토요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두 골을 넣을 때처럼 침착한 마무리 동작이 빛났다.

첫 유효 슛이 바로 결승골

29일 서울 월드컴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쿠웨이트와 경기에서 이동국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정한 고수는 치열한 그라운드 위에서 빛난 셈이다. 바로 직전까지 유효 슛 숫자에서 우리 선수들은 0-6으로 밀렸다. 마치 쿠웨이트의 골 결정력을 비웃듯 이동국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은 문지기 나와프 알 칼디가 손을 쓸 수 없는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우리 팀의 첫 유효 슛이 바로 결승골이 된 셈이다.

한상운이 빠진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는 이동국과 박주영이 번갈아 넘나들었다. 바로 그렇게 효율적으로 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멋진 추가골이 나왔다. 71분, 왼쪽 측면으로 빠져나간 이동국이 올려준 공이 쿠웨이트 수비수 메사드 알 에네지의 이마에 맞고 떨어지자 최효진이 달려들며 슬쩍 이근호에게 밀어주었고 회심의 오른발 슛이 터졌다. 축구의 골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 준 한판이었다.

이후 경기 양상은 한층 안정을 찾은 우리 선수들의 축구 실력을 맘껏 자랑하는 마당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미드필더 기성용의 드리블과 패스 실력은 보는 이들이 계속 감탄사를 내지를 것들이었다. 특히, 경기 끝나기 직전에 왼쪽 옆줄 바로 앞에서 보여준 기성용의 드리블은 마치 농구 경기에서 나오는 현란한 더블 클러치 기술을 보는 듯했다.

이렇게 2-0의 승리를 거둔 우리 선수들은 불안했던 B그룹 1위 자리를 확실하게 굳히며 최종 예선에 올랐다. 오는 6월 3일부터 내년 6월 18일까지 1년 넘는 일정으로 진행되는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은 10팀이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리그를 벌인다. 거기서 상위 2팀만 브라질로 직행하는 티켓을 쥘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진출 팀은 한국을 비롯하여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일본, 호주, 오만, 이란, 카타르'로 결정났다. 이제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조 추첨 결과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시드를 배정받을 확률이 높아졌다.

덧붙이는 글 ※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결과, 29일 밤 9시 서울월드컵경기장

★ 한국 2-0 쿠웨이트 [득점 : 이동국(65분), 이근호(71분,도움-최효진)]

◎ 한국 선수들
FW : 이동국
AMF : 한상운(64분↔김신욱), 박주영, 김두현(51분↔기성용), 이근호
DMF : 김상식(78분↔김재성)
DF : 박원재, 이정수, 곽태휘, 최효진
GK : 정성룡

◇ B그룹 최종 순위
한국 13점 4승 1무 1패 14득점 4실점 -- 최종 예선 진출!
레바논 10점 3승 1무 2패 10득점 14실점 -- 최종 예선 진출!
쿠웨이트 8점 2승 2무 2패 8득점 9실점
아랍에미리트 3점 1승 5패 9득점 14실점
최강희 이동국 월드컵 축구 K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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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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