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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의 음악육식] 레드애플 반갑다. 그래서 걱정이다

2000년대 클릭비, 2010년대 레드애플인데...

12.03.10 11:37최종업데이트12.03.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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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밴드, 댄스그룹의 크로스오버...레드애플 ⓒ ledapple.startory.com



자동차도 카메라도 하이브리드가 대세인 세상이다. 하지만 자동차와 카메라가 하이브리드의 원조는 아니다. 록음악은 이미 10년 전에 저 둘 보다 먼저 하이브리드를 몸소 실천했다. 단순히 장르와의 결합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록과 랩, 두 장르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밴드 구성원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휩쓴 록과 힙합의 크로스오버 열풍은 전문 디제이(DJ)를 밴드의 일부분으로 정착시켰다. 현재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린킨파크(Linkin Park)나 림프비즈킷(Limp Bizkit)이 대표적인 예다.

디제이가 밴드에 들어오면서 밴드가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기존 곡에 대한 여러 버전의 리믹스가 가능해졌고, 드럼이나 기타가 표현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소리들을 손쉽게 연출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팝계의 흐름이 디제이 중심의 일렉트로닉 스타일로 옮겨지면서 더욱 강해졌다. 록과 일렉트로닉이 새롭게 결합을 시도하면서 디제이는 밴드의 일부가 아니라 밴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린킨파크(Linkin Park) ⓒ google.com


시대가 바뀔수록 밴드의 멤버구성도 바뀐다

디제이의 음악적 비중이 커질수록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밴드의 기본 포지션은 더 큰 속도로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마니아들에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의 모드스텝(Modestep)이나 호주의 펜듈럼(Pendulum)이 좋은 예다. 두 팀 모두 디제이셋(DJ set)과 라이브 체제의 라이브셋(Live set) 개념이 따로 존재하는 게 공통점이다.

쉽게 말해 클럽에서 공연할 때와 록 페스티발에서 공연할 때의 멤버 구성원이 완전히 다르다. 공연 상황에 따라서 밴드의 멤버 구성이 디제이를 중심으로 탄력적으로 재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요계 역시 팝계의 지난 10년 간의 흐름들을 반영한 음악적 실험들이 일부 이뤄졌었다. 아이돌 그룹을 통해서였다. 가장 대표적인 그룹이 99년에 데뷔한 클릭비다. 클릭비는 베이스, 드럼, 기타 등 기존 밴드 포지션에 댄스그룹을 결합한 독특한 멤버구성을 선보였다. 한창 팝계에서 인기를 끌던 록과 랩의 크로스오버를 반영한 포석이었다.

당시 댄스 일변도인 가요계 환경을 감안하면 댄스그룹에 록밴드를 도입한 시도는 상당히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혁신성은 단순히 멤버 구성에만 그치지 않았다. 2집 타이틀 곡 '환영문'은 강한 전자기타 사운드와 그 위에 곁들여진 턴테이블 연주와 래핑이 가미됐다. 지금 들어도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여기에 멤버들의 안무가 더해졌다.  

2011년 11월 발매된 클릭비 싱글앨범 '빈 자리' ⓒ 네오위즈인터넷


2000년대에는 클릭비, 2010년대에는 레드애플

클릭비가 2000년대 록과 랩의 크로스오버가 반영된 밴드라면 2010년 데뷔한 레드애플은 일렉트로닉이 강세인 현재 흐름에 맞춰 설계된 밴드다.

패드 드럼, 카오스패드가 장착된 기타에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나 나올법한 터치스크린 믹서, 여기에 댄스가 가능한 두 명의 보컬이 더해졌다. 레드애플 자신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처럼 이들의 존재는 구성 자체가 가요계 내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험이고 퍼포먼스다.

디제이, 밴드, 댄스그룹의 크로스오버가 말해주듯, 이들이 시도할 수 있는 음악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타임 이즈 업(Time Is UP)과 대시(Dash)는 록과 일렉트로닉이 결합된 사운드를, '거짓말 같은 사랑'과 '바램'은 전형적인 댄스곡과 발라드다. '너를 원해'는 패드 드럼이 아닌 실제 드럼과 통기타를 이용해 모던한 사운드를 연출해 냈다.

밴드 한 팀이 단 세 장의 미니앨범을 통해 한꺼번에 네댓 가지의 장르를 소화하는 것은 잔뼈가 굵은 프로 밴드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 곡을 레드애플이 다 만든 게 아니니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밴드 체제의 음악을 아이돌인 그들이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다. 밴드음악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한국 가요계에서 이들은 얼마만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씨엔블루나 FT아일랜드가 아이돌 밴드로서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밴드음악에 대한 가요계의 선입견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혹여 여러 장르를 유연하게 시도할 수 있는 자신들의 특징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홀라당 댄스그룹으로 재편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독특한 장비와 멤버구성으로 주목을 받은 레드애플. 과연 이 실험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 ledapple.startory.com


변죽만 울리는 가요계 음악적 실험들. 레드애플 실험은 어디까지?

클릭비나 문 차일드의 실험이 반 쪽 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의 실험이 일관되게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 2집을 기점으로 이 두 그룹은 댄스그룹이나 발라드밴드로 새로 개편됐다. 클릭비의 경우 기타와 베이스를 담당하던 노민혁, 하현곤이 탈퇴하고 본격적으로 댄스 그룹으로 전환했다. 1집에서 일렉트로닉을 시도했던 문 차일드 역시 1집 이후에 건반을 담당하던 허정민이 빠지고 발라드밴드로 개편됐다.

언더그라운드와 가요계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막혀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그나마 시도해왔던 가요계 내부에서의 음악적 실험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아이돌이라는 정해진 틀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마저도 1, 2집을 발매하고 나면 어김없이 발라드나 댄스그룹으로 개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말이다. 그 틀을 벗어날 순 없는 것일까.

언제나 새로운 시도들이 댄스와 발라드로 귀결되고 마는 현실은 듣는 이를 항상 답답하게 만든다. 기획사들도 수요를 따라가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음악시장이 획일화 된 건 수요의 책임일까 공급의 책임일까.

이래저래 컨추리부터 데스메탈에 알 수 없는 신종 장르들까지. 모든 음악이 자유롭게 순위권을 오가는 미국과 영국의 '대국적' 취향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레드애플 클릭비 문차일드 크로스오버 린 킨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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