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코리아>의 미덕...그래, 통일은 '핑퐁'이 아니야

현정화의 마지막 대사가 더 와 닿는 이유

12.05.12 12:14최종업데이트12.05.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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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예술인의 가장 천부적인 재능은 사건을 육감적으로 이해하고 그려내는 능력이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예로 들면, 소년은 소녀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 않는다. 하지만 육감적으로 소년이 소녀에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코리아>를 이야기하면서 다소 거창한 도입부를 쓴 이유는 <코리아>가 여러 칭찬 받을 부분이 있지만, 특히 분단현실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그려냈다는 점에 있다.

6.25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통일'은 그저 허구 같은 명제일 뿐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분단현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영화이다. 특히나 단순히 우리는 무조건 통일을 해야한다는 명제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 차원에서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 영화의 가치는 빛이 난다.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분단 현실의 해소는 정치논리가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는 탁구대표팀이 정치적 논리로 인해서 갑자기 단일팀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선수들은 TV 뉴스를 통해서 이를 알게 된다.

이에 선수들은 수긍하지 못하고 반발한다. 그저 이미 선발된 선수들은 모두 데리고 간다는 배려 아닌 배려만 이야기할 뿐이다. (아마도 영화이기는 하지만 현정화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므로 실제 현실과 차이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단 현실에서 단일팀 구성은 당연한 민족적 명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대표들은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과 노력을 통해서 선발된 사람들이다. 주인공인 현정화야 어차피 남북을 통틀어도 리분희와 자웅을 겨루는 실력이니 큰 문제가 없지만 겨우 선발된 선수들의 입장은 다르다. 일본에 간다고 하더라도 경기에 출전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단일팀이 되어서 자신의 출전을 박탈당하는 입장에서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수 십 년의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단순히 단일팀 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적 결정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코치단도 복식팀 선발에서는 단순히 세계랭킹 상위 순위들의 조합만이 최선이 아니라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현정화와 리분희의 조합을 원하는 정치인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존 파트너들로 출전할 것을 결정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첫 국제대회 출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유순복이 현정화에게 출전 기회를 양보함으로서 해결되지만, 코치 입장에서는 기존 파트너들로 팀을 짜는 것이 정치 논리 앞에서 스포츠인의 최소한 양심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북한 선수단의 철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저 정치적인 논리로 만들어진 단일팀이 다시 정치적인 논리로 사실상의 해체를 하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 역시 현정화를 비롯한 남측 선수들과 최종적으로는 북측 감독의 결정으로 해소된다. 어쩌면 분단 현실의 돌파구는 정치적인 판단이 아니라 남북 개개인의 염원이 만날 때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처럼 보인다면 환상일까?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분단 현실의 해소는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 영화의 다른 장점은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기저에 깔고 있지만, 단순히 민족주의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정화 개인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현정화 개인의 입장에서 현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민족 통일이라는 거대한 담론의 무조건적인 외침은 없다. 단순히 개인의 입장에서 지금 분단 현실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해답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영화 초반부에 남북선수단들은 서로 물리적인 결합은 이뤘지만 화학적 결합은 이뤄내지 못한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 '일성아'사건이다. 남측 남자 선수가 동료 선수를 '일성아'라고 부르면서 북한 선수단을 자극하게 된다. 현재 우리 시각에서는 대통령의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있기에 북한 선수들이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체제의 사고라 해도 진정한 분단 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백미인 장면은 현정화와 리분희의 대화 장면이었다. 간염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리분희를 보며 현정화는 넌지시 경제적으로 풍족한 남측으로 올 생각이 없는지 묻는다. 이에 대한 리분희의 대답이 걸작이다. "동무도 미국 가서 살면 더 좋지 않겠어. 미국이 더 잘 살잖아. 나는 내 조국이 제일 좋아".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잘못된 오류 중에 하나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잘 살게만 해주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북한을 도와주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제대로 남북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장면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91년 41회 세계선수권 대회 당시 현정화·리분희 선수 ⓒ CJ엔터테인먼트


마지막 '현정화'의 대사,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

초등학교 시절 어렴풋이 남북 단일팀이 세계대회에 나갔다는 것이 기억난다. 영화가 시작하며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라는 자막에서 놀랍기만 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현정화는 리분희에게 "뭐라고 말해야해, 전화할게, 편지할게란 말도 할 수 없잖아"라고 한다.

이 대사는 1991년이 아니라 201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심지어 <코리아> 개봉에 맞추어 추진된 현정화와 리분희의 만남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사를 바라보며, 오히려 남북은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져만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마지막 우승 장면, 결과를 뻔히 알지만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우승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우승까지 가는 과정에서 남북 선수들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단순히 남북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분단 된지 60년이 넘은 우리에게 있어서 2012년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코리아 분단 현정화 리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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