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11미터 룰렛의 희비 겪은 '첼시 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첼시 FC 1-1(승부차기 4-3) FC 바이에른 뮌헨

12.05.20 16:08최종업데이트12.05.20 16:08
원고료로 응원
페드루 프로엔사(포르투갈)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파란 옷의 첼시 FC 선수들은 서로 뒤엉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뮌헨의 슈바인슈타이거는 옷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골 라인으로부터 딱 11미터 지점에 찍어놓은 작은 점 하나가 120분이 넘도록 땀 흘린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붉은 옷을 입은 안방 팬들은 이 결과가 믿기 어려운 듯 머리를 감싼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흔히 11미터 룰렛이라고 불리는 축구장의 승부차기가 만들어내는 잔인함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첼시 FC(잉글랜드)는 우리 시각으로 20일 새벽 뮌헨에 있는 푸스발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1-2012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FC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최종 맞대결 1-1로 비긴 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겨 감격적인 첫 우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손가락을 깨문 '아르연 로벤'

경기 시작 후 20분이 조금 지난 시각 안방 팀 뮌헨의 간판 날개공격수 아르연 로벤의 왼발이 빛났다. 첼시 수비수들 틈바구니로 빠져나가면서 왼발로 선취골을 노린 것. 하지만 로벤의 왼발을 떠나 낮게 깔려나간 공은 각도를 잘 잡은 첼시 문지기 체흐의 다리에 맞고 골대를 때렸다. 이것이 불운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순간에도 로벤은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입으로 손가락을 살짝 깨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번 더 손가락을 깨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뮬러의 헤더(83분)와 드로그바의 헤더(88분) 골로 1-1을 만든 상태에서 맞이한 연장전 외나무다리 위에 로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연장전 3분만에 승리의 여신은 안방 팀 바이에른 뮌헨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리베리의 드리블을 따라가던 첼시 골잡이 드로그바가 발을 잘못 내밀어 그를 넘어뜨린 것이다. 프로엔사 주심은 단호하게 휘슬을 울리며 11미터 지점을 가리켰다. 페널티킥이었다. 승부차기를 걱정하던 뮌헨 선수들은 마치 승리를 거머쥔 듯 기뻐했다.

11미터 지점에 찍은 흰 점 위에 공을 내려놓은 주인공은 아르연 로벤이었다. 뮌헨의 옷을 입기 전에 첼시 FC에도 한동안 몸담으며 활약했던 그였기에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왼발 킥이 골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방향을 예측한 문지기 체흐는 왼쪽으로 몸을 던지며 가슴으로 막아냈다. 운명은 그렇게 로벤의 간절한 표정을 남긴 채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연장전 후반전까지도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는 휘슬이 울렸다. TV 중계 카메라는 얄궂게도 이 순간에 로벤의 얼굴을 가깝게 잡았다. 손락을 깨물고 있는 로벤의 표정이 그 때까지의 모든 상황을 압축하고 있었다.

최후의 보루, '페트르 체흐'

FC 바르셀로나(스페인)와의 준결승전 두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노란딱지를 받는 바람에 첼시 FC의 간판 선수들 중에 존 테리와 이바노비치가 결승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 둘은 없어서는 안 될 수비수였기 때문에 적잖은 축구팬들이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을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더구나 결승전 장소는 뮌헨의 안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 마테오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다비드 루이스-게리 케이힐'의 센터 백 조합을 선택했고 새내기나 다름없는 라이언 버틀랜드를 측면 미드필더로 내세웠다. 이처럼 외관상으로는 첼시가 밀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노련한 문지기 페트르 체흐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였다.

체흐는 연장전 초반에 로벤의 페널티킥을 결정적으로 막아낸 것도 모자라 승부차기에서도 반전 드라마를 만드는 디딤돌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첼시 첫 키커 후안 마타의 왼발 킥이 노이어의 선방에 걸리는 바람에 그 출발은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것이다.

더구나 뮌헨의 세 번째 키커는 놀랍게도 문지기 노이어였고 그에게 오른발 킥을 허용해 첼시는 1-3으로 궁지에 몰렸다. 2007-2008 시즌 모스크바에서 열린 결승전 승부차기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맞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5-6으로 패했던 불편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 체흐는 누구보다 침착했다. 뮌헨의 네 번째 키커 올리치가 강하게 찬 공의 방향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날리며 손끝으로 잘 쳐냈다. 이 때부터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슈바인슈타이거의 킥이 골문 오른쪽 기둥을 때리고 나왔다. 축구장을 내려다보는 승리의 여신이 첼시 선수들에게 미소짓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똑같은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주인공은 디디에 드로그바였다. 단 세 발짝만 물러나 오른발을 내뻗은 드로그바의 간결한 킥은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대장정의 막이 내렸다.

2000-2001 시즌 결승전(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짜, 밀라노)에서 발렌시아 CF를 승부차기 끝에 5-4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던 바이에른 뮌헨은 11년만에 안방에서 트로피를 노렸지만 거기에는 장갑을 끼고 포효하던 전설적인 문지기 올리버 칸이 없었다.

축구 챔피언스리그 첼시 FC FC 바이에른 뮌헨 페트르 체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