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으로 얼룩진 자리마다 우정의 해바라기가 피길

KBS 2TV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SOS를 보고

등록 2012.05.22 13:15수정 2012.05.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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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밤, 낮에 무리하게 운동을 해서 그랬는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정이 넘어서 깬 잠이 좀체 다시 들지 않을 것 같아 텔레비전을 켰다. KBS 2TV에서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 SOS >(Save Our School)가 방영되고 있었다.

암과의 투병중인 어머니와 강력계 형사인 아버지와 결손가정에서 부모님의 관심밖에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며 학교생활을 하는 청나(정인서 분)의 아픈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다.

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결손가정이거나 다문화가정 등 불행한 환경의 아이들이 피해의 대상이 되도록 설정한 드라마의 의도가 다소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는 중학생 신분의 여자아이가 감당해야 했을 인격적인 모독과 폭력이 우리사회의 실상과 겹쳐 가슴이 아팠다.

같은 학교 일진들은 청나에게 금품을 갈취한 후 얼굴과 가슴을 발로 차고 식판의 잔밥을 청나의 식판과 머리 위에 쏟아 붓고 발을 밟았다. 그들은 수시로 그 아이를 폭행하고 곤경에 빠트렸다. 한쪽 팔을 계속 가해하여 팔이 짓무르고 엄지발톱이 뭉개져서 하얀 양말은 빨간 피로 물들었다.

'어떻게 14~16세 정도 된 중학생들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뿐만 아니다. 가해학생들은 선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갈취한 돈을 모아 조폭들이 하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며 분식집에서 생일파티를 여는 등 최근 학교폭력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가해학생들의 잦은 폭력과 금품갈취를 당해야만 했던 청나는 가족과 선생님들의 무관심 속에서 멍든 가슴을 치유 받지 못한 채 불길 속에서 고통을 받다가 세상과 작별해야 했다. 드라마가 픽션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이명희 극본, 김영조 연출로 꾸며진 본 작품은 '학교폭력은 어떤 식으로든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울분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드라마가 끝나고서도 몇몇 장면들이 오버랩 되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학생들의 폭력성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져야 하는가. 인간의 가학행위는 애초에 타고난 것인가.폭력의 문제가 아이들만의 문제인가. 이 사회와 학교와 가정은 그들을 언제까지 방치해 둘 것인가. 지금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전국의 학교에 얼마나 많을까. 자식 가진 부모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그 부모였다면, 아니면 그 학교 선생이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우리의 학교교육, 가정교육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폭력이 일상화 된 그들을 영영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일까. 학교란 모름지기 인격과 인성 도야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선조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스승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학교는 공교육의 장으로서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인데 그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과 영상매체 등을 통해 온갖 폭력을 접하게 되고, 폭력에 노출되다보니 폭력이 일상화돼 특별한 죄의식 없이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 어느 곳 하나라도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가르친다면 그러한 폭력이 횡행하는 학교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한 귀퉁이에 토끼나 닭과 같은 가축을 기르면서 당번을 정해 먹이를 주게 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을 체득하게 해 정서함양교육을 시켰다. 비단 가축만이 아니라 학급별로 화단을 만들어 봉숭아와 채송화, 맨드라미, 사르비아, 나팔꽃을 심고 줄에 올려 가꾸게 했다. 아주 사소한 교육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시절에 참으로 값지고 귀한 교육이었다.

청소년 교육은 큰 외침이나 구호보다는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은 화분 하나 가꾸게 하는 조그만 사랑의 가르침이 학교폭력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어른들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는 지금이라도 폭력으로 얼룩진 자리마다 우정이라는 희망의 해바라기가 꽉 들어차 피기를 염원해 본다.
#학교폭력 #드라마스페셜 #SOS #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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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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