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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사장님, "<각시탈> 만세"보다 위로가 먼저입니다

김인규 사장 23일 제작발표회 이례적 등장…사망한 보조출연자 유가족 침묵 시위

12.05.24 09:43최종업데이트12.05.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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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보조출연자가 사망하는 사고를 겪은 드라마 <각시탈>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KBS 김인규 사장은 "사장이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KBS 김인규 사장이 건배를 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각시탈>은 국민에게 즐거움과 위안이 될 드라마가 될 것이다."

공영방송사의 사장이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자기 스스로 언급한대로, 이례적이다. <추노> 때 그랬듯이 자신이 참석하면 드라마가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나 뭐라나.

KBS 김인규 사장이 23일 오후 열린 새 수목드라마 <각시탈>의 제작발표회에 얼굴을 비췄다. 30일 첫 방송을 앞둔 <각시탈>은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활약하는 '슈퍼히어로' 각시탈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헌데 이 자리에서 김인규 사장은 시청자들의 즐거움과 위안은 고려했을망정 <각시탈>에 참여했던 또 다른 국민의 눈물은 헤아리지 않았다. <각시탈> 촬영장으로 향하던 도중 목숨을 잃은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와 그의 가족 말이다.

"KBS와 제작사, 대책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어"

KBS 드라마 <각시탈> 촬영에 나섰다 교통사고로 숨진 보조출연자 가족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언혁


"KBS는 우리아빠 살려내고 '각시탈' 방송해라"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 63빌딩. <각시탈>의 제작발표회장 앞에는 피켓을 든 모녀의 소리 없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각시탈>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 4월, 경남 합천의 촬영장으로 향하던 중 불의의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은 보조출연자 박씨의 유가족은 어제(22일) 여의도 KBS 앞 시위에 이어 이틀째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사고 직후, 방송사인 KBS와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 운수업체인 동백관광과 보조출연자 고용 업체인 태양기획 측은 각기 사고처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뜻을 밝혔지만, 한 달이 넘은 현재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나 사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 측은 장례비용 2천만 원을 쥐어준 뒤 사과 한마디 없던 방송사와 제작사 등 관련 업체들에 분개하고 있다. 

유가족 측은 "당시 KBS와 제작사에서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언론 플레이를 했지만 실질적인 대책은커녕,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유가족 측은 또 22일 KBS 앞에서 침묵시위를 한 이후 관련 업체 측으로부터 "원하는 게 뭐냐"는 취지의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조출연자의 죽음 앞에 일언반구 없었던 김인규 사장

KBS 드라마 <각시탈>의 한 장면 ⓒ KBS


방영을 앞둔 KBS나 제작사로서는 드라마 방영을 1주일여 앞두고 터진 박씨 유가족 측의 이 같은 시위가 언론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KBS가 도의적인 책임은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책임을 지기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규 사장이 이 사고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광복절 즈음 종영하는 <각시탈>이 대박이 나면 "종방연에서 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했다는 김인규 사장. 그는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빠를 잃고 <각시탈> 방영 내내 고통 속에 TV 브라운관을 지켜봐야 할 박씨의 아내와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딸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었을까.

22일 유가족과 함께 KBS 앞 시위에 참석했던 전국보조출연자 노동조합 문계순 위원장은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유가족들은 김인규 사장의 사과 한 마디를 원하는 것"이라며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본다면, 일상생활을 하던 가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 현실이 얼마나 참혹하겠나. 아이들도 어리다. 가족들이 무척 황망해하는 상황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 위원장은 "방송사나 용역 회사에서 위로를 해 가족들을 달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냐"며 "KBS는 보조출연자는 어차피 용역회사 소속이니 책임을 떠밀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두 달을 넘긴 KBS 새노조 파업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김인규 사장이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과 같은 적극적인 대응을 보여주리라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박씨의 사망이 예측치 못한 사고에 의한 것이었지만 문 위원장의 목소리엔 방송사가 전혀 돌보지 않는 보조출연자에 대한 처우와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녹록치 않은 환경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었다.

<각시탈>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박기웅은 "바쁜 스케줄 속에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불가피하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사고가 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한다.

같은 촬영장에 있었을 이 젊은 배우만큼 유가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김인규 사장님, <각시탈>의 종영 후 "만세"를 부르기 전에 먼저 유가족를 찾아 위로를 건네는 건 어떨까?

각시탈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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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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