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방패막이로 갔던 나, 강정에 머무는 이유

강정평화학교 유가일 교장 "붉은발 말똥게와 눈 마주쳐..."

등록 2012.06.08 14:59수정 2012.06.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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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유가일 강정 평화학교 교장 강정에 머물게 된 이유를 들려주고 있다.

유가일 강정 평화학교 교장 강정에 머물게 된 이유를 들려주고 있다. ⓒ 이명옥


조계사 앞마당에서 6월 2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부터 강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수요일(6일)에는 강정평화학교 교장 유가일씨로부터 그가 강정에 머물게 된 이유를 전해들었다.

"사랑이 클수록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도 커진다."


강정 평화학교 교장 유가일씨가 좋아하는 문구다. 유가일씨는 구럼비가 폐쇄되기 3주 전 우연히 강정마을에 갔다. 첫날 구럼비에서 양치질을 하다 눈이 마주친 붉은발 말똥게의 눈 때문에 그곳에서 활동가로 눌러 앉았다. 현재 유가일씨처럼 그곳에서 활동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60명 정도다.

"강정은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운 곳이에요. 강정에 간 첫날 용천혈에서 용천수로 양치질을 하고 있었어요. 양치질을 하는데 물속에서 불은발 말똥게가 저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 눈과 마주친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구럼비를 부수고 그곳에 해군기지를 지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제가 이라크에 있을 때 폭격이 심해지자 고아원에 아이들을 버려두고 담당자들이 달아나 버렸어요. 처음에는 폭격이 시작되면 아기를 안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멍하니 굳어지곤 했지요. 제가 그 극한의 공포를 이겨낸 방법은 제가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었어요. 아기를 보살펴야 하면 오직 그 일에만 온 마음을 쏟은 거죠."

유가일씨의 이전 이름은 유은하다. 이라크 전쟁터에 인간방패로 가서 4개월을 살았다. 그곳에 갈 것을 결정한 순간 돌아온다는 기약은 없었다. 그곳에서 목숨을 버릴 각오로 갔기 때문에 어떻게 잘 죽을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낯선 땅 전쟁터에서 담당자들이 모두 달아난 고아원 영아들을 돌보며 2개월을 지내야했던 유가일씨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전쟁터에서 겪은 심각한 내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몸의 반쪽이 마비가 일어나면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됐다. 몸이 조금 회복되자 이름도 바꿨다. 이라크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아픔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가일씨가 강정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구럼비에 펜스가 설치되기 전 3주 동안 구럼비에서 보냈다. 구럼비의 아름다운 풍광과 벗하며 지낸 시간들은 이라크 전쟁보다 심각한 전쟁터에서 그녀를 머물게 했다.

"제가 이라크에 인간 방패로 갔었다는 사실 때문에 용기 있고 강한 사람으로 알지만 전 무척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강정서도 가능하면 경찰과 부딪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투쟁 현장에 잘 나가지 않는 편이에요. 이상하게 제가 나가기만 하면 연행이 되거든요(웃음).


처음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기 전에 새벽 4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사이렌이 울렸어요. 제게 사이렌은 공포 그 자체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바그다드에 있을 때 사이렌이 울린다는 것은 곧 폭격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거든요. 폭격이 끝난 뒤 나가 보면 온 시가지가 파괴되어 있고 사람이 죽어 있곤 했어요. 사이렌은 폭격이고 파괴고 죽음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는 저는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잊어버리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녀가 여전히 강정에 머무는 이유는...

a 조계사 앞 평화 기원 토크쇼 6월 6일 조계사 앞

조계사 앞 평화 기원 토크쇼 6월 6일 조계사 앞 ⓒ 이명옥


지금도 그녀는 극한의 공포가 밀려오면 구럼비가 파괴되기 전의 슬프도록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힘을 얻곤 한다. 붉은발 말똥 게의 눈. 펜스가 쳐지기 전 구럼비에서 열어 준 신혼부부를 위한 깜짝 파티 사진은 그녀를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된다.

그녀는 현재 강정평화학교 교장겸 활동가로 생활하고 있다. 국제적인 연대도 이뤄져 SNS를 통해 소식을 알리면 그 소식을 번역해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지키고 싶은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웃고 울며 함께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유씨는 곳곳에서 사람들이 연행되는 상황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파이프로 연결했던 손을 망치로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분노와 절망감으로 온몸과 마음이 다 타버린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두번째 연행 후 '이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일까?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꼭 지켜주고 싶은 말똥게와 아름다운 구럼비와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 강정이 있기에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다.

a 소금꽃 나무를 부른 가수 임정득 노래하는 사람 임정득이 노래로 함께하고 있다.

소금꽃 나무를 부른 가수 임정득 노래하는 사람 임정득이 노래로 함께하고 있다. ⓒ 이명옥


유씨는 지치지 않고 연대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소통'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유씨는 늘 세 가지 소통을 통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한다.

첫번째 소통은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기도다. 기도는 위기와 공포감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했다.

두번째는 자신과의 소통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폭격과 폭력 죽음을 목격하며 생긴 내상을 그대로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은 내상을 치유하는 힘이 됐다.

세번째는 타인과의 소통이다. 60여 명에 이르는 활동가들은 개성이 강한 독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명과 평화의 마을 공동체 강정을 지키려는 마음 하나로 소통하며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서울의 소리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서울의 소리에도 송고합니다.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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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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