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읽은 책만 파는 '헌책방' 보셨어요?

독특한 색깔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무더운 여름밤, 심야책방도 열려

등록 2012.07.03 17:38수정 2012.07.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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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같기도 하고 문화 공간 같기도 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 김종성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박원순 서울 시장의 집무실 사진이 눈에 띄었다. 서로 기대어 있는 듯 삐딱하게 서 있는 책장들과 그곳을 가득 채운 책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한쪽 벽에는 재미있게도 아이들이 그린 것이 분명한 그림들이 붙어있다. 얼마 전 까지도 비싸고 유명한 '세계의 명화'들이 붙어있던 자리란다. 시장 집무실하면 떠오르는 딱딱하고 과시적인 모습을 통쾌하게 깬 기분 좋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 집무실을 디자인한 사람은 더 흥미롭다. 이름도 독특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삼십대의 책방지기가 그 주인공. 누리집에 가보니 웬 공연소식, 영화상영 소식, 책읽기 모임 안내 등이 첫 페이지에 보인다. 말이 헌책방이지 동네 사랑방 같고 문화 공간 같은 분위기다. 책방도 책방지기도 궁금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책방을 넘어서 '동네 문화 공간'으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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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두 번 열리는 책과 공연이 있는 '심야책방'. ⓒ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이하 '이상북')은 평범한 동네의 평범한 건물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다. 번듯한 간판도 없는 너무 평범하여 찾기도 힘든 건물 지하의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책방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다양한 전집. 그런데 판매용이 아닌 책방지기의 소장용이라고 써있다. 그러고 보니 4500여 권이 꽂혀있는 책장 군데군데에 '소장용' 딱지가 붙어있다. 팔 생각이 없으니 그냥 읽기만 하라는 것인데 배짱도 좋은 주인장이다.       

거꾸로 가는 원형의 벽시계, 앨리스와 다스베이더 가면, 피노키오와 레고 등으로 꾸며져 있는 아늑한 공간이 본격적으로 나온다. 약 30평 크기의 가게 첫 인상은 책방이라기보다 카페 같은 느낌으로 실제로 500원에서 2000원까지의 과자와 음료도 판다. 한쪽에는 주말 저녁에 열린다는 공연을 위한 작은 무대가 있고, 편안히 누워 책을 읽고픈 큰 쇼파, 공연 외에 영화도 상영하는지 벽에 하얀 스크린이 붙어있다.

끈으로 묶여 쌓여있는 헌책 더미,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책장, 구석구석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찾는 사람들… 내게 익숙했던 헌책방의 풍경을 이곳에선 볼 수가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얼굴이 하얀 책방지기가 처음 온 손님을 금세 알아보고 별 다른 설명도 없이 얇은 책자 한 권을 건네준다. 손 글씨와 만화가 버무려져 써있는 이름 하여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여행하는 법', 페이지를 넘기면서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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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과 손님들이 남긴 각종 이벤트 소식과 모임 쪽지 게시판. ⓒ 김종성


자신이 읽은 책만 파는 헌책방


2007년에 문을 연 '이상북'의 가장 큰 특징은 책방지기가 읽은 책만 판다는 것. 당연히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책들이 서고를 채워가고 있다. 책방지기 윤성근씨는 원래 IT분야의 회사에서 야근, 특근을 불사하며 일을 하던 직장인으로 서른 즈음에 갑자기 자신의 일이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책과 관련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그런데 책이 그렇게 좋았다면 새책방도 있는데 왜 헌책방 을 차렸을까?

"새책 서점은 내가 원하는 책만 팔 수는 없어요. 대형 서점, 대형 출판사의 영업과 자본에 좌우되는 게 일반 서점의 현실이죠."

하지만 '이상북'의 책들은 주인장 마음대로 갖출 수 있다. 좋은 책인지, 읽을 만한 책인지,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책인지… 주인장은 그런 기준으로 책꽂이를 채운단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헌책방과 달리 학습 참고서나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은 안 보인다. 점점 대형 서점들이 내놓은 책들, 자본이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만 읽게 되는 현실 속에서 그가 서고에 채운 책들은 무척 신선하고 참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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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두 번 열리는 '심야책방' 안내 포스터. ⓒ 이상북 누리집 갈무리

책장을 둘러보다 최민식 사진가의 <소망, 그 아름다운 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를 발견하는 짜릿함과 기쁨도 누렸다. 젊은 헌책방 주인답게 판매중인 중고책들의 목록을 누리집에 파일로 정리해 놓아 책 찾기가 편하다.    

책방에 왔다가 소장하던 책을 기증하는 손님들도 있는데, 그 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 그 금액을 기증한 분에게 고스란히 마일리지로 적립해 주는 '이상한' 제도도 있다.

책방지기도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과 책방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낸 데 이어, 최근엔 후속작 <심야책방>을 펴냈다.

'심야책방'은 이상북에서 운영 중인 인기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 밤에는 새벽 6시까지 책방 문을 밤새 연다. 자정녘엔 주인장이 섭외한 연주가나 가수가 공연도 한다고. 책방 벽에 붙어있는 심야책방 포스터의 문구가 재미있다.

'읽을 책이 많거나 써야할 글이 많은 분, 헤어진 이성 친구 생각에 몸서리치는 새벽을 맞을 때, 진짜 좋아하는 단짝 친구와 술 없이 밤새도록 이야기 하고 싶을 때, 홧김에 가출하고 싶은 어른들, 누구라도 좋습니다. 심야 책방에 놀러오세요. 입장료 그런 거 없습니다.'

'돈의 맛'에 중독된 첨단의 자본주의 세상속에서 책방지기는 돈은 적게 벌어도 착한 일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한다.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이런 사람처럼 되는 걸까. 연하의 스승을 만난 기분이다. 착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책방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찾아가기 : 지하철 6호선 응암역 3번 출구 - 서울서부경찰서 옆 (전화 문의 : 070-7698-8903)


덧붙이는 글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찾아가기 : 지하철 6호선 응암역 3번 출구 - 서울서부경찰서 옆 (전화 문의 : 070-7698-8903)
#이상북 #윤성근 #헌책방 #심야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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