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로 학교폭력 잡겠다고? 예산이 아깝다

[학생부장 일기 18] 학교폭력 근절, 문제는 정책적 '디테일'이다

등록 2012.07.04 15:10수정 2012.08.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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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황식 국무총리가 2월 6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관계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2월 6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관계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 가지가지 한다. 실적 올려 생색내기 바쁜 교육과학기술부와 상급기관의 명령이라면 죽은 시늉이라도 하는 교육청의 등쌀에 일선 학교가 겪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교폭력 온라인 설문조사의 학생 참여율이 낮다는 점을 우려하며, 그 수치를 어떻게든 올리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중순 공문이 접수된 이후, 설문조사 사이트를 학교 홈페이지에 팝업창으로 띄웠고, 가정통신문을 모든 학생들에게 배포했으며, 학급별로 아침 조회나 수업시간에 담임교사와 교과교사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를 독려했다. 학교 입장에서 할 건 다했지만, 그런데도 낮은 참여율만 탓하며 교육청은 학교가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셈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만약 학교에서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교과부가 낮은 참여율을 문제 삼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설문조사의 낮은 참여율과 학교폭력의 발생 가능성이 대체 무슨 관련성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교과부가 이렇듯 공을 들이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몰아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두루뭉수리 답변했다.

교과부의 학교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뿐더러 도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참여율이 낮은 것을 학교가 학교폭력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이해하고, 결국 그것이 학교폭력의 발생하는 주요한 원인인 양 책임을 떠넘기려는 처사다. 아니라면, 황당하게도 교과부도 교육청도 설문조사를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일환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설문조사 회수율 4.9%... 의욕만 넘치고 결과는 미미

문제의 발단은 작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에서 중학생 자살 사건이 터진 직후, 학교폭력은 학교를 넘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교과부는 이참에 학교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근절대책을 쏟아냈고, 지난해 12월 말 전국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우편을 통한 학교폭력 설문조사를 전격 실시했다.

굳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가며 등기우편 방식을 채택한 까닭은, 학교가 학교폭력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학교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터였다. 어떻든, 전교생의 주소를 일일이 적은 봉투에 설문지를 인쇄해 넣고 우편으로 발송하는 일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교과부의 의욕은 컸으나 결과는 미미했다. 우선 회수율이 예상보다 매우 낮았고, 그나마 지역과 학교 규모에 따라 들쭉날쭉해서 유의미한 통계라기에는 부적합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심각한 학교폭력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대서특필했지만, 많은 전문가들과 교사들은 오류투성이 자료일 뿐만 아니라, 일부 학교의 경우 폭력이 만연한 곳인 양 낙인찍힐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극히 일부의 사례로 학교마다의 학교폭력 상황을 일반화시키기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일자, 회수율이 낮은 학교들을 대상으로 '사유'를 보고하도록 하고, 재차 설문조사를 실시해 참여율을 끌어올리라는 요구를 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말과 달라진 게 있다면, '돈이 안 드는' 인터넷 설문조사'라는 점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6월 19일부터 26일까지 8일간 진행됐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지난 해 말 실시된 우편 설문조사의 회수율은 4.9%였다. 그런데, 교육청의 독려 전화가 계속 걸려오는 걸 보면, 이번 조사의 참여율은 그보다도 훨씬 낮은 모양이다. 교육청이 제시한 목표치는 10%다. 이는 교과부가 회수율이 낮은 이유를 보고하도록 한 학교마다의 '최소 기준치'이기도 하다.

그들이 강조한 10%라는 수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한 것일까. 10%만 넘기면 학교폭력 실태에 관한 유의미한 통계로 두루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전화로 참여를 독려하는 교육청의 말단 담당자를 어찌 탓할까마는, 그에게 10%가 기준선인 까닭을 묻자 그저 교과부의 지침이라는 힘없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학교폭력에 적절하게 조치할 것"... 하나마나 한 소리뿐

a  교과부가 19일 발표한 2012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국 학교 현황.

교과부가 19일 발표한 2012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국 학교 현황. ⓒ 윤근혁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지만, 그간 설문조사 없어서 학교폭력이 빈발하는 건 아니다. 정확한 실태가 궁금하면 학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학교가 굳이 은폐한다고 의심된다면, 무작정 학교를 배제할 게 아니라, 왜 숨기려고 하는지 이유를 먼저 찾아보는 게 순리다. 백 보 양보해서, 학교를 배제한 교과부의 이러한 설문조사 방식은 그저 아이들을 '겁박하는' 효과만 있을 따름이다.

아무리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해도, 단언컨대, 학교와 교사를 불신해서는 결코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사에게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묻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들의 헌신에 신뢰를 보내기는커녕 도매금으로 의심하고 욕해오지 않았나. 과연 이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일까.

전화기에 대고 마치 윽박지르듯 따졌지만, 그나 나나 무슨 감정이 있어 다투나 싶어, 교육청 담당자의 요구를 무시하진 못했다. 사실 10%라면 세 학급 정도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시간을 빌리면 되는 별 것 아닌 수치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단지 수치를 맞추기 위해 '동원'된다는 점이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참여율이 무려 90%나 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이는 전교생이 정규 수업시간에 학교 내 컴퓨터실에 모여 동시에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다. 그런 '성의 있는' 학교도 있는데, 참여율이 10%도 안 되어서야 하겠느냐는 간접적인 질책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엄중한 문제를 두고, 교과부도, 교육청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설문조사는 교과부와 교육청이 실시하지만, 그 결과는 계량화되어 학교에 그대로 통보된다. 결국 생활지도의 몫과 책임은 학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실시돼 4월 말 학교로 통지된 설문조사의 결과 문건을 보면, 엄청난 예산만 낭비한 교과부의 '뻘짓'이었음이 드러난다. 통계적 유의미 여부를 떠나, 학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명시한 내용이 하나마나한 소리로 채워져 있다.

귀교에 '일진'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 점검을 요하며, 학교폭력 예방교육 실시와 사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적절하게 조치할 것.

확인해 보니, 회수율 수치가 다소 차이가 날 뿐, 주변의 다른 학교의 것도 대동소이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이다. 고작 이런 조언 해주려고 그 엄청난 예산과 시간과 노력을 쏟았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대책이랍시고, 전가의 보도처럼 학생, 교사,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당 1~2회 이상의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라며 난리다. 내놓는 대책마저 하나마나한 소리다. 학교마다 일진이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고, 예방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문제는 정책적 '디테일'이다.

실적 보고용 '숫자놀음'은 그만... 학교를 괴롭히지 마라

교사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시큰둥하다. 학기당 2회 이상 학생 상담 의무화 지침을 두고 '상담'이 아닌, '2회 이상'에 방점이 찍히고, 상담 능력 강화를 위한 교사당 연간 30시간 이상 연수 의무화도 '연간 30시간'에 우선 눈길이 간다. 이런 '서류상' 대책을 수도 없이 경험한 탓에 몸과 마음이 관행에 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 열악한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분석까지는 그렇다쳐도, 학기당 1회 이상 학부모 의무 연수를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맞벌이가 태반인 현실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대개 가정통신문으로 대체되고, 곧장 폐지함에 버려지기 일쑤다. 곧, 실적으로 보고는 하지만 정작 아무런 효과는 없는 '시늉'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교과부와 교육청이 내놓는 대책마다 실효성 없는 '미사여구'이거나 실적 보고용 '숫자놀음'일 뿐이다. 사실 그들 역시 그런 대책으로 학교폭력이 근절되기는커녕 줄어들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아이들은 그만두고라도 그런 방식으로 기성세대의 학교폭력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신장될 리 만무하다. 그저 손 놓고 있을 수 없기에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

장강의 뒷물이 앞의 강물을 밀어내듯, 차라리 대학의 교사 양성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교사 임용 제도를 혁신하는 방식으로 미래 교사의 '질'을 높이고, 차제에 학교교육의 목표를 지식 전수에서 인성 교육으로 대전환하자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에 더 가깝지 않을까. 현 정부에 실효적인 대책을 수립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겠다. 단지 이 따위 쓸모없는 설문조사 등으로 학교를 괴롭히지만 말아 달라.

하긴, 아이들은 일제고사로, 교사는 성과급으로, 학교는 학교평가로,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잣대로 끊임없이 줄을 세우려는 현 정부에 뭘 바라겠는가. 안타깝게도, 학교가 시나브로 무한경쟁의 정글로 변해가면서 학교폭력이 나날이 흉포화하고 우리 교육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빠르게 지워내고 있다.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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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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