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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보다는 비주류였지만, '빠돌이'도 있었답니다

[흥미기획] 지나간 여자 아이돌들에 대한 어느 '빠돌이' 시민기자의 추억고백

12.07.16 20:37최종업데이트12.07.1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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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의 멤버 였던 성유리. ⓒ 이정민


때는 1999년. 필자가 대학교 새내기이던 시절, 드디어 핑클 정규 2집 < White >가 발매되었다. 시기상 역사적인 히트를 기록할게 뻔했던 그 앨범. CD로 사고 싶었지만, 사정이 궁해서 카세트 테이프로 샀고 고동색의 필름이 마르고 닳도록 들어댔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오픈 하우스를 했던 날, 밤새 술마시며 영화 보며 놀다가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아침운동도 할 겸 친구집 거실 오디오에 핑클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췄었다. 2집 타이틀곡인 '영원한 사랑'의 치어리더 춤을...

당시 자료화면을 보면 이효리는 핑클이 사람이 아니고 여신이라 했다. 왜 아니었겠는가. 청순함과 활동성을 갖춘 그녀들이 때론 상큼하게 때론 도도하게 내게 다가오면, 그리고 가끔은 촉촉한 눈빛으로 애절한 발라드를 날 보며 불러주었을때(실은 카메라를 보며 부른거겠지만) 난 녹아내렸다.

'언젠가 취한 밤 나에게 전활 걸어
자꾸만 그녀 이름 부르던 너였지

그래도 너를 미워 할수가 없었나 봐
가질 수 없는사랑 그 맘을 알기에 이해해'  - 핑클, 'Waiting For You' 중에서

이런 감성. 남자라면 울컥하지 않을수가 없다. '빠돌이'가 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물론 '빠돌이'는 어폐가 있는 표현이지만 '빠순이'의 남자 버전으로 이해하기 쉽게 불리워지곤 했었다). 핑클의 '자존심'을 들으며 남자가 리드하는 연애를 꿈꿨고, 그녀들이 <미션 임파서블>같은 분위기로 'NOW'라는 노랠 거침없이 내놨을땐 함께 미쳐버렸다. 핑클이 영어로 Fine. Killing. Liberty 라고,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깨끗이 끝내버린다,는 얼토당토않은 뜻이란걸 알아도 좋았다. 그녀들은 빠돌이들에게 '여자 에쵸티'였으니까. (필자는 효리보다 유리를 좋아했었다.)

S.E.S 멤버였던 유진. ⓒ CJ E&M


핑클뿐이었겠는가. H.O.T에게 젝키가 있었듯, 핑클에게는 S.E.S가 있었다. 바다-유진-슈, 라는 멤버들 이름을 따 만든그룹. 말이 필요없었다. 그녀들의 'I'm your girl'만 있으면...

'왜 내게 말을 못해
이미 지나간 일들 진부한 옛 사랑얘기
(I love you, tell me baby)

솔직히 말을 해줘
그렇지만 너에겐 오직 나뿐인 거야 oh yeah'  - S.E.S, 'I'm your girl' 중에서

여자 아이돌들의 노래에서 빠돌이들은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연애가 하고 싶던 열아홉 스무살 시절, 그녀들의 노래는 좋은 여자친구의 목소리처럼 들려왔고, 작지않은 위로가 되었었다. S.E.S 노래 중엔 '너를 사랑해'도 좋았다. '너를 사랑해 나의 마음이/너를 생각할수록/ 나는 행복해 다른 누구도 난 부럽지 않아' 하는 가사는 빠돌이들이 그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두 팀 다 해체하고 멤버들 각자 솔로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핑클이나 S.E.S의 멤버들을 TV에서 보거나 하면 추억을 마주하는듯 행복해지곤 한다.

앞서 언급한 두 선두 아이돌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잖은 빠돌이를 거느린, 2위 그룹 여자 아이돌들도 활약이 대단했다.

샤크라 멤버였던 정려원. ⓒ 이정민


베이비복스와 샤크라, 슈가와 밀크... 모두 하나 이상의 히트곡을 냈고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베복(베이비복스의 준말) 중에서 김이지를 가장 좋아했지만, 막내 간미연에겐 늘 마음이 가곤 했다. 스스로 하자있다며 천진난만해 보였던 간미연이 한 남자 아이돌과 스캔들이 났을때도 필자는 간미연이 그 아이돌과 잘되길 은근히 바랐다.

'한' 'Hey U' 등으로 고정 여성팬도 거느렸던 샤크라에서는 '예능계의 흑진주' 황보와 사랑스러운 배우 '정려원'이 배출되었고, 비록 'Shine'이라는 히트곡이 유일하지만 '이런 사랑에 감사해요 다시 난 태어났죠 그댈 만나기 위해 비워둔 자리죠 이제야 행복해요'라는 가사처럼 겸손히 가요계 활동을 매듭지은 슈가는 '큐티 허니' 아유미는 솔로 가수로, 황정음, 박수진, 한예원은 연기자로 자리를 잡아 활동 중이기도 하다.

필자가 과거 여자 아이돌 중 가장 아까워하는 그룹이 '밀크'다. 에쵸티의 리더 문희준이 제작한 밀크의 'Come To Me'는 가사나 멜로디가 나쁘지 않았는데, 당시로선 약간 J-POP같은 스타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그냥 묻혀버리고 말기도 해서였다.

이렇게 봐도 알수 있듯 필자는 어느 그룹의 순결한 팬은 아니었고, '잡팬'(90년대 당시 PC통신 아이돌 팬클럽 사이에선 이 그룹 저 그룹 가리지않고 좋아하는 팬들을 일컬어 '잡팬'이라 했었다)이었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필자는 음악광이었고, 누가 뭐래도 노래가 좋아서 여자 아이돌을 사랑했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7>의 제작 소식과 신화의 컴백 등에서 이른바 '1세대 아이돌'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나는 요즘, 가수로서의 솔로 활동이 그룹 시절보다 활발하지 않은 핑클과 S.E.S의 재결합은 빠돌이 팬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예전처럼 같이 앨범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 무대에서 멋진 음악을 보여주고 들려줄순 없는걸까. <응답하라 1997>에 기대하는 것도 건전한 팬픽의 드라마화 뿐 아니라 여자 아이돌을 좋아했던 '빠돌이'에 대한 추억이기도 한 것이다.

1996년 데뷔해 활동했던 5인조 아이돌 그룹 H.O.T(왼쪽)와 그 당시를 배경으로 2012년 만들어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출연 배우들. ⓒ SM엔터테인먼트, CJ E'&M


빠돌이 아이돌 핑클 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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