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노부부가 쌈짓돈 꺼낸 까닭

'상업화' 홍대 거리에서 길거리 예술을 만나다

등록 2012.07.30 16:01수정 2012.07.3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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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홍대 정문 앞 '놀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사운드박스(SOUNDBOX)

홍대 정문 앞 '놀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사운드박스(SOUNDBOX) ⓒ 고은빈


"이제 첫 곡 불렀는데 마지막 곡 부른 것처럼 환호해주시네요."

지난 토요일(28일) 오후 8시 홍대 정문 앞 '놀이터'에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에 박자를 맞추며 함께 들썩거렸다.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 멤버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노래 한 곡을 마칠 때마다 수건으로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중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주인공은 '사운드박스'라는 밴드였다. 보컬, 기타, 드럼에 탭댄스와 잼배를 연주하는 사람까지 총 6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거리 공연을 5년 넘게 하고 있다. 이날은 랩과 팝송을 비롯해 아리랑 등 전통 음악을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으로 풀어냈다.

홍대 거리(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과 홍익대학교 정문을 잇는 지역)에 길거리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홍대 놀이터에서 100여 미터 정도 가면 음식점, 노래방, 술집 등 각종 체인 가게들이 즐비하고 밤인데도 낮인 듯 착각을 일으키는 조명, 댄스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선 긴 행렬을 볼 수 있다.

상권이 커지고 있는 홍대 거리에서 '순수예술'을 지키려는 곳이 홍대 정문 앞 '놀이터'다. 매주 토요일 이곳에는 프리마켓(창작품을 팔거나 창작행위를 펼치는 곳)이 열리고 평일에도 창작예술 공연을 볼 수 있다.

"한 곡만 듣고 가려 했는데 탭댄스와 잼배 연주에 압도돼 계속 있었어요. 웬만한 정식 공연보다 훨씬 낫네요."

김희연(26세)씨는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가기 위해 놀이터를 지나다 아예 자리를 잡았다. 무더운 날씨에 200여 명이 밀착돼 몸을 덩실덩실거리니 사람들은 자연스레 땀으로로 범벅이 됐다. 그러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네댓 명뿐이었고 대부분이 선 채로 1시간 넘는 공연을 끝까지 함께 즐겼다.


길거리 예술가들의 '놀이터', 홍대 거리 지킨다 

a  음악을 좋아해 홍대 정문앞 '놀이터'에 공연을 보러온다는 김홍(71세)씨와 홍옥자(60세)씨 부부

음악을 좋아해 홍대 정문앞 '놀이터'에 공연을 보러온다는 김홍(71세)씨와 홍옥자(60세)씨 부부 ⓒ 고은빈

음악연주뿐만 아니라 문자토크쇼도 있었다. 팻말에 적힌 번호로 관중들이 질문이나 사연 등을 문자로 보내면 연주 사이마다 진행되는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소개를 했다. 밴드 보컬이 노래를 마치고 자체적으로 마련한 모금함(일명 '티박스')에 공연비를 부탁했다. 그들의 주수입이다.


"공연 마치고 밥값이라도 할 수 있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무조건 내지 말고 공연이 좋으면 넣어주세요." 

공연을 본 사람들은 몇 천 원부터 몇 만 원까지 공연비를 자발적으로 지불했다. 공연비 대신 음료수를 사다 준 사람도 있었다. 관중들은 젊은이들을 비롯해 다양했다. 아이와 손잡고 온 중년 남성부터 아이를 업고 온 엄마도 보였다. 젊은 커플들이 많았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커플이 있었다. 노부부였다.

김홍(71세)씨는 음악을 듣는 내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리듬을 탔고, 휠체어를 탄 홍옥자(60세)씨는 쉬지 않고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밴드가 4곡 즈음 연주를 마쳤을 때 김홍씨가 만 원짜리 몇 장을 반으로 접어 '공연 모금함'(티박스)에 넣었다. 한눈에 봐도 5~6만 원은 돼보였다.

이 근처에 사는 노부부는 2009년 이곳에서 '사운드박스'의 공연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했다.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나와서 공연을 즐길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때는 거의 매일 했던 것 같아요. 할 때마다 나와서 봤어요. 한동안 내가 수술하느라 병원에 입원해서 통 못 봤지. 평소에는 병원에 있는데 주말이어서 나왔어요. 젊음이 느껴지는 공연 보니까 힘이 나. 다른 노인들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라 안타깝죠."

노부부와 인터뷰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봤다. 오른편에는 색소폰과 플루트를 부는 팀이, 왼편에는 랩을 하는 팀이 한창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밤 '홍대 놀이터'에는 음악 연주를 비롯해 댄스 등 다양한 창작 공연이 열린다.
#홍대 공연 #홍대 놀이터 #사운드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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