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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핸드볼 김온아의 빈 자리, 조직력으로 이겨내다

[2012 런던올림픽 여자핸드볼 B그룹] 한국 25-24 덴마크

12.07.31 13:17최종업데이트12.07.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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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 여자핸드볼대표팀은 스페인과 올림픽 첫판에서 맞붙어 4점 차이(31-27)로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감독을 비롯하여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종료 직전 간판 센터백 김온아가 무릎을 붙잡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실내 체육관이었지만 런던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진단 결과 김온아의 무릎 근육이 파열된 것으로 알려졌다. 운 좋게 대회가 진행되는 도중 재활에 성공한다면 마지막 한 두 경기는 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이 도와야 하는 일이다. 김온아의 빈 자리는 마치 과거 국가대표 축구 팀에서 박지성의 빈 자리에 비견될만큼 큰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를 조직력으로 훌륭하게 이겨냈다.

강재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30일 저녁 런던 쿠퍼 박스에서 벌어진 2012 런던올림픽 여자핸드볼 B그룹 덴마크와의 맞수 대결에서 25-24(전반 11-10)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2연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녀들은 정말 이기고 싶었다

강재원 감독은 할 수 없이 김온아의 빈 자리를 그녀보다 세 살 언니 정지해(삼척시청)에게 맡겼다. 핸드볼 경기에서 공격의 출발점 역할을 하는 센터백 자리의 특성상 공격의 조직력을 원하는 만큼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기본적으로 공을 쥐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나 드리블 패턴, 속임 동작 등 두 선수가 자리는 같지만 전반적인 경기 운영 색깔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나머지 선수들과의 조화가 걱정이었다. 더구나 상대 팀은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는 덴마크였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그리스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에서 2차 연장전까지 이어지는 여자핸드볼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졌다. 우리 선수들은 억울한 심판 판정이 속출하는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덴마크와 만나서 눈물겨운 싸움을 펼쳤다.

아쉽게도 우리 선수들은 승부 던지기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렸다. 드라마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들의 도전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상대가 바로 그 덴마크였고 우리에게는 가장 믿을만한 공 배급원 김온아가 없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너무나 놀라운 경기력을 자랑하며 덴마크를 경기 내내 궁지로 몰아넣었다. 후반전 30분 종료 부저가 울렸을 때 우리 선수들은 코트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았다. 선수들의 표정만 보면 결승전을 보기 좋게 끝낸 선수들 같았다. 그만큼 덴마크를 꼭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김온아의 빈 자리를 감안하면 그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정지해의 놀라운 속임수

이에 강재원 감독은 정지해 카드를 꺼내들었다. 런닝 점프 슛 실력은 김온아에 비해 조금 모자라 보이지만 다양한 각도에서의 슛 감각은 정지해가 뛰어나기에 충분히 덴마크의 높은 수비벽 앞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었다.

우리 선수단의 현 상태를 말해주듯 이 경기 첫 골은 정지해의 오른쪽 대각선 슛으로 만들어졌다. 덴마크 레프트백 트로엘센의 스텝슛 반격이 위력적이었지만 우리의 레프트백 심해인과 왼쪽 날개 조효비가 단짝 활약을 펼치며 경기 시작 5분만에 3-1을 만들었다.

아무리 경기 초반이라도 이러한 과정 자체가 낯설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씩스 제로' 수비 전술을 바탕에 두고 기습적으로 두 명이 전진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성실한 수비 방법을 택했다. 체력 소모가 걱정이었지만 덴마크 선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큼 공을 돌리지 못했다. 이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공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좌우 연결을 만들어냈다. 공격 조직력만큼은 지독할 정도로 준비했다는 뜻이다. 축구장의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핸드볼 코트에서 자유자재로 공을 돌리는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전반전 20분, 문지기 주희의 선방에 이어 센터백 정지해는 보는 이들 모두를 놀라게 하는 골을 성공시켰다. 그녀의 몸 방향이나 얼굴 각도는 분명히 오른쪽 측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몸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 오른손 슛은 골문 왼쪽 구석 아래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이른바 농구장이나 축구장에서 가끔 나오는 '노 룩 패스'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를 따라다니던 덴마크 선수들 모두 속았다.

이렇게 만든 9-5라는 놀라운 점수판은 이 경기 내내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덴마크의 뒷심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전반전이 11-10으로 끝났지만 우리 선수들은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왼쪽 날개 이은비의 이유있는 변신

후반전을 시작한 우리 선수들은 11분만에 덴마크의 거센 반격으로 15-15 동점을 허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앙원에서 공격을 시작하던 우리 선수들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공격권을 덴마크에게 내줬다. 이 흐름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뒤집히는 일은 기정사실이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우리 팀의 새내기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기 시작했다. 후반전 12분 20초만에 레프트백 권한나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재치있는 언더 슛을 성공시킨 것. 그리고 맏언니 우선희의 속공이 처음으로 맞아떨어졌다. 문지기 주희의 슈퍼 세이브도 이어졌고 14분 40초만에 우리 팀은 다시 18-15까지 달아날 수 있었다.

특히, 새내기 왼쪽 날개 이은비는 결정적인 고비마다 알토란 활약을 펼치며 언니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무릎을 다치면서 뛰지 못하게 된 김온아의 가슴뭉클한 편지가 이은비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하니 더 드라마틱한 승부가 펼쳐진 셈이다.

온아 언니의 편지를 받은 이은비는 자신의 주 포지션인 왼쪽 측면보다 가운데 쪽에서 빠르게 공을 연결하며 센터백으로서의 임무를 알차게 수행했다.

후반전 20분 30초, 바로 그 이은비의 실력이 제대로 먹히기 시작했다. 유연하면서도 빠른 몸놀림으로 덴마크 수비수 둘을 한꺼번에 따돌리며 멋진 골을 터뜨렸다. 22-18이라는 점수차는 정말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강재원 감독은 이 때 작전 시간을 요청하여 선수들의 호흡을 안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전술 설명을 차근차근 해 주었다. 레프트백 심해인과 임시 센터백 역할을 맡은 이은비가 엇갈리며 뛰면서 빠르게 마무리할 것을 주문한 것. 이들은 코트에 들어가 감독의 주문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은비가 속임 동작으로 엇갈리면서 심해인에게 슛 각도를 만들어주었고 후반전 23분에 심해인의 점프 슛이 성공하며 점수판을 23-18로 만들어 놓았다. 이 골은 결승골이나 다름없었다.

경기 종료 7분 정도를 남기고 5점차로 달아난 우리 선수들은 여유 있게 경기를 운영하며 승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덴마크의 얀 감독은 문지기를 빼고 라이트백 달비까지 코트 플레이어로 뛰게 하며 극단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문지기 유니폼과 같은 색깔의 조끼를 입고 뛰는 기이한 장면이 경기 끝까지 계속된 것이다.

이 전술 변화 덕분에 덴마크는 레프트백 라르센이 연속 골을 얻어냈고 종료 직전까지 턱밑으로 따라붙었다.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본데 페테르센에게 1점차 만회골을 허용했을 때 우리 선수들은 8년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남은 몇 초의 시간은 우리 것이었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8월 1일 저녁에 노르웨이를 상대해야 한다. 프랑스와 함께 우리가 겪어야 할 험난한 가시밭길이 더 남았다. 김온아의 빈 자리를 더욱 탄탄하게 준비하여 뒷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12 런던올림픽 여자핸드볼 B그룹 결과, 7월 30일

★ 한국 25-24 덴마크

★ 프랑스 18-18 스페인
★ 노르웨이 24-21 스웨덴

◎ 현재 순위
한국 2승(56득점 51실점)
프랑스 1승 1무(42득점 41실점)
노르웨이 1승 1패(47득점 45실점)
덴마크 1승 1패(45득점 43실점)
스페인 1무 1패(45득점 49실점)
스웨덴 2패(39득점 45실점)
김온아 이은비 정지해 핸드볼 강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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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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