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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 상품

[하성태의 사이드뷰] 시대성과 지역성, 캐릭터에 녹인 90년대 대중문화

12.08.01 17:33최종업데이트12.08.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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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은 그런 해였다. '10대들의 우상' H.O.T에 이어 젝스키스가 데뷔했다. '만나면 좋은 친구'에서 방송했던 <별은 내가슴에>로 안재욱이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며, PC 통신과 '접속'했던 영화 <접속>은 일약 신드롬을 낳았다. '국진이 빵'의 김국진이 광고에 나선 시티폰은 삐삐를 압도하지 못했지만 '게스'를 비롯한 소위 '메이커'들은 고딩들의 '잇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연말, 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제 고2가 된 부산의 아이도, 성인도 아닌 아이들은 '오빠'를 찾아 대구의 콘서트 장으로, 서울의 토니오빠 집으로 쫒아 다니다 아버지에게 머리를 잘리고, 뒤늦은 포경수술을 받고, 2차 성징을 몸으로 체감하며 소꿉친구에게 뽀뽀도 하며, PC 통신도 하고, 농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반도 사고, '야동'도 보고, '롯데' 야구도 응원한다.

tvN이 건져 올린 또 하나의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 상품'이 출현했다. 이제 막 4회를 마친 <응답하라 1997>은 이 모든 것이 1990년대 10대의 문화였다고 증언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성공 전후로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1990년대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연속드라마'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에이핑크 정은지는 1997년 열여덟살을 H.O.T 토니에게 바친 광팬 성시원을 연기한다. ⓒ tvN


확실한 캐릭터와 대중문화, 시대성을 담아낸 명랑순정만화

영화 <접속>을 보고 나온 주인공이자 HOT 토니안의 빠순이 조상 성시원(정은지)과 그의 초식남 친구 강준희(호야)의 이 대화 속엔 <응답하라 1997>에 접속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압축돼 있다.

"전도연 이번에 확실히 뜰 것 같던데. 올해 신인상 타겠더라."
"내는 그래도 한석규 뿐이다. 서울 남자는 확실히 다르다. 부드럽고 젠틀하고. 야, 뻣뻣한 부산촌놈 ('연제'가 아닌) 윤제랑은 비교가 안 된다."
"니, 그거 아나? 니 모든 말이 윤제 욕으로 끝나는 거. "
"맞나?"

'말빨' 강하고 개성 확실한 캐릭터들, 1대 아이돌 그룹과 '팬질'을 전면에 내세운 1990년대 대중문화, "맞나"란 부산 사투리로 대변되는 지역 코드, 그리고 '소꿉친구' 윤제(서인국)를 의식하는 시원의 마음에서 전해지는 풋풋한 첫사랑의 순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명랑순정만화의 정서. 

우선 <응답하라 1997>는 이 모든 조합을 에피소드 곳곳에 깨알 같이 녹아있는 시공간적 디테일로 돌파한다. '부산갈매기'에 대한 언급이나 H.O.T, 젝스키스에 대한 연호로 그쳤다면 그저 그런 풍경화에 그쳤을 터. 게다가 젝스키스의 리더였던 은지원의 출연과 제작발표 당시 토니안과 문희준 등을 내세운 홍보, 그리고 '원조 빠순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내용들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팬덤 드라마란 인식을 심어줄만 했다.

하지만 이 영리한 드라마는 지속적으로 부산이란 배경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시원의 일상 곳곳에 앞서 예를 든 대중문화를 실명으로 배치함으로서 친숙함과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무엇보다 이 두 요소가 캐릭터의 성격을 결정짓는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10대와 20대를 통과했을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화적 코드들은 <응답하라 1997>의 가장 큰 공감 요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 tvN


보편성과 공감을 무기로 성장을 이야하기하다

1990년대를 회고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느냔 물음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4회까지 방영된 <응답하라 1997>은 분명 이러한 우려를 보기 좋게 불식시켜 버린다. 그 중심엔 또 청춘물이 지닌 특유의 보편성이 자리하고 있다.

소꿉친구이면서 서로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꼴찌 시원과 반장 윤제의 무뚝뚝한 로맨스는 그 자체로 순정만화의 내러티브와 정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둘의 감정은 분명 극이 진행될수록 갈등요소로 작용하면서 둘의 성장을 담보해낼 것이다. 식상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보편적인 성장드라마의 테마다. 

<응답하라 1997>은 1997년과 2012년 현재를 부지런히, 그러나 세련되고 유려하게 오고가는 편집을 통해 재미와 궁금증을 동시에 던져준다. 특히 매 회 연결고리처럼 등장하는 현재의 동창회에서 "이들 중 두 사람이 오늘 결혼을 발표한다"는 시원의 나레이션을 삽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성장의 결과 누군가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결과야 말로 로맨스의 절정 아니겠는가.

이러한 보편성과 함께 여느 캐릭터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세심함도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특히 3회와 4회, 갈등을 빚는 것처럼 보였던 (왁자지껄한 전라도와 경상도 남녀 커플인) 시원 부모의 화해나 모범생일줄 만 알았던 윤제의 형이 지닌 첫사랑에 대한 아픔을 롯데의 야구 경기나 영화 <접속>과 교차시키는 솜씨는 유려하다는 표현이 모자를 정도였다.

여성 시청자들로부터 신드롬을 낳을 조짐이 엿보이는 윤제 역의 서인국은 물론 데뷔작에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에이핑크의 정은지의 신선하면서 안정된 연기는 벌써부터 장안의 화제다. 지역성이 필수인 만큼 <친구>를 능가하는 사투리 연기는 전출연진의 계산된 무기일 터. 젊은 배우들은 물론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시은의 부모 역에 성동일, 이일화의 무게감도 꽤나 안정적이다.

<응답하라 1997>은 90년대 대중문화를 단순한 소재로 활용하지 않는다. 시대와 공간의 충실한 묘사로 핍진성을 획득하는데 대중문화는 주요한 양념이자 극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예능 출신 감독과 작가의 시너지란 이런것일까 싶은 정도랄까. 

더욱이 스타를 추억할 뿐 그 스타를 적극적으로 소환하거나 매몰되지 않는다. 시은이처럼 그 스타에 열광했던, 첫사랑에 설레었던 '우리들의' 일상이 존재했을 뿐이라고 나직이 속삭인다. 그 달콤한 속삭임에 어느 정도의 성장통을 녹여내느냐. 이제 4회까지의 성공을 이어가는 일만 남았다.

응답하라1997 서인국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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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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