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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왜 1997년을 응답했을까?

[TV리뷰] 우울한 청춘을 위로하는 공감 성장 드라마

12.08.09 09:36최종업데이트12.08.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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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의 새 문화를 창조했던 1980년대 출생 아이들의 학창 시절 이야기. 언젠가는 나올 드라마, 영화 소재였지만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한동안 대한민국 대중문화 트렌드를 지배했던 키워드는 '복고'다. 1970, 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던 복고는 40대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더니, 이제는 30살을 갓 넘은 청년들의 추억을 부른다. 

단순히 1997년 아이돌 팬덤 양대 산맥을 구축했던 HOT와 젝스키스 팬들 이야기에서만 그칠 줄 알았던 tvN <응답하라 1997>은 부산을 배경으로, 섬세하면서도 디테일하게 당시를 묘사한다. 동 시간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깨알 같은 공감을 부르면서 1990년대생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케이블 드라마라는 한계가 있지만, 인터넷상 반응은 지상파 인기 드라마 못지않다.

1990년대 오빠들의 공식 여자친구(?)로 충실한 삶을 살았던 30대 여성을 넘어, 현재 그 또래의 어린 청춘들까지 TV 앞에 불러들이는 저력을 과시한 <응답하라 1997>이 성공한 비결은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감성'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한 장면 ⓒ tvN


1997
년 '만인의 우상' 토니 오빠와 항상 내 옆에 붙어 있었던 머슴아 사이에서 갈등했던 이모의 고민은 2012년을 사는 조카들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되어 강산이 변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을 법한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애정 심리를 관통한다.

이제는 30대가 되어버린 1980년대생에게 '1997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직도 HOT와 젝스키스를 추억하는 언니에게 1997년은 오빠들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의 서막이었지만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봤을 때 1997년은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시기다. 1997년 말 IMF가 터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IMF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2000년 초에는 벤처 열풍을 맞았다. 다시 한 번 "나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창 시절의 꿈을 고이 포기한 채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용케 버텨간다. 1980년대에 태어나 1997년을 거쳤던 대다수의 청춘이 겪는 우울한 현실이다. 설사 운 좋게 피 튀기는 취업전투에서 승리했어도 토니 오빠와의 결혼은커녕 평범한 결혼과 출산 그 자체를 바라는 것도 사치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1997년은 곧 대한민국 전역을 휩쓸 쓰나미의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대중문화가 주는 축복을 고스란히 받은 세대들이 유일하게 꿈을 가질 수 있었던 달콤한 시간이었다.

물론 당시 어린 청춘들은 그때가 제일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인지 미처 몰랐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토니 오빠와 결혼하고 싶었고, 지긋지긋한 공부와의 싸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좋은 대학 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그들 앞에 계속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장벽은 그나마 오빠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IMF와 취업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좋았던 1997년을 더욱 그립게 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한 장면 ⓒ tvN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은 암울한 2012년을 잠시 잊어 보고자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려는 우울한 청춘의 대리 타임슬립에서 그치지 않는다. 1997년 이후 힘든 시기를 거쳐 어느덧 사회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한 이들에게 1997년은 단지 이들의 서른 남짓한 인생의 일부이자 가장 아름답고 설렜던 '첫사랑'일 뿐이다.

<응답하라 1997>이 1997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HOT와 젝스키스를 부모, 가족보다 사랑했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오빠들 찬양'이 전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나 2012년 20~30대가 된 청춘에게도 가장 살기 좋았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고,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 있는 해가 결코 1997년에서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철없는 빠순이로 오해받았지만 스스로 HOT, 젝스키스를 자신들의 우상으로 만들며 암울했던 1990년대 말을 용케 극복했던 것처럼, 한때 오빠와 누나들에게 열광했던 20, 30대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또 다른 영웅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2012년을 잘 이겨낼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은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가장 반짝반짝 빛났던 추억을 통해 2012년의 청춘을 위로하고 웃으면서 버틸 수 있는 또 하나의 활력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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