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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로소이다> 미완으로 끝난 한국판 <왕자와 거지>

[영화리뷰]코미디와 배우 연기는 합격점...세종대왕 재해석은 물음표

12.08.10 15:50최종업데이트12.08.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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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한 장면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충녕이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어진 성군이 될 수 있는지의 물음에 초점을 맞춘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이미 시작부터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스토리를 취한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같은 팩션극에서의 성패 여부는 과연 실존 인물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맨 처음 제시된 충녕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제시된 청년 세종보다 더 온순하고 심약하다. 이름만 충녕과 세종의 이름을 따왔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종의 위엄과는 영 거리가 멀다. 여기서부터 관객과 영화 사이의 큰 괴리가 생겨버린다.

도대체 왜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장규성 감독은 멀쩡하다못해 위엄에 찬 세종을 희대의 찌질이로 만들었을까.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등 희화화된 등장인물과 배경을 통해 사회를 통렬하게 비트는 남다른 재주를 과시한 장규성 감독의 신작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세종이 왕에 즉위했던 조선 초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2012년을 끌어들인다.

조선을 위하는 척 하나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외 세력까지 끌어들이는 신의는 현실에서 무수히 봤음직한 정치인들과 오버랩 되며 <뿌리 깊은 나무>에서 존재만으로도 위압적이던 태종은 무섭다기보다 정치인들과 언론의 호도에 놀아나는 대한민국을 연상시킨다.

밥 먹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지만, 궁 안에서 곱게 자란지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충녕은 오늘날 극성스러운 엄마와 주입식 학교 교육에서 배출된 한국식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머리는 좋으나 강단이 부족하고 누군가를 이끌어갈 리더십이 부족한 충녕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올곧은 황희에게는 최악의 군주감이지만, 반면 자신의 권세를 유지해줄 꼭두각시 임금을 원하는 영의정 신의에게는 최상의 지도자감이다.

역시나 황희의 예상대로 조선의 왕이 되기에는 상당히 벅차보였던 충녕은 결국 궁 담을 넘는다. 그런데 우연히 충녕과 똑같이 생긴 노비 덕칠이가 충령이 담을 넘었던 동 시간에 주인집 아씨를 구하기 위해 궁으로 잠입하였고, 그가 세자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대타'로 투입된다.

한순간에 노비와 세자로 뒤바뀐 이들의 운명은 두 남자 모두에게 재앙과 다름없었다. 천한 노비에서 가장 귀한 신분으로 승격했으나 덕칠 에게 궁 안은 답답한 감옥일 뿐이고, 그동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 고귀한 왕자님에게 고된 노비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공식 포스터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철없는 왕자님의 월담으로 생긴 해프닝은 오히려 왕이 되기 싫어 도망치던 소심남을 지배계급의 횡포에 속수무책 당하는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강자들이 굽실거리기 바쁜 명나라에는 큰 소리 칠 수 있는 강인한 군주로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참으로 위험한 도전이었다. 실존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놓는 것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대상이 한반도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이다.(오죽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조선 4대 왕 세종을 친히 세종대왕이라 부른다.)

그런 위대한 세종을 왕이 되기 싫어 궁 밖으로 도망친 희대의 소심하면서 찌질남으로 그렸으니 개봉 전부터 일부 대중들의 반발을 살 만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온 국민이 사랑하는 세종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마약 복용으로 세간의 물의를 빚은 주지훈이다.

영화 자체를 놓고 보자면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그럭저럭 웃으면서 볼 만한 코미디이다. 왕이 되기엔 한없이 미더워보이던 충녕이 민초의 고통을 몸소 깨닫고서야 비로소 왕의 자질을 갖춰가는 과정도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옴은 물론 주연배우 주지훈은 물론 충녕을 보필하는 김수로와 임원희의 맛깔스러운 감초 연기와 돌아온 미달이 아빠 박영규의 믿음직한 코믹 본능은 관객들을 시종일관 즐겁게 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유약하고 소심한 세종의 가상 세자 시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균형 잡힌 코미디 연기를 보여줬으나 여전히 비호감 털이 제대로 박힌 주지훈을 온전히 충녕으로 받아들일 수 있나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장성규 감독 전작과 비교했을 때 현격히 떨어지는 정치 풍자는 꽤 그럴싸한 한국판 <왕자와 거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영화의 완성도에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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