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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SBS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 멘트 가능한 이유

[인터뷰] SBS 김성준 앵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 편에 서는 것이 우리 역할"

12.08.11 11:06최종업데이트12.08.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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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성준 앵커(49)는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 정치부 기자와 워싱턴 특파원 등을 거쳐 SBS <모닝와이드>를 진행하다가 현재는 <8시 뉴스>를 이끌고 있다. ⓒ SBS


"신나는 올림픽 축제 중이지만,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파업 중인 SJM사의 용역업체 폭력사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아직도 폭력으로 근로자들을 두드려 패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니요. 철저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7월 31일, SBS <8시 뉴스> 클로징 멘트)

언젠가부터 SBS <8시 뉴스>는 끝인사까지 챙겨보게 됐다. 김성준 앵커가 어떤 사안에 한마디를 더 보탤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날 뉴스를 마무리하는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팩트(fact) 전달 역할을 넘어선다. 때로는 강력한 일침으로 시원한 곳을 긁어주고, 때로는 생각할만한 여지를 남긴다. 촌철살인이라 불리는 그의 멘트들은 뉴스가 끝남과 동시에 SNS 상에서 회자된다. 최근 SJM 관련 멘트 이후에는 트위터 팔로워가 2천 명이나 늘어 아침마다 '맞팔' 버튼을 누르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라고.

매일 <8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클로징 멘트를 직접 쓴다는 김성준 앵커를 10일 목동 근처에서 만났다. 이날 김성준 앵커는 꽤 여유로워 보였다.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의견을 담는 코멘터리 작성에 대한 그의 부담감을 덜기 위해 금요일은 여자 아나운서가 클로징 멘트를 맡는다.

아닌 게 아니라, 클로징 멘트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방송사를 대표할 수 있는 말을 한 마디라도 쉽게 쓸 수 없어, 멘트가 나가기 직전인 날씨 코너가 끝날 즈음에 완성한 적도 있단다.

"보도국장, 앵커 멘트는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

김성준 앵커는 <8시 뉴스>의 클로징 멘트 처리에 대해 "SBS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사로서 보도의 기계적 중립을 신경 쓰기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접근하자는 SBS 보도국의 방향성을 따른 것이라고. 김 앵커가 사실상 '앵커의 본질적 역할'이라고 보는 코멘터리의 강화는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있는 멘트는 없다.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 <8시 뉴스> 클로징 멘트였던 "대통령 퇴임하는 날 깨끗한 정권이었다고 칭찬하는 뉴스 전하는게 기자생활의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는데 또 5년 미루게 됐습니다. 서글프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를 두고 동료는 너무 수위가 높다고 우려했단다. 그런가하면, 트위터에서는 그의 클로징 멘트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공격을 해왔다. 

때로는 정부 정책에 날을 세우고 '윗분'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가능한 것은 보도국장이 이를 전적으로 앵커의 자율에 맡기기 때문이다. 김성준 앵커는 "과거에는 코멘터리의 방향성을 편집부에서 정해주기도 했다"며 "지금은 어떤 멘트도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앵커는 SBS <8시 뉴스>의 클로징 멘트가 호평을 받을 때 함께 따라붙곤 하는 '개념 앵커'라는 칭호에 대해서는 마냥 좋아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그 수식을 선사한 사람들의 의견이나 정치적 입장과 다를 경우, 언제든지 '무개념'이 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정치적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 SBS의 입장"이라며 "올림픽 때 SJM사의 용역업체 폭력사태에 대한 멘트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먼지만 쌓였던 비행기 SBS 뉴스, 이제 이륙한다"

SBS <8시 뉴스>의 김성준 앵커 ⓒ SBS


이쯤되면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방향이 있다.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이다. 실제로 김성준 앵커의 두드러진 행보를 놓고,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위해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물밑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로 일한 그는 "공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정치권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며, 앵커를 그만 두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무려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정계 진출 가능성이 낮음을 설명했다. 한편으로, 언론인의 정치 입문에 대해서는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답하기도 했다.

정말 그는 정치 말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어릴 적 꼭 배우고 싶었던 트럼펫을 불다가 녹내장 진단을 받고 관악기 연주의 꿈을 접었으며, 2년 전에는 검도를 시작했다가 시 대회 8강까지 진출했다. 비록 부전승이긴 했지만, 그만큼 벌인 일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그중 가장 의외는 연애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다. 언젠가 꼭 단편부터라도 쓰기 시작할 거라고.

증권회사에 다니다가 1991년 SBS 공채 1기 기자로 입사해, '서울방송이 전파상이냐'고 묻는 낮은 인지도의 설움을 견뎠다. 지금은 메인 앵커의 자리에 앉은 그에게도, 1993년 아시아나 추락 사고 당시 얼떨결에 특보를 진행했던 첫 앵커로서의 추억은 굴욕으로 남아 있다. 그때 뉴스를 본 아내의 친구들이 "네 남편 어디 아프냐"고 물어 한동안 트라우마가 생겼었다는 일화를 이제는 큰 웃음 주는 개그로 승화시킬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쌓였다.

김성준 앵커는 KBS와 MBC의 그늘에 가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SBS 뉴스를 '활주로에 선채로 먼지만 쌓인 비행기'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성실한 취재와 시청자와 소통하려는 노력 덕분에 비행기의 앞바퀴가 들릴 정도까지는 온 것 같다고. 그는 "뒷바퀴까지 들려 이륙하지 않으면 그대로 곤두박질 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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