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핫'하다지만... 지킬 건 지킵시다

사진 찍겠다고 배추밭에 피해... 사진가들 이젠 달라져야 한다

등록 2012.08.24 14:49수정 2012.08.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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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정상에서 내려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붕어섬 ⓒ 조정숙


밤낮 기온 차가 15도 가까이 되거나 비가 내린 다음 날. 바람이 불지 않고 습도가 90% 이상 높으면 십중팔구 운해가 생긴다. 평소 운해와 어울릴만한 특별한 피사체가 있다면 이 피사체와 더불어 낮게 깔린 운해를 담기 위해 사진가들은 전국 어디든 힘겨운 산행 코스도 마다치 않고 찾아간다.


전북 임실군 운암면 국사봉에 올라가면 옥정호에 붕어를 닮은 섬이 하나 있는데 호수에서 피어난 자욱한 물안개가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동안 이런 풍경을 담기 위해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가파른 계단과 돌이 쌓여 있는 길을 수도 없이 올라갔지만, 언제나 2% 부족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어 지난주 주말에는 아예 휴가를 내어 이곳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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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국사봉 전망대에서 담은 일출 운해가 적당히 깔려 있다. ⓒ 조정숙


원하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기에 부푼 기대를 안고 망설임 없이 새벽 4시쯤 출발했다. 새벽 5시 50분이 일출이지만, 출사지에서 늘 있어 왔던 자리다툼이 싫어서 이른 시간에 출발하기로 마음 먹고 국사봉 주차장에 3시 50분에 도착했다.

자주 오르던 길이기에 랜턴이 없어도 곧장 올라갔다. 그런데 어둠 때문에 무언가 걸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넘어졌다. 잠시 기다렸다가 랜턴을 들고 오는 사람 뒤를 따라 조심조심 올라가다 보니, 험한 돌길을 편편한 계단으로 만드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버젓이 깔아 놓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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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운해를 기대 했지만 바람이 불어 원하던 작품을 담지 못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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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 전망대에서 바라본 붕어섬 ⓒ 조정숙


50여 분정도 걸어서 국사봉 정상에 도착하여, 산자락에 깔려있는 운해를 바라보았다. 마이산 봉우리가 보이는 방향으로 삼각대를 펴고 운해가 넘실넘실 거리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는데 바람이 분다. 저 멀리 아스라하게 운해가 보인다. 이럴 때 사진가들은 말한다. 모기약 수준이라고...

바람이 불면 원하던 풍경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올라갔던 길을 내려와 전망대에 도착했다. 자욱한 운해는 없지만, 붕어섬은 구름이 에워싸고 있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아름답다.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지만, 아침잠을 포기하고 올라간 산이기에 몇 컷 정도 사진에 담아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진가들은 많지만, 예전처럼 자리다툼 하며 싸울 만큼은 아니니 다행이다. 지인들 대부분이 안반덕으로 간다더니... 덕분에 이곳은 대체로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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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국사봉을 올라가다 보면 기존에 있던 전망대 중간에 또 하나의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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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물건을 옮기는 레일을 설치해 두어 어두운 새벽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 조정숙


올라가면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았다. 그동안 많이 달라진 것이 보였다. 예전에 있던 전망대를 넓혀서 많은 사람들이 붕어섬을 볼 수 있도록 조성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전망대 아래 중간 부분에 새로운 데크를 설치하는 중인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 잔가지들도 가지런히 정리해서 탁 트인 붕어섬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제 사진가들도 자리다툼 하느라 언성이 오가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에 안도감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데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삼각대가 흔들린다고 싸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일출을 담고 내려오니, 여기저기 다양한 자재들이 얽히고설킨 길이 보인다. 어두운 새벽녘에 올라갔던 그곳이다. 조금 내려오니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공사가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보자, 8월 말까지 공사가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비가 자주 내려서 공사가 미뤄지고 있다며 할 일을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국사봉을 찾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고생하는 분들의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전을 위한 작은 배려가 아쉬웠다.

취미생활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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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덕 일출을 담기 위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 윤판석


일출과 함께 깔린 운해는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설까지 생길 정도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사진가들은 대작을 담을 수 있는 염원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다.

사진을 취미생활로 하는 사진 인구가 늘어나고, 다양한 사진기를 동원하여 사진을 찍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기능이 좋은 핸드폰까지 등장하니, 어디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진 찍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날은 어느 곳이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서로 좋은 위치에서 멋진 작품을 담기 위해 소소한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가장 '핫'한 장소가 강원도 고랭지배추를 재배하는 안반덕 배추밭이다. 운해가 깔린 일출을 담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모여, 배추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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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덕 일출을 담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 윤판석


국사봉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옥정호를 찍겠다던 지인은 장소를 바꿔 안반덕으로 갔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까지 올라갔는데, 그곳에 이미 200여 명은 족히 되는 사진가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휴일 아침이라서 사진가들이 많이 모였는데, 이중주차로 인해 차량들이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어요. 또, 후진으로 빠져나가던 차량들이 길옆 배추포기를 뭉개고 지나가기도 하더군요. 

배추밭에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일하러 온 작업 차량이 진입을 못해 작업하러 온 할머니들이 아래서부터 하차하여 먼 길을 돌아 작업하기도 했어요. 급기야, 마을이장까지 나서게 되었지요. 그런 모습을 보니 이제는 나부터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서로가 조금만 양보하면 될 것을... 사진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성을 하게 된다.

안반덕은 작년 이맘 때 한번 다녀왔는데 원하던 사진을 얻지 못해서 올해 한 번 더 가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1년 농사를 위해 피땀 흘리는 농민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찾아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국사봉일출 #안반덕일출 #옥정호 #붕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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