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 대한 미안함

많지 않은 나이에 치아를 몽땅 들어낸 아내에게

등록 2012.09.03 13:44수정 2012.09.03 13:4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안'은 한자(漢字)에서 온 말입니다.  아닐 미(未) 편안할 안(安) 두 글자가 조합된 말입니다. 두 가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남에게 대하여)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거북함', 둘째는, '(남을 대하기가)조금 부끄럽고 겸연쩍음'이 그것입니다. 제가 제목으로 단 '미안함'은 후자 쪽에 가까울 것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내가 아닌 아내에게 느끼는 부끄럽고도 조금은 겸연쩍은 이야기입니다.


어제(8월 30일) 아내와 함께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12주 전도훈련의 수료식이 있는 날이어서 참석해야만 했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이빨 치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기쁜 일일 테지만 다른 하나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소 우울한 얘기가 됩니다. 이빨은 오복 중의 하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젊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아니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모든 신체 구조가 싱싱하던 때는 지체(肢體)로 인해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않고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건강한 치아(齒牙)를 오복으로 말하는 사람은 삶의 경험이 풍부한 노년기 초입 이상에 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아내는 치아가 약합니다. 관리를 잘 못한 탓도 있겠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생활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치아 손상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최근 5년 사이 참으로 많은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합죽이가 되었습니다. 아랫니 1/3. 윗니 전부를 들어내고 나니 입이 할머니 입처럼 된 것입니다. 그래서 흰 마스크를 하고 다닙니다. 하지만 합죽이 입이 그런다고 어디 가겠습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남편 잘못 만나 저런 형국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인생은 하기 나름이라곤 하지만 순간적 선택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어제 전도훈련 수료식이 끝나고 아내 혼자 치과에 보냈습니다. 저는 한 목사님과 저녁 약속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옵니다. 지천명(知天命)을 갓 넘긴 나이에 몸의 많은 부분이 상처투성이인 것은 나의 탓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남 섬기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어제 차림을 유심이 살펴보았습니다. 참으로 가당치도 않게 생각되더군요. 자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농촌 목회자로서 많은 생각들이 어지러이 교차했습니다.

위 아래 옷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윗옷은 도회지 큰 교회에서 보내온 재활용 옷이고, 아내에게 제법 어울리는 검정색 하의는 처제가 입던 옷을 보내온 것입니다. 언니의 차림이 너무나 촌스럽다며 몇 번 입지 않아 새 옷과 진배없다며 보내왔습니다. 신은 구두도 아내 것이 아닙니다. 부산 사는 제 큰 형수님이 맞을지 모르겠다며 준 것입니다. 사시사철 검정색 구두 하나에 발을 의지하고 지낼 때였습니다.  걸으면서도 구두가 커서 자꾸 벗겨지려고 하는 것이 눈에 걸립니다. 구두가 발에 온전히 붙어있지 못하고 들쑥날쑥합니다. 이렇게 오래 걷다 보면 발뒤꿈치에 분명 손상이 가서 살갗이 벗겨질 것 같습니다.


들고 다니는 가방도 촌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몇 년이 흐른 것 같네요. 저희 교회에서 조금씩 돕던 베트남 선교사가 일이 있어 잠시 귀국할 때 선물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내는 받은 선물은 즐겨 사용해야 준 사람의 사랑에 값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렇게 편리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오밀조밀 넣을 곳이 나뉘어 있어 아주 편리하다며 줄곧 가지고 다니는 가방입니다. 베트남에서 사온 선물이니 만큼 아내의 것과 비슷한 가방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몸이 망가지고 가진 것이 몽땅 아내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정녕 제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아내는 주님 일 하는 사람 굶어죽게 만들지는 않으실 하나님이라고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기만 하면 아이들도 다 책임져 주시고 남편인 저의 목회 길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다는 겁니다. 저도 할렐루야로 화답합니다만 사람의 체력은 한계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미칠 때 걱정이 엄습함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바라기는 이웃 섬김과 하나님 사랑에 부족함이 없는 신체와 정신 그리고 영적 조건들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치아도 해 넣고, 건강도 회복되어 지칠 줄 모르고 신나게 전도하는 아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부침개를 구워 혼자 사는 노인 분들에게 전해 드리고 심야에 김천역 부근 상가에 밤새는 줄 모르고 전도지를 붙이고, 주공 영세민 아파트를 찾아 사회적 약자들의 필요를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아내의 상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함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또 주님의 일에 최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미안함일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정성을 다하며 꿈을 다져나가려 합니다. 저는 행복이 꼭 큰 것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큰 것까지 맡기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얻지 못하면 큰 것에서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내에게 갖는 미안함도 남편으로서 가장(家長)으로서 바로 서기 위한 다짐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농촌 목회자의 아내 #치아 손상 #틀니 #섬김의 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