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문 물을 위한 문이다. 담과 담사이에는 문이 없다. 물의 문은 있되, 사람의 문은 없다
김정봉
담은 이름을 갖고 있다. 대봉대와 마주하는 담은 애양단(愛陽壇)이다. 유난히 볕이 잘 드는 곳이라 붙여졌다. 외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너면 매대(梅臺)라 불리는 화계가 있고 화계위에 담을 둘렀다. 이 담에는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慮)'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집 주인인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의 조촐한 집이라는 의미다.
화계를 중심으로 위쪽에 제월당과 아래에 광풍각이 있다. '비갠 하늘의 밝은 달'이라는 의미의 제월당은 주인이 머무는 생활의 공간이요, 학습의 공간으로 사적 성격이 강하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이지만 제월당에서 주인행세를 하려하니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객은 영원한 객인가 보다.

▲제월당 제월당 뒤편은 훤히 트여있는 반면 앞에는 담이 쌓여 있다
김정봉
반면 '비갠 뒤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한 바람'의 뜻인 광풍각은 객을 맞이하는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며 휴식의 공간이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에 내려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안해 진다.
광풍각의 처음이름은 침계문방(沈溪文房)이었다. 계곡을 베개 삼아 서있는 글방이라는 의미인데, 해남 대흥사의 침계루를 보고 기가 막히게 붙인 이름이라 감탄한 '침계'다. 광풍각은 이름대로 계곡의 풍광을 그대로 끌어안고 서있다.

▲광풍각 침계문방이라는 옛 이름답게 계곡을 베개 삼아 아담하게 서있다
김정봉
침계문방이라는 멋진 이름을 버리고 광풍각이라 한 것은 이 집 주인인 양산보가 송의 주돈이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주돈이를 광풍제월(光風霽月)같은 사람으로 여겨서 하나는 제월당, 다른 하나는 광풍각이라 하였다. 흔히 아들 이름을 지을 때 하나는 '대한'이고 또 하나는 '민국'으로 짓는 거와 비슷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광풍제월이라 함은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은근슬쩍 양산보 자신을 빗댄 것일 수도 있다. 광풍각은 크지도 그렇다고 왜소하지도 않다. 계곡과 정원의 규모에 맞게 꼭 있어야 할 곳에 아담하게 서있다.

▲소쇄원 담 사적 공간인 제월당과 휴식공간인 광풍각 영역을 담이 나누고 있다
김정봉
광풍각과 제월당은 담으로 영역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제월당 뒤에는 담이 없어 자연과 훤히 통하게 되어있으나 앞에는 담을 쌓아 광풍각 영역과 확실히 구분해 놓았다. 담 하나가 아닌 'ㄷ' 자 모양의 담을 쌓고 그 사이에 나무를 심어 여운을 남겼다. 제월당 샛문을 통하여 가려면 한 바퀴 돌아야 광풍각에 이르게 되어 있다.

▲소쇄원 담 제월당과 광풍각 사이에는 ‘ㄷ’ 자 모양의 담을 쌓고 그 사이에 나무를 심어 여운을 남겼다
김정봉
그러면서도 제월당 오른쪽에는 담이 없어 계단 길을 통해 바로 광풍각으로 드나들게 되어 있다. 제월당과 광풍각은 담으로 공간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으나 한쪽은 담으로 차단하지 않고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하여 양 공간이 끊임없이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소쇄원은 인공을 가할 곳은 과감히 가하면서도 자연을 해치고 바꾸고 도려내지 않은 채 자연을 살짝 빌려 꾸몄다. 과연 우리의 최고의 원림이라 할만하다. 소쇄원을 두 번 돌았다. 지겹지도 힘들지도 않다. 다음에 오는 객에게 소쇄원을 넘겨주고 나오려 대봉대에서 앉았다, 누웠다하며 한 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소쇄원을 다 가진 기분은 한 참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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