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님들 "일제강점기 첨병 노릇, 사죄드린다"

일 불교 최대 종단 '조동종', 군산 동국사에 '참사문비' 세워

등록 2012.09.17 12:28수정 2012.09.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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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사 경내 종각 앞에 세워진 참사문비

동국사 경내 종각 앞에 세워진 참사문비 ⓒ 조종안


일본 정부는 외면했지만, 종교계는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일본 불교의 대표 종단 조동종(曹洞宗) 소속 스님들이 일제의 만행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음각된 '참사문비(碑)'가 16일(일) 오전 11시 전북 군산시 동국사(東國寺) 경내에 세워진 것.

가로 3m, 세로 2.3m 크기의 참사문비 기단은 연화문으로 장식돼 있다. 비문은 일본 조동종이 20년 전 발표한 참사문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일제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참회와 사죄의 뜻을 담고 있으며 왼쪽은 한국어 번역문, 오른쪽은 일본어 원문이 새겨져 있다.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 포교라는 미명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해왔다.(중략)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참사문 앞부분 옮김)

이어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 종교는 국가와 언어는 물론 민족문화에 기반을 둔 이름까지 빼앗는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고, 중국 등지에서는 민중에 대한 선무공작을 담당했으며 그중에는 자진해서 특무기관에 접촉, 첩보활동을 한 승려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참사문은 "일본은 불법을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적 법률에 예속시키고,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두 가지 잘못을 함께 범했으며 우리는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과거 일본의 억압과 권력에 편승했던 조동종의 잘못을 사죄하며 끝을 맺는다.

참사문비 제작비용, 일본 불교계가 부담


 테이프커팅 하는 이복웅 군산문화원장, 이치노헤 스님, 문동신 군산 시장(오른쪽부터)

테이프커팅 하는 이복웅 군산문화원장, 이치노헤 스님, 문동신 군산 시장(오른쪽부터) ⓒ 조종안


일본 조동종은 한국의 조계종 격이며 일제패망(1945) 당시 한반도에 160여 개 사원과 포교소를 거느렸던 거대 종단이다. 경술국치(1910) 이전부터 조선에 진출한 일본 불교(조동종)는 정부의 전쟁 정책을 적극 선전하고 참여했으며 물자 공출을 강권했다.

'참사문비' 제막식은 일본의 동지회(東支會) 회장 이치노헤(일본 아오모리 현 운상사 주지) 스님이 주도했고, 제작비용도 일본 불교계에서 부담했다. 일본의 뜻있는 승려와 신도들이 동국사를 지원하기 위해 2011년 12월 창립한 '동지회'는 2012년 1월 동경에 사무국을 개설한 종교단체.


이치노헤(一戶彰晃) 스님은 "일본 조동종은 1992년 11월 교의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는 '참사문'을 발표했으나 20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람이 알지 못했다.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이 한국 국민에게 전달되기를 기원하며 참사문비를 동국사에 세웠다"고 건립배경을 설명했다.

 대웅전에서 다례제 올리는 한국, 일본 불자들과 시민들

대웅전에서 다례제 올리는 한국, 일본 불자들과 시민들 ⓒ 조종안


 제막식이 열리는 동국사 경내. 참석자들은 비가 내려도 자리를 지켰다

제막식이 열리는 동국사 경내. 참석자들은 비가 내려도 자리를 지켰다 ⓒ 조종안


제막식에 앞서 일본 스님과 한국 스님들은 대웅전에서 열린 동국사 창건 104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합동 다례제(茶禮祭)를 봉행했다. 이날 다례제는 한국·일본 신도와 군산시민, 동국사를 찾은 관광객도 함께해서 의의를 더했다.

이날 제막행사에는 이치노헤 스님을 비롯해 오다케 동지사 부대표, 일본인 작가 도다 이쿠코(도서출판 토향 대표), 동국사 주지 종명스님, 성불사 주지 종걸 스님, 문동신 군산시장, 이복웅 군산문화원장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일제강점기 첨병 노릇, 용서를 빈다"

 참사문비 앞에서 참회문을 낭독하는 이치노헤 동지회 회장

참사문비 앞에서 참회문을 낭독하는 이치노헤 동지회 회장 ⓒ 조종안


이치노헤 스님은 참회사에서 무거운 목소리로 "일본 불교계는 정부의 군사 권력에 협력하여 전쟁에 가담했으며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동아시아에 남겼다"며 "과거 첨병 노릇 한 것을 참회하며 사죄드린다"며 거듭 용서를 빌었다.

이어 "일본은 패전 이후 성실하게 충분히 반성해왔다고 볼 수 없으며 불교계도 '불자'로서 참회가 없었기 때문에 경박하고 표면적인 우호적 활동에 그쳤을 뿐이다"며 "아직도 한일 양국의 불교 관계는 불신과 의혹이라는 검은 구름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참회'를 수차례 강조했다. 불교는 모든 계율을 마음에 품고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이므로 계를 받는 첫 번째 조건은 '참회'이고 불자의 기본도 '참회'라고 거듭 말했다. 그는 참회만큼 어렵고 괴로운 일도 없다며 참사문비를 일본 불교의 양심으로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일본 우익단체 보복을 걱정하는 한국 국민도 있다는 말에 이치노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본으로 돌아가면 어떤 위험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불교 승려로서 진실을 알리고 참회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월에는 한·일 불교 대토론회 예정

 경과보고 빛 외빈을 소개하는 종걸 스님

경과보고 빛 외빈을 소개하는 종걸 스님 ⓒ 조종안


종걸 스님(성불사 주지)은 "참사문비는 이치노헤 스님 일행이 동국사를 방문해서 <일본이 남긴 절-동국사>란 제목의 영상물을 제작했던 작년 10월 이후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며 "1992년 10월 일본 조동종이 발표한 '참사문'을 명문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종걸 스님이 조동종 본산 총지사를 방문했을 때 ▲ 참사문비 건립 없이는 진정한 한·일 교류가 어렵다. ▲ 한·일 합동 다례제 봉행 ▲ 동국사 창건 기념일을 총독부 관보에 발표한 날로 결정(9월 28일) ▲ 한·일 불교 문화교류 활성화 노력 ▲ 정치적 행위를 일체 배제하며 복원에 노력하되 현금 기부는 금지한다는 다섯 항목을 제안, 타협을 보았다고 한다.
   
다섯 항목 타협 후 사업이 빠르게 진척되어 4월에는 이치노헤 스님이 서울을 방문하여 참사문비 문안정리 및 번역을 완료하였다. 또한, 건립비용은 전액 동지회가 부담하고, 한국산 석재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어 익산시 황등읍 연화석재에 제작 의뢰하였다.

종걸 스님은 앞으로 계획에 대해 10월에는 동국사에서 토론자 20여 명이 참여하는 '제1회 한·일 불교 대토론회'를 열고 12월에는 서울에서 한국에 남아 있는 일본 범종(주조장 다카하시가 만든 종) 관련 학술 발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국사(국가등록문화제 64호)는 1909년 일본 조동종 승려(우찌다)가 군산 외국인거주지 1조 통에 포교소(금강사)를 세우고, 1913년 현 위치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해방 후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개명하고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사문비 #군산 동국사 #일본 조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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