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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장인: 지로의 꿈> 당신의 열정은 얼만큼입니까?

[영화리뷰] '초밥'에 올인한 옹골찬 장인정신, 현실을 디스하다

12.10.01 12:34최종업데이트13.10.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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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속 한 장면 ⓒ 찬란


미슐랭 가이드 북에 별점 달린 식당으로 소개된다는 건 요리사에게 필생의 숙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 미슐랭에 별 세 개가 달렸음에도 최고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스시 집이 있다. 고객이 앉을 의자라고는 단 열 개밖에 없고 메뉴도 단품이다. 화장실도 밖에 있을 정도로 불편하다.

이 모슨 걸 상쇄하고도 남을 최종병기가 있었으니 그건 손님을 향한 스시의 '꿈'과 '열정'이다. 남자보다 체격이 작은 여성 고객을 배려해서 초밥을 약간 작게 만들기도 하고, 최상의 재료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되는 스시 레스토랑 주인 지로의 일상은 요리를 향한 어마어마한 열정을 보여준다. 지로의 열정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 반세기도 아닌 무려 60여 년이라는 세월, 아니 그 이상의 세월 동안 스시 하나를 위해 몸 바쳤으니 말이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6시간 이상을 스시 만들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지로의 아들이 어릴 적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릴 정도다. "엄마, 이상한 남자가 우리 집에서 자요." 여기에서 이상한 남자는 지로다. 아버지 지로가 스시 만들기에 열중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잠잘 때뿐이라 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에서 인생을 열정적으로 사는 이는 지로 하나만이 아니다. 지로의 두 아들, 그중에서도 특히 장남은 가업을 잇기 위해 오십의 나이에도 아버지의 명성에 폐가 될까 고심한다. 아버지의 맛집을 아들이 이어받다가 망한 식당이 하나 둘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다.

지로의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10년이 되어서야 계란 요리를 할 정도로 엄격한 도제의 길을 걷는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요리사의 자세부터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장인이 되기 위해 인생을 올인하는 열정은 지로와 그의 아들, 지로의 밑에서 일하는 요리사들만의 몫이 아니다. 지로의 식당에 쌀을 대는 쌀 중개인은 자기 쌀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한지라, 지로가 아니면 자기 쌀로 제대로 밥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없다면서 호텔에도 쌀을 납품하지 않는다. 자신의 쌀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지로에게만 쌀을 구매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 '장인 정신' 때문이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속 한 장면 ⓒ 찬란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은 인생의 열정에 관해 묻는 다큐멘터리다. 하나의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이를테면 가당치도 않아 보이는 계란말이 하나를 위해 십 년의 세월을 감수할 만큼의 자신과 열정이 있는가 묻는다. 

아니, 어쩌면 현실을 '디스'하는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른다. 한 직장에서 평생, 아니 십 년을 근무하게끔 하기는커녕 명예퇴직을 종용하는, 고용인을 파리 목숨쯤으로 대우하는 이 시대의 컨베이어 시스템과는 반대로 거슬러 올라갈 줄 아는 옹골진 정신의 장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관람한 후 부작용은 영화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초밥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초밥집, 혹은 참치횟집으로 달려가게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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